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적 관계에서 오는 한계점
나를 포함해서 90년대생 특징이 주인공병이 심각한 거 같다. 예를 들어 결혼을 결정할 때나 아이를 낳을지를 고민할 때 결정기준이 오로지 ‘나’에 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병이 깊다는 뜻이다. 결혼상대 또는 아이를 한 명의 생명,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이것에만 집중한다.
나르시시즘, 주인공병 말기라 생각한다. 나를 포함해서 왜 이렇게 됐을까? 죄송하게도 부모세대 탓이다. 부모세대가 자식을 기를 때 거래적 관계로 부모자식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녀가 성적을 잘 내면 자랑하며 자식을 나의 영광으로 여기는 문화 말이다.
자녀는 나의 성과나 실패작이 아니다. 내가 낳았지만 별개의 존재다. 그러나 부모세대부터 이어진 자의식과잉은 자식마저 자기 자신의 연장, 나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괴물을 만들었다. 본인을 주인공으로 여기지만 무엇하나 스스로 결정할 줄은 모른다. 자존감은 바닥이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것인지 저것인지 몰라 따라 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는 거래성을 가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악영향을 주는지를 보고 관계를 이어가거나 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철저한 거래관계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본인은 눈앞의 이익으로 뿌듯해할지 몰라도, 실상은 이것이야말로 밑지는 장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