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음식이다. 구워 먹고 쪄먹고 국에 넣어먹고 튀겨먹는다. 그러면 간식이 되기도 하고 밥이 되기도 하고 반찬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만두는 흔하다. 시중에는 잘 만들어진 만두가 넘쳐난다. 두툼한 만두, 얄팍한 만두, 동그랗게 말아놓은 만두, 이처럼 다양한 크기부터 고기만두, 김치만두, 갈비만두, 야채만두 등 다양한 속까지 없는 게 없다.
집집마다 800리터가 넘는 냉장고가 하나씩은 있는 편리한 환경 덕에 만두는 늘 구매목록 1순위이다. 냉장고에 만두가 떨어져 갈 때쯤이 되면 이번엔 어떤 마트로 갈지 고민한다. 마트에 가면 새로 나온 것, 맛있어 보이는 것, 세일하는 것을 찾아 냉동만두 코너는 꼭 돌아본다.
이렇게 사 먹는 게 익숙한 만두지만 어릴 때는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위에 냉동실이 있고 아래에 냉장실이 있는 용량이 200리터도 안 되는 흰색 금성 냉장고 속에는 냉동만두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만두를 먹고 싶다고 하면 어머니는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를 갈아오셨다. 거기에 시장에서 사 온 부추와 양파, 마늘 등의 재료를 넣고 당면까지 넣어서 속을 만드셨다.
속이 완성되면 밀가루에 물을 부어 치대어 반죽을 만드셨다. 반죽을 이리저리 돌리며 꽉꽉 눌러주면 쫀득해졌다. 어머니는 반죽을 조금 떼어 도마 위에 놓고 밀가루를 겉면에 발라 붙지 않게 한 후 나무로 된 반죽밀대로 밀었다. 어느 정도 얇아지면 이때부턴 동생과 내가 주전자 뚜껑으로 찍어 만두피를 만들었다.
우리가 장난치며 만두피를 만드는 동안 어머니는 만들어둔 만두소를 오목한 프라이팬에 볶으셨다. 그렇게 볶아진 만두소가 양푼이에 담기면 김이 모락모락 났다. 우리는 만두피에 만두소를 올려 어머니가 미리 풀어둔 달걀흰자를 만두피 가장자리에 묻히며 만두를 쌌다. 배고픈 우리는 만두를 빚으며 중간중간에 만두소를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간이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엄마표 만두소는 그냥 퍼먹어도 만두를 만들어 쪄먹어도 다 맛있었다.
몇 년 전에 어머니께 어릴 때 기억을 되살려 만두를 만들어 먹자고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는 "요새 만두 잘 나오는데 뭐 하려고?"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래 돌이켜보면 만두를 직접 만들어 먹는 건 보통일이 아니지!'
만두 빚는 날은 신문지를 방에 쭉 깔아놓아도 날린 밀가루며 떨어진 만두소들로 집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린 우리에겐 신나고 즐거운 날이었지만 어머니는 홀로 장보고 속을 만들고 밀가루를 반죽하고 아이들이 어설프게 싼 만두피를 다시 싸고 정리하고 쪄서 식탁에 올리고 설거지하는 힘든 날이었을 것이다. 3교대 근무로 인해 집에 없거나 있어도 자고 있을 때가 많았던 아버지는 보통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머니가 싫다시는데 억지로 만들자고 할 수 없었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만두는 추억의 음식으로 두기로 하였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다가 엊그제 낮에 집에 혼자 있을 때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실에 삭아가는 김치가 있었고 냉동실에는 모 홈쇼핑에서 고기를 2팩이상 주문하는 사람에게 사은품으로 껴준 다짐육이 보였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만두를 어머니랑 같이 만들어야 하지? 나 혼자 만들 수 있잖아!'
만두 그까짓 것 안 빚어 본 것도 아니니 혼자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선 집에 만두 속 재료로 쓸만한 것들을 꺼냈다. 장인어른이 대용량으로 사놓았다가 남아서 유통기한이 며칠 지나버린 느타리버섯, 장모님이 애들 구워주려고 산 두부, 쉬어가는 김치, 반년동안 냉동실 자리만 차지하는 다짐육, 설 제사상에 올리고 남은 청주, 1년에 한두 번 쓰는 허브솔트와 후추, 한 덩이 남아있는 국 끓일 때 넣는 각마늘, 고기 구워 먹을 때 남아서 얼려놓은 통마늘이 준비되었다.
'김치만두를 만들면 되겠네. 좋아, 한번 만들어보자!'
만두 속 재료는 준비되었으니 만두피를 만들 밀가루를 찾았다. 싱크대 서랍장에서 한 봉지의 밀가루를 발견했다. 한데 반죽을 하려 하니 깜깜했다. 반죽을 치대는 것도 그렇고 피를 일일이 찍어내려면 힘든 것은 둘째치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망설이는 찰나 요즘은 슈퍼마켓에도 만두피를 판다던 와이프의 말이 생각났다. 바로 마트로 향했다. 왕만두피라고 적힌 만두피가 진열대에 있었다. 이렇게 2,600원으로 2시간은 써야 할 노동력을 아끼니 시작도 안 했는데 만두가 눈앞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만두소 만들 때는 익숙하지 않은 요리를 만들 때마다 켜는 인터넷 검색은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보통 만두에 자주 들어가는 부추와 당면도 없으니 안 넣기로 했다. 괜히 샀다가 남으면 그것도 냉장고에서 한참을 잠잘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만두는 냉장고 비우기의 의미도 있었다.
