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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Choenghee May 22. 2023

나를 위한다는 것

이유식을 하면서 깨달았다.

 결혼 전, 아니 출산 전, 그것도 아니. 연애하지 않을 땐 주말에 혹은 퇴근 후 여유로운 시간이 많을 때 나는 대부분 집순이였다. 집에서 소복소복 혼자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부지런한 집순이가 아니라 평일동안 부족했던 잠을 몰아 자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단 걸 먹으며 풀며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죽이던 나였다.


 흔히들 책에서나 tv 프로그램에서 나를 위한다는 것은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취미생활을 하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쉽게 <나 혼자 산다>만 봐도 집돌이, 집순이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만화책도 읽고 뜨개질도 하면서 요리도 하고 운동도 하고 배달음식이 아닌 자신의 요리를 직접 해 먹는다. 패널들은 그런 연예인을 보며 ‘어쩜 그러냐, 시간을 참 생산적으로 쓰시네,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한다.’ 등등의 반응을 보인다.

 그때마다 마음에서 반문이 일었다. ‘피곤하면 잠도 자고 쉬면서 단 거 먹고 싶을 때 아이스크림, 케이크, 빵을 먹는 게 지쳐왔던 나를 진정으로 위한 일이 아닌가? 왜 저런 방식만 자기를 잘 돌보고 위한다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일었다.


 딸의 이유식을 챙겨주면서 깨달았다. 내 마음속에 스멀스멀 올라왔던 반문과 생각들은 그저 나의 게으름과 몸에 좋지 않은 단 걸 먹기 위한 핑계였고, 그건 절대 스스로를 돌보고 위해주는 게 아니라는 것.


 처음 이유식을 만들 땐 너무 부담이었다. 나는 요알못인 데다 식재료에 대한 지식도 많지 않다. 주위에서 ‘이유식은 요리가 아니다. 부담 갖지 마. 그냥 재료 넣고 끓이면 돼. 간도 할 필요 없잖아.’ 라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에 힘입어 유명 블로그를 보며 하나하나 준비해서 딸에기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다. 아기새처럼 너무 잘 받아먹는 모습에 자식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체감했다.


 그럴수록 몸에 좋은 다양한 야채, 단백질이 많은 소고기, 닭고기, 달걀, 생선 등을 요리해 먹이고 싶어졌다. 유기농 식재료를 파는 가게에서 비트, 적채, 아욱 등, 심지어 밀가루도 유기농으로, 달걀은 무항생제에 동물복지 마크 있는 걸로 꼼꼼히 따져가며 구매했다. 이후 잠을 줄여가며 새벽이나 밤늦게 재료를 다듬고 데치고 끓이고 갈아 이유식 큐브를 만들었다.

적채와 비트 큐브, 평소에 나는 먹지도 않는 것들이다.


 나는 평소에 먹지도 않는 야채들과 잘 알지도 못하는 채소들을 꼬박꼬박 요리해 딸에게 먹여주며 깨달았다. 내 딸이 몸에 안 좋은 단 것보다, 빵보다, 과자보다 채소, 단백질이 많은 음식, 통곡물이 들어간 복합 탄수화물 등의 건강한 음식을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잘 돌보고 챙긴다는 것은 건강한 음식을 섭취하고, 피곤하지만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기르며, 책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고 산책도 하며 생각하고 쓰며 내면의 단단한 힘을 쌓아가는 것.


 딸에게 틈날 때마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부부의 산책 겸 아기띠로 안고 나가 자연의 풍경도 보여주고 집에서는 신체활동 겸 자유롭게 기어 다니게, 아빠, 엄마에게 매달리게 등을 내어주고 안아주는 나의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내 딸을 위하는 것들을 나에게도 해주는 것이 진정 나를 돌보고 가꾸는 것이겠구나.


 자식을 키우며 나는 점차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며 살았구나… 육아에 치여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나를 챙기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딸도 성장하며 나를 보고 스스로를 챙기는 게 이런 거구나를 자연스럽게 보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딸이 스스로 자신을 잘 돌보고 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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