인도
배낭 하나 메고 해외를 떠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말씨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다. 한국을 떠난 지 18개월이 넘어가자 세상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래 친구들이 하나씩 결혼하고 경력을 쌓고 있는 현실이 슬슬 신경 쓰였다. 일상으로 복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귀국 전 한 군데만 더 들러 보고 싶었다. 마지막 여행지로 어디가 좋을지 며칠을 꼬박 고민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같이 묵던 유럽 여행자가 인도를 추천해주었다. “좀 힘들지 몰라!”라며 첨언도 해줬다. 스스로가 베테랑 여행자라 생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듣고 흘렸다.
동인도 콜카타에 도착했다. 여행자들이 모여 있는 ‘서더스트릿’ 거리에서 넓고 깨끗해 보이는 숙소를 잡았다. 퉁명한 종업원이 5일 치 숙박비를 미리 내면 하루 더 묵을 수 있다고 하였다. 어차피 여행기간을 한 달로 잡았고 적응기간도 필요했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다. 처음 이틀은 테레사 수녀의 집에서 봉사를 했다. 나머지 날들은 주변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낯선 나라를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인도는 녹록지 않았다. 에어컨 없이 견뎌야 하는 8월의 열기도 짜증 났지만 21세기 보통 한국인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번화가 길 한쪽에 방치된 오물과 그걸 헤치며 먹어대는 개와 돼지, 닭, 소, 까마귀의 모습부터 충격이었다. 등과 엉덩이에 파리가 잔뜩 붙은 소들은 차와 사람이 엉킨 도로 한가운데를 거침없이 거닐었다. 스콜(열대 소낙비)이 오고 나면 패인 곳에 물이 고여 걷기가 힘들었다. 신발과 바지에 진흙이 묻는 것은 일상이었다. 어디에서도 포장된 길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여행하며 대면하는 사람들도 상식적이지 않아 번번이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잔돈은 도무지 거슬러 주지 않는 마트 종업원, 흥정을 하고 탔는데도 내릴 때가 되니 막무가내로 돈을 더 내라는 관광객용 마차의 마부, 길을 물었더니 자기가 안내하겠다며 인력거에 태워 놓고는 그 삯보다 2배나 높은 안내 비를 따로 받는 인력거꾼, 지겹게 따라다니며 환각제를 팔려는 소년, 길바닥에 모여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낄낄거리는 청년들까지 사람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였다.
일주일이 지났다. 콜카타를 벗어나기로 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땅인 부다가야에 가기로 정하고 역으로 갔다. 매표소마다 길게 늘어선 줄에 힘이 빠졌다. 꽤 오래 기다려 천장에 덜덜 거리는 낡은 선풍기가 있는 3등석을 끊을 수 있었다. 발 디딜 틈 없는 기차에는 내가 앉을자리가 있었지만 앉을 수 없었다. 정확하게는 내 자리에 당당히 앉아있는 꼬마 아이나 그 아이가 내리고 얼른 그 자리를 차지한 어르신에게 차마 비켜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차할 때마다 불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내 자리가 있던 객차 중간에서 한참 먼 구석까지 조금씩 밀려나 9시간을 쪼그리고 있었다.
부다가야에 도착했다. 역 입구로 나와 허리를 펴니 누군가가 “헤이 ~ 위 아 프렌드”를 외쳤다. 오토바이를 몰고 한 소년이 웃으며 다가왔다. “노 차지! 노 차지!”를 몇 번을 반복하며 자기가 숙소를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속는 셈 치고 뒷자리에 탔다. 안내한 숙소가 그리 나쁘지 않아 묵기로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돈을 달라고 했다. '소개비를 숙소에서 받지 않고 손님에게 받다니 아까 말한 노 차지는 무어란 말인가?' 부처의 고장에 왔으니 자비로운 마음을 갖자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돈을 쥐어 보낸 후 짐을 풀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 자리와 각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지어놓은 절들을 구경하며 다녔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간 어느 나라를 가든 여행객으로서 관심이나 배려를 받았다. 가끔 무뚝뚝하거나 현지인 대하듯 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도 다른 방식의 배려라 느꼈다. 그런데 이 나라는 어떻게 된 게 여행객은 호구이고 놀려먹는 장난감이었다. 예정된 한 달은 절반도 안 지났는데 몸과 마음이 지쳤다.
