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회의 총무이사로의 1년
내가 왜 총무를 자처하였을까? 귀찮음과 시간에 대한 압박, 일일이 얻어야 하는 회장의 의견과 주변인들의 말들에 신경 써야 하는 총무 직함, 명예도 돈도 없는 총무 타이틀은 없어도 그만이다.
작년 1월, 한국경영기술지도사회 울산지회 신규 지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OOO지도사님 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로 시작된 대화는 통성명이 끝난 후 "이번 지도부에서 총무이사를 좀 맡아주세요."라는 대화로 이어졌다.
"전 아이가 어려서 육아를 해야 하고 하절기에는 바빠서 지회를 챙길 여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몇 번을 거절의사를 밝혔음에도 지회장은 완강했다. 아마 총무직을 할 인물이 없었으리라.
"그럼 제가 맡겠습니다만 제 일을 소홀히 하며 지회 총무직을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네, 부회장님이 전 지도부에서 총무직을 수행하셨으니 같이 도와가며 하시면 됩니다. 바쁘면 월 정기 모임도 빠져도 됩니다."
결국 총무를 맡게 되었다.
3월에 지회장 임기가 시작되고 매월 첫째 주 정례회가 시작되었다. 봄에는 일이 별로 없어 꾸준히 참석했다. 진행사업을 브리핑하고 미리 지도사들의 의견을 모았다. 대부분 회의는 상호 정보교류에 초점이 맞춰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회의 전 그간의 일들을 몇 시간 정리해서 공유하면 되는 것이라 품도 거의 들지 않았다.
여름이 되자 내 본연의 업무로 바빠졌다. 지회일을 신경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지회장은 이번 연도 본인의 성과를 위해서인지 관공서 방문을 계획했다. 지회의 발전을 위한 좋은 방향이긴 하나 문제는 관공서와의 약속을 내가 잡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 입장에선 지회가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일을 줄이는 방법이었다. 활동을 넓힐 때마다 사전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내가 맡아 할 수는 없었다.
첫 번째 기관인 중기청에서 청장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사업확장을 위한 업무는 별도의 인원을 팀장으로 세워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업무를 할 마음이 없었다. 기존에 하던 지역은행과의 협력업무를 매월 정리하는 선에서 한 해를 보냈다. 내가 의욕이 없어도 지회장 선에서 다른 이사들이나 지도사들과 일을 해가면 되는데 일은 지지부진했다.
연말이 되자 행사를 진행하자는 말이 나왔다. 추워지면서부터 업무가 한가해져서 행사를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행사에 대한 기획부터 예산까지 아무것도 정해주지 않고 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운을 띄우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지회장 마음속에는 바닷가 펜션을 빌려서 지도사들 워크숍을 하며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들어있었다. 지회에서 평소 모임에 참석하는 인원으로는 워크숍은 힘들었다. 장소도 식사도 최소 25명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만큼의 인원이 참석할 가능성은 없었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이야기하자 지회장은 한발 물러섰다. 진행시기도 12월에 하면 바로 다음 해 1월에 총회를 하여야 하는데 매월 큰 행사를 치를 수 없다는 의견에 1월로 물리기로 했다. 결국 정기총회 겸 신년회를 1월 말경에 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실제 행사는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딱 1시간이고, 장소는 멀리 갈 것 없이 울산지회 회의장에서, 행사 이후에 만찬장으로 이동하여 식사하고 끝내는 것으로 정해졌다. 당장 행사에 필요한 현수막, 지회 현판, 지회 소개 리플릿, 기념품, 시상식을 위한 꽃다발과 상품권, 상장과 임명장, 진행 PT와 사회 시나리오를 내가 총괄해야 했다. 본회에 총회 진행을 알리는 문서, 회원명단 제공 협조 공문 보내기, 지회원들에게 신년회 안내 문자 보내기, 참석자 명단 만들기와 같은 업무도 병행했다. 작년에 하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내 시간이 들어갈수록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 종류를 정하기 위해, 진행과정에 대해 얘기하고 비용에 대해 승인을 얻기 위해 지회장을 한차례 더 만나고 얘기된 데로 준비하였다. 지회장이 연결해 준 광고인쇄사에서 현수막, 현판, 리플릿을 시안을 주고 부탁했다. 기념품은 TV광고로 유명한 고*기프트 사이트에서 우산과 수건 세트에 울산지회 로고와 글자를 새겨 넣어서 주문했다. 꽃집에 연락하여 코르사주와 꽃다발을 미리 주문해 두고 상장과 임명장은 이전에 총무역할을 맡았던 부회장께 일임하였다. 행사 진행순서를 대략 기재해서 지회장께 보내놓고 대략의 진행 시나리오를 짰다.
