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 나 자신이 무서울 때가 있다. 뱃속에 있는 둘째는 차치하고서라도 남편과 딸이 사라지고 결혼 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온전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딱히 책임질 것이라곤 없는, 내 몸뚱이 하나만 잘 건사하면 되는 그런 상태로 24시간, 매일을 누릴 수 있었던 시기 말이다.
이럴 때면 내 안에 작은 괴물이 사는 것 같다. 무한한 이기심이 나를 삼키는 것 같다.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그렇지 못한 현 상황에 대해 울분감이 잠시 나를 덮치니까.
내 속에 왜 작은 괴물이 살았던 것일까. 임신을 해서 몸이 무거운 탓일까. 내 무거운 몸 하나도 움직이기 쉽지 않은데 엄마를 한창 찾을 나이인 두 돌 첫째를 돌봐야 하는 체력적, 정신적 부담? 아니면 육아휴직 2년째, 나의 한 부분인 내 일을 오랫동안 놓고 있다는 것에서 발병하는 우울증 때문일까. 이것도 아니라면 나는 정말 악마인 것일까. 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내팽개치고 그저 방만하고픈 존재인가.
그렇게 그 근원을 좇아가던 중 혼자 놀고 있는 딸이 보였다. 죄책감이 들었다. 딸에게 다가가 그 죄책감만큼이나 수차례 뽀뽀를 했다. 그렇게 또 자유롭고 싶은 내 시간을 아니, 나를 잠시 뒤로했다.
딸의 뺨과 내 뺨을 맞대며 안아주고 놀아주며 깨달았다. 가끔 내 안에서 불쑥 일어난 작은 악마는 수많은 자아 중 하나라는 걸. 나는 악마가 아니라는 걸. 딸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는 것만큼 나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나의 또 다른 자아를 기억해 냈다. 딸이 조금이라도 아플 때 내가 대신 아파줄 수 없는 고통에 짓던 눈물, 딸의 작디작은 입 밖으로 쫑알쫑알 쉴 새 없이 나오는 말들과 매 순간 녹음하고 싶었던 딸의 목소리, 횡단보도 옆 신호등 색깔의 의미, 길 위에 수북이 떨어진 낙엽의 감촉, 처음 먹어보는 초콜릿 맛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뿜어내던 행복감 가득했던 딸의 미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추는 씰룩씰룩 엉덩이 춤… 마치 나는 그 순간 세상 사람들과는 또 다른 세상에 와있는 듯 너무도 생경하고 벅찬 행복감에 취해 휴대폰으로 촬영할 생각도 시간도 없었다.
작은 악마가 불러일으킨 생각과는 반대로 ‘내가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채 혼자로 살고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란 의구심이 들었고, 내가 평생 사랑하고 지키며 함께 살아갈 내 사람들이 존재함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결혼 전으로, 딸을 낳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조금의 고민 없이.
결혼 전에는 외로움에 지리멸렬하게 사무쳤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무한히 흘러넘칠 시기. 그 시간도 나쁘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했다. 그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는 것이 좋았다.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나로 인해 행복해하는 타인을 보며 나도 같이 그 감정의 테두리 안에 젖어들어가는 측면이 있기에.
그렇기에 지금 여기를 살겠다고 다짐한다. 남편이 자주 하던 말처럼 제일 예쁠 시기가 지나고 딸들이 다 커버리면 그 공허함과 함께 이 맘 때가 그리워 몸서리칠지도 모른다. 작은 악마가 다시 나타나 내 이기심, 우울증 등 여타의 이유나 핑계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을 뒤로 미루며 나를 앞세우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지는 행복한 순간들을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나의 시간을 내어 거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일. 다른 차원의 행복감일 뿐만 아니라 이로써 나는 또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느낀다.
내게 주어진 모든 행복들을 감사히 여기며 충실히 그 순간을 누려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홀로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 그 순간, 그곳에 존재하며 온전히 집중하며 행복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