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자의 소소한 일상
워라밸의 환상에서 깨어나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은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모험자본이다.
기업의 두 가지 자금 조달의 형태인 Equtiy financing과 Debt financing에서 Debt financing을 할 수 없는 초기 벤처기업 혹은 실적이 일부 발생하고 있지만 장래에 더 큰 실적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경우 전략적으로 Equity financing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중소 벤처기업에 자본을 투자하는 기관이 바로 벤처캐피털이다. 이 벤처캐피털에서 근무하는 투자심사역을 통상 벤처캐피털리스트라고 명명하고 대개 팀장 명함을 가지고 다니지만 팀원이 없고 혼자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대형 VC 들의 경우에는 이사급 인력에게 사원 대리급의 주니어 심사역을 pair로 붙여서 분석과 보고서 작성을 일임하는 게 하나의 추세가 되어가고 있다.
벤처캐피털의 가장 근본적인 본연의 업무는 좋은 벤처기업을 찾아 합리적인 기업가치에 투자를 집행하고 수년간 벤처기업의 대표님과 동고동락하면서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사실 투자심사역이 벤처기업 대표님을 도와줄 수 있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본다. 직접 창업의 경험이 있고 성공적으로 회사를 키워 exit를 경험한 투자심사역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 대표님의 고민을 제대로 이해하는 심사역은 많지 않다. 많은 투자 의사 결정과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해본 시니어 심사역들은 그래도 여러 사례에서 경험한 경험칙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주니어 심사역과 비교해서는 업체에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일부분 있다고 본다.
사실 벤처기업을 돕는 가장 핵심적인 일은 자본을 투자해주는 거다. 제대로 투자심사를 진행하고 검토하여 투자금을 집행해주는 것이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투자자이고, 한번 투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속 투자유치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심사역이 있다면 벤처기업 대표님 입장에서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심사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회사의 본질적인 기업활동은 대표님이 담당하고 재무적인 부분을 투자심사역이 메꿔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그림이다. 기존의 투자 활동을 통해서 확보하고 있는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통해 벤처기업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연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을 연결하는 것 까지가 심사역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그 이상의 기업가치 제고 활동을 심사역이 담당하기에는 심사역이 담당하고 있는 업체수, 투자 검토 업체수 등을 고려할 때 어려운 부분이 있다.
벤처캐피털 투자 심사역으로 일하는 큰 혜택 중의 하나는 상대적으로 Work Life Balance가 좋다는 거다. 좋다고 표현하는 것은 사실 잘 못되었고 일과 삶의 균형을 어느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투자심사보고서 및 펀드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부 시즌을 제외하고는 야근을 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칼퇴하는 투자심사역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지속적으로 좋은 벤처기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고 그 과정 속에서 인사이트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개 심사역들끼리 저녁을 먹으며 투자한 업체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후속 투자가 필요한 업체 공유도 한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정보는 정보 그 자체가 매우 귀하고 대중에게 잘 공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사적인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공유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를 마무리하고 저녁시간에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좋은 투자업체에 대한 공유와 업계 동향에 대해서 서로 알고 있는 내용을 주고받게 된다.
보통 투자 심사역들은 골프를 배워 칠 수 있다. 18홀 라운딩에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 5시간 내외이고 그린피나 차량, 식사 비용 등을 포함하면 1회 골프 라운딩에 소요되는 비용은 30만 원 내외이며 최소 반나절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굉장히 고비용의 스포츠가 골프다. 그런데 대부분의 벤처캐피털 투자심사역들은 골프를 친다. 투자업체 대표님과 치기도 하고 심사역들끼리 치러 가기도 하며 증권사 IPO팀과 골프를 치러 가는 등 여러 경우가 있다. 재미있는 건 골프가 지원되는 회사는 필자가 알기로 거의 없다. 다 개인 비용으로 골프를 치는 것인데 가끔은 그냥 PC방 같은 데 가서 같이 롤을 서너 시간 하는 것도 괜찮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비싼 돈을 스스로 내가며 성공한 임원, 기업가의 운동인 골프를 30대 투자심사역들이 꼭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남는 시간에 스스로의 역량을 키우는 일을 투자심사역도 해야 한다. 산업에 대한 이해도와 기업의 경쟁력을 판단하려면 심사역도 벤처기업 대표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트렌드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핵심과 본질을 확보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준비하는 기업에 대해 모험자본을 공급해야 한다. 전통의 자본시장 관점에서 투자할 수 없는 벤처기업을 투자해서 전통의 자본시장 관계자들도 납득할 수 있는 업체로 키우는 것이 투자심사역의 본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