시기에 맞춰 준비해야 해서 각 업체별로 단단히 얘기해 둬서인지 다행히 각종 준비물들은 행사 이틀 전에 전부 제작이 완료되어 택배를 받을 수 있었다. 지회장이 내가 보낸 카톡과 메일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 외에는 행사 준비는 문제가 없었다. 지회장은 하루 전에 행사 진행순서를 바꾸거나, 이미 얘기된 수상 인원은 2명인데 3명이 아니냐며 처음에 말했다가 폐기된 안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런 소리를 할 때마다 속에서 답답함이 올라왔지만 이번 행사는 치러봐야 서로의 갭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참았다.
행사 전날 지회 회의실에 방문해서 동선을 체크하고 필요한 물건도 행사장에 두었다. 지회장은 내가 방문할 거라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새로 주문한 사회자 단상을 같이 조립하자고 하였다. 1층에 택배로 와있던 박스를 2층 회의장으로 옮겼다. 지회장은 전동드릴을 준비하고 나는 설명서를 보며 나사와 나무판자를 이어서 조립이 쉽게 될 수 있도록 도왔다. 다 조립하고 나니 뿌듯하긴 하였지만 미리 말하지 않고 노동에 동원되었다는 사실만은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행사 당일이 되었다. 꽃을 찾아들고 기념품을 담을 종이백을 다이*에서 샀다. 1시간을 일찍 도착했다. 일찍 와서 준비를 도와주기로 한 지도사 두 분도 와계셨다. 같이 현수막을 달고 기념품을 백에 넣고 참석자 명단 세팅을 하였다. 10년도 더 전에 모 연구원에서 CEO과정을 운영할 때 행사 준비하던 것의 축소판이라 생각하면 이건 껌을 씹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참을 하지 않다가 다시 하게 되어도 그 가락은 여전했다. 리허설을 끝내자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상참석인원은 지도사 16명에 본회 인원 2명, 외부 초청인원 2명 하여 스무 명이었다. 행사를 시작하고 20분이 지나니 예상 인원만큼 딱 참석해 있었다. 중간에 임명식 때 시상식과 헛갈려서 상품권을 주는 실수를 한 것 때문에 지도사 한분께 줬던 상품권을 뺏는 일이 생긴 점 말고는 국민의례부터 만찬장 안내까지 행사는 잘 진행되었다.
걸어서 5분 거리인 만찬장에 모두 함께 이동하여 포도주 한잔씩 따르고 보람찬 올해를 위해 건배를 하고 나니 긴장이 풀렸다. 다른 지도사들도 준비를 한 내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한 달의 준비과정에 대한 보상이었다.
2026년도도 매월 정례회를 할 것이고 작년에 하던 사업도 진행될 것이다. 1년을 지나 보니 총무가 여러 가지를 신경을 써야 함을 알겠고 내가 여기에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지를 알겠다. 요즘 MZ나 잘파(zalpha) 세대들은 마음에 안 들면 말도 안 하고 업무를 제치던데 나는 그럴 수 없다. 내가 힘든 점에 대해 정확히 지회장에게 전달하고 내 요구사항과 그의 요구사항을 잘 절충하는 것이 남은 2년의 임기를 현명하게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시는 지도사회 총무는 맡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는 것이 행복이라지만 상황상 안 하기가 어려운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이 궁해서, 목적이 있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거절을 못해서 싫은 일을 하는 본인이 웃길 뿐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짜증이 나면 관둬라 할 것이고 누군가는 그래도 맡았다면 임기는 채워줘라고 할 것이다. 아직은 견딜만하니까 하는 것이니, 하는 동안은 다른 사람이 보기 안 좋은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총무님들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