갠지스강의 넓은 물줄기에 기대서라도 편안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로 향했다. 동이 어렴풋이 틀 무렵 도착했다. 강가와 가까운 게스트하우스 중 가장 먼저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짐만 맡기고 주변을 둘러본 뒤 오후에 다시 와 체크인을 하겠다고 했다. 주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숙소를 지금부터 써도 추가 숙박비는 안 받을 테니 짐을 방에 넣어두고 열쇠를 가져가라고 했다. 친절한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숙박비가 더 싼 숙소로 옮기려고 짐을 빼는데 주인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틀 치 숙박비를 달라고 했다. 황당하여 따지다 보니 목소리가 커졌다.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 모든 시선을 일개 방랑자가 이겨내긴 힘들었다. 결국 돈을 더 내고 나왔다. 불같이 화가 났다. 점찍어둔 다른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골목길에서 한 중년 남자가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온 친구에게 차를 대접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이런 비슷한 기회가 있었다. 현지인의 초청에 멋도 모르고 응했지만 일반인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얘기 나눌 수 있었기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의 친절함에 마음이 조금 풀어져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에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차를 내온 그는 인도의 섬유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참 듣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는 인도 아낙들이 즐겨 입는 사리 천을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드릴 선물로 사가라며 길거리 가게의 몇 배를 불렀다. 딱 자르며 뿌리치고 나왔다.
대로로 나와 목적지도 없이 씩씩거리며 걸었다. 인도의 냄새와 소리로 가득한 이곳을 걷는 것조차 싫었다. 사람들과 부대낄 것을 생각하니 진저리가 나 옮기려 했던 게스트하우스도 지나쳤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는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호텔이 있었다. 무작정 들어갔다. 숙박비용은 그간 이용해온 일반 게스트 하우스의 스무 배도 넘을 정도로 비쌌지만 상관없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꼭 잠갔다. 창밖이 보이지 않도록 커튼을 2중으로 쳤다. TV에 한국방송이 잡힐 리 없으니 영국 BBC방송이 나오도록 채널을 맞췄다. 세상과 벽을 치고 오랜만에 뜨거운 물로 제대로 샤워를 했다. 따뜻해진 몸으로 침대에 누우니 잠이 쏟아졌다.
정신없이 자다 더 이상 누워 있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깜깜해서 몇 시인지 알 수 없었다. 커튼을 젖히니 아침 해가 서서히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고서야 열다섯 시간을 꼬박 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신이 많이 안정되었는지 요 며칠 잘 느껴지지 않던 허기가 느껴졌다. 1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옮겼다. 독일, 미국, 일본 등에서 온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종업원만 아니면 여기가 인도라는 것을 아무도 모를 분위기였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오랜만에 기분 좋게 식사를 하였다. 지난 2주간 찾아볼 수 없던 여유가 생겨 옆 테이블 여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여러 주제로 대화도 하였다. 어느 나라에서 왔건 나이가 어떻건 하나같이 인도가 어떠냐는 질문에 판타스틱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건물도 문화도 번잡함도 인상이 깊었다고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와도 인도에 대해 감탄만 하던 그들의 말이 귀에 남아있었다. '인도가 힘든 건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간의 인도 생활을 복기해 보았다. 어떤 일에서부터 화가 났는지, 왜 내었는지, 그때마다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따져보았다. 꼬리를 물며 이어지던 생각의 마지막에 ‘여행자의 신분에 기대어 사람들로부터 먼저 도움받기만을 바라지는 않았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여행 내내 나로부터 시작하는 베풂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풂은 당연히 그 지역에 익숙한 현지인이 여행자에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오지 않으면 먼저 베풀지 않았다. 흔히 여행자는 소비를 해주어 그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순기능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간 한국 돈으로 환산해봐야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쓰면서 생색을 냈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지난 1년 반의 여행 짬짬이 일하며 벌어놓은 돈이 충분히 있었지만 여행 막바지라 아낀다고 마음을 먹었더랬다. 돈이 엮이니 마음이 궁핍해진 것이었다. 어느새 상대의 배려를 바라기만 하는 좀생이가 되어 있었다.
마음을 바꾸었다. 사고방식이 다르다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거리를 걸으며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 돌아가면 원화로 바꾸려고 남긴 달러들을 루피로 싹 바꿨다. 더 이상 돈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몇 푼 때문에 즐거울 수 있는 추억을 괴로운 기억으로 남기기 싫었다. 다음날 콜카타로 돌아가는 기차를 1등석으로 끊어두고 이곳을 즐기기로 했다. 근사한 식당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추천하는 메뉴를 먹었다. 영화관에서 현지 영화를 보며 실컷 웃었다. 시내 곳곳을 인력거로 투어를 하고 팁을 두둑이 주었다. 저녁에는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제야 보통 여행자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남은 보름의 여행이 두렵지 않았다. 돌아보니 여행을 마쳐가는 이쯤에서 여유를 가지고 일상을 감사하며 사는 법을 알려주려고 인도는 짧은 기간 나를 혹독히 훈련시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