어머니가 만드신 만두소를 떠올려 가며 다짐육을 해동시키는 동안 김치를 잘게 다졌다. 다진 김치를 볶는 동안 다짐육이 해동되었다. 김치를 접시에 옮기고 프라이팬을 닦은 후 다짐육을 볶았다. 볶아 놓은 김치는 많이 짰다. 그 덕에 다른 속재료에 따로 간할 필요가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 장인어른의 느타리버섯 중에 냄새가 나는 일부를 버리고 정상적인 것들을 빼내서 잘게 다졌다. 다짐육이 어느 정도 볶아지자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올라왔다. 이때 버섯을 넣었다.
이어 장모님이 주신 두부를 손으로 으깨어 같이 볶았다. 고기의 냄새가 옅어질 줄 알았는데 그대로였다. 불을 센 불로 올리고 청주를 부었다. 술은 놔두면 애물단지라 여기에 절반을 붓고 찐만두를 만들 때 찜기에 물과 함께 절반을 붓기로 했다. 술로 인해 약해진 남은 고기향은 허브솔트와 후추로 잡았다.
각마늘과 통마늘을 살짝 해동시켜 부엌칼뒷면으로 빻아 넣었다. 볶고 있던 고기가 다 익고 재료가 잘 섞여 향도 괜찮아질 때 따로 담아둔 볶은 김치를 섞었다. 골고루 잘 섞은 후 불을 껐다.
만들어진 만두소를 양푼이에 담는데 김이 모락모락 났다. 어릴적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한 숟가락 퍼먹으니 밥이 당겼다. 식욕을 누르고 아까 사 온 만두피를 개봉해 깔아 두었다. 만두피를 붙이기 위한 따뜻한 물을 접시에 받아두고 만두 빚기에 돌입했다. 만두피는 총 20개였는데 어른 숟가락으로 한 스푼하고 조금 더 넣으니 속이 꽉 찼다. 만두피의 끝을 돌아가며 손가락으로 물을 묻히고 그대로 모아 쥐고 쌌다. 파는 만두피는 별 노력 없이도 속이 삐져나오는 일 없이 잘 싸졌다. 그렇게 20개를 만들었다. 양껏 넣었는데도 만두소가 절반정도 남아 따로 담아두었다. 다 만든 만두는 찜기에 올린 후 뒷정리를 했다.
만두 속 재료를 냉장고에서 꺼낸 시간이 오후 4시였는데 어느덧 오후 6시가 되어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준비한 만두를 10분간 쪘다. 김치도 만두도 안 먹는 아이들을 빼고 장모님, 나, 와이프 셋이서 저녁으로 만두를 먹었다. 와이프는 내가 직접 냉장고 남은 재료로 만두를 만들었다고 하니 신기해했다. 장모님은 드시는 내내 맛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만두를 만든 2시간이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호주에서 먹었던 김밥이 오버랩되었다. (브런치 글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 참고) 만드는 것은 둘 다 신났지만 먹어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그렇게 컸다. 특히 와이프와 장모님의 리액션은 고래도 춤추게 만들었다. 나는 다른 속재료와 섞어도 아직 약간 짠 느낌이 있는 김치만두를 밥과 같이 먹으면서 남은 만두소를 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트에 들렀다. 만두피와 함께 당면을 사기 위해서였다. 당면을 불려 삶은 후 어제 남은 만두소와 섞어 볶았다. 어느 정도 볶았을 때 계란을 추가하여 짠맛을 중화하였다. 만두피는 어제 산 것보다는 조금 크기가 작았지만 30장이 들어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작은 만두지만 만두소의 간은 냉동만두와 비견할 만큼 딱 맞았다. 이제 밥 없이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만두가 되었다. 이날 저녁에는 장거리 낚시를 갔다 돌아오신 장인어른까지 함께 넷이서 맛있게 만두를 먹었다.
아무도 나에게 만두를 빚으라 하지 않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들여 만두를 빚었다. 혼자 추억에 빠져서 즐거워했고 부가적으로 냉장고 잔반도 없앨 수 있었다. 더 맛있는 만두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고 가족 모두와 함께 먹었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만두 빚기의 추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영향을 준 것이었다.
냉동실에는 둘째 날에 빚어 놓은 만두 중에 남은 14개가 있다. 이번 주말은 어머니께 내가 만든 만두를 맛 보여드릴 것이다.
'어머니, 시간이 많은 제가 직접 할 생각을 안 하고 자꾸 어머니를 보챘네요. 참 손 많이 가는 아들이지요? 주말에 만두 같이 먹어요. 사랑합니다.'
우리 첫째와 둘째가 만두를 먹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그들에게도 가족이 함께 만두를 빚는 추억 하나 만들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