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의 사과농사가 끝이 났다

사과농사 마지막 해의 기억들

by CJbenitora

아버지께서는 정년을 채우고 회사를 나오셔서 몇 개월간 여러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셨다. 그러다 고모부께 사과농사를 배우시면서 시골의 본인 소유의 밭에 사과를 심으셨다. 고향에 밭이 있으니 아버지는 농사도 지을 겸, 친구도 보고 친척들과도 만날 겸 자주 촌에 내려가셨다. 컨테이너 한 동의 창고 수준이던 농막은 수도시설을 갖추고 별도의 농기구와 자재 공간을 밖으로 빼면서 며칠 숙식도 가능한 공간이 되었다.


자전거 타기를 취미로 하시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과농사가 그리 탐탁지 않으셨다. 봄에 적과 할 때, 초 가을에 이파리 딸 때, 늦가을에 수확할 때와 같은 바쁜 시기를 늘 신경 쓰며 살아야 하고 취미활동도 꾸준히 나갈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 대신에 사과밭 주변 여분의 땅에 텃밭을 개간하시어 호박, 무, 상추 등을 키우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셨다.


동생과 나도 바쁜 시기에는 주말에 하루나 이틀이라도 시간을 내어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러 갔다. 하루 종일 같이 적과를 하며 옛날이야기를 하고 요즘 신경 쓰고 있는 일들을 나누는 시간은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사과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시골에 내려갈 일도 없을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얘기를 하고 추억도 공유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도 할아버지가 1년 농사를 지어서 수확한 맛난 사과를 사시사철 먹을 수 있었다. 과일가게에서 사 먹는 사과들은 비싸기도 하지만 그 크기도 작았다. 우리 사과는 아이 머리크기만큼이나 크고 달콤함도 타의추종을 불허하였다. 내 생애 가장 맛있는 사과라고 단연코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15년간 지어온 사과농사를 올해를 마지막으로 그만둔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아버지는 특히 올해 농약을 치고 오시거나 땡볕에서 일을 하고 오시면 피부가 뒤집혔다. 피부병에 걸린 듯 노출된 피부마다 붉게 올록볼록 올라왔는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도 잘 낫지 않았다. 면역력과 체력이 떨어지신 탓이었다.


2025년도 올해 사과는 봄에 갑자기 추워진 시기가 있어서 사과 꽃이 만발하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사과가 귀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고 실제로 열매가 평년에 비해 적기도 하였다. 살아남아 커가는 열매들도 예년에 비해 크기가 작거나 쉽게 흠이 생겼다. 늦가을 수확철이 다가오는데도 사과의 색깔은 나지 않고 나무마다 휑해서 사과장수들도 밭을 한번 둘러보고는 흥정하자는 말도 없이 떠났다. 밭 전체를 그들과 흥정해서 팔면 사과를 따는 것도, 싣고 가는 것도 그들이 전부 해왔었는데 올해는 그게 안되니 전부 부모님이 직접 사과를 따야 했다. 다행히 그리 높지 않은 가격이라도 지역 농협에서 사과 수매를 해주어서 판매처 걱정은 없지만 아버지는 사과나무도 늙었고 본인도 나이가 들어서 어차피 그만둘 것이었다면서 농사에 미련이 없다고 하셨다.


사과수확으로 며칠을 고생하실 나이 드신 부모님 생각에 동생과 나는 시간을 맞춰 수확을 돕기 위해 시골로 갔다. 연말이고 바쁜 일은 거의 끝나서 평일날 3일을 낼 수가 있었다. 오전에 아이들 챙겨서 학교와 학원을 보내고 1시간 반을 운전해서 사과밭에 도착했다. 옷만 갈아입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각자 한 나무씩 맡아서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흠이 있는 것들은 바닥에 던지고 멀쩡한 것들은 고추가위로 꼭지를 살려서 사과를 땄다. 한 바구니, 한 바구니 담아서 내려놓았다가 리어카로 실어 옮겼다. 그런 사과들을 부모님은 분류하여 사과 박스에 담으시는 일련의 과정들이 이어졌다.


이틀에 걸쳐 나무에 달린 사과를 전부 땄다. 그렇게 나온 멀쩡한 사과들은 사과박스에 담아 농협에 납품하였다. 이제 흠과 들을 처리할 차례였다. 바닥에 널브러진 흠과 들을 다시 바구니에 담아서 분류해서 심하지 않은 것은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우리가 먹을 용도로 빼뒀다. 지금 바로 먹거나 택배 보낼 것들이 아닌 것들은 인근에 있는 고모네 사과창고에 보관해 두었다. 그보다 조금 안 좋은 것들은 사과즙을 짜겠다고 박스당 소정의 가격에 사가겠다는 사과장수가 있어서 담아놓고 연락했더니 가져갔다. 많은 부분이 썩어 들어갔거나 도려내어야 하는 것들은 팔기가 뭐해서 우리가 직접 손질을 해서 박스에 담아 사과즙 업체에 맡겼다.


사과들이 전부 정리되자 사과밭 정리를 하였다. 사과나무 아래에 색을 낸다고 깔아놓은 은박지들을 돌돌 말아서 버렸다. 도구들과 쓰고 남은 사과박스들을 치웠다. 나무는 열매 하나 없이 휑하고, 바닥도 깔끔해졌다. 비로소 일 년의 농사의 마무리가 실감 났다.


컨테이너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잠을 자고, 사다리를 내려오다가 발목도 삐끗한 동생과 우리가 오기 전부터 수확을 하느라 피곤하신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들렀다. 안 쓰던 근육들이 자극받아 뻐근했는데 뜨듯한 온수로 몸을 풀어주니 저절로 눈이 감겼다. 지난 15년 동안 사과농사를 도와드리러 가서 했던 일들, 주고받던 이야기들, 그 시기 고민이었던 것이 지금은 전부 해결되어 있다는 것까지 추억이 되어 나를 감쌌다. 어떻게 간지 모르게 지나간 세월이었다. 봄, 가을로 간간히 가서 일을 했던 내가 이런 느낌인데 아버지는 어떤 느낌이실까?


이제 사과농사는 끝이 났다. 우리 밭은 사촌동생네가 샀기 때문에 사과는 내년에도 자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부모님은 사과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어졌다. 어머니는 자전거 동호회에 정기적으로 출석이 가능하실 것이고, 아버지는 동네 복지관에서 새로운 취미를 만드실 것이다. 부모님의 남은 노후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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