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 寄 蘭雪軒 許楚姬 -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 寄 蘭雪軒 許楚姬 -
임이 보고 싶어 천 리 눈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이녁 임께서는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철마를 타고 왔답니다. 난새를 타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경지가 아니랍니다. 임을 대하면 먼저 눈물이 앞을 가리니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몽애한 나그네의 넋두리로 아시고 들어 주소서.
지난봄에는 경기도 광주 고을에 있는 임의 유택에서 한나절 지나가는 구름과 이름 모를 산새 그리고 춘풍과 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날은 진달래와 개나리가 지천으로 피어 마치 제가 무릉도원에 누워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설산을 넘어 임에게 달려온 길은 제가 늘 바라던 몽도(夢道)가 틀림없습니다. 철마가 달릴 때 솟구친 눈보라에 계곡이 뽀얗게 뒤덮이는 광경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답니다.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산 혹은 곤륜산이 아닌가 하는 몽환적 상상에서 헤어나지 못할 지경이었죠.
철마를 타고 백두대간을 달리며 임이 태어나신 주변 지형과 지세를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서쪽으로 대관령이 묵색으로 채색되어 있고 동쪽으로 눈이 부시도록 푸른 바다가 연신 해조음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준령과 바다 사이 솔숲에서 어린 임께서 댕기 머리 휘날리며 뛰어놀았을 고택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눈에 보아도 풍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쪽 같은 기상과 고매한 기품은 선남선녀를 품고 봉황이 누워있는 듯한 지세여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대관령과 동해 사이에서 임은 소녀였으며, 선녀였습니다. 동생 균(筠) 역시 거칠 것 없는 호방한 선인이었습니다. 늘 선계를 꿈꾸다 정말로 여선(女仙)이 되신 임. 남기신 시문 213 수로 임은 지나와 왜까지 문명(文名)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저도 임의 시향에 취해 밤을 잊거나 홍진의 질곡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서왕모를 만나 정담도 나누고 월궁 상아(孀娥)를 유혹하여 수작하는 즐거운 상상도 한답니다. 비록 맛은 텁텁하지만 나그네가 짊어지고 온 술을 받으소서.
임이 목숨처럼 아끼던 시문들이 다비 된 사건에 너무 원통하고 분하여 병이 생길 지경입니다. 지나간 일을 새삼 떠올리면 무엇하겠습니까. 고부 간의 갈등도, 부부 간의 무정함도 어찌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인걸요.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생이 가고,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는 것을요. 동생 교산(蛟山)으로 인하여 임의 체취를 맡아볼 수 있음이 불행 중 다행입니다. 임의 유작 중에 “芙蓉三九朶(부용삼구타) 紅墮月霜寒(홍타월상한)”란 구절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 인위적인 인연을 억지로 이어간다면 필경 불행이 이어지겠지요. 그 당시에 이혼이 손쉬웠다면 붉은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차가운 달빛 서리를 맞고 떨어졌을까요.
조선이란 바위 숲에서 여인으로 태어나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린 임을 ‘비운의 부용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낭군은 과거 준비로 자주 집을 비워 텅 빈 방에 홀로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을 임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파도처럼 밀려든답니다.
임의 일생은 달빛을 머금고 무서리에 붉게 물든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처럼 짧지만, 후인들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지금쯤 은하수에서 두목지(杜牧之)와 번희(樊姬)를 초빙하여 돛대 없는 배를 띄우고 시문을 지으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울 테죠.
사람 일생이 참으로 덧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 새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답니다. 임의 서랑(書郞)은 조선의 명망 있는 안동 김 씨 가문의 후손이었습니다. 부부 간의 정은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 와중에 임은 어린 남매를 잃었고 태중의 아이까지 잃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임의 낭군께서 백락(伯樂)을 조금이라도 닮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낭군께서 사임당 신 씨(申氏)의 부군을 조금이라도 닮았더라면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이 늦가을에 무서리를 맞는 일은 없었을 텐데요.
임의 아버지 허엽(許曄) 공은 양천 허 씨로 선조 임금 때 동인(東人)의 거두로 부제학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 중추부동지사를 지낸 분이십니다. 공은 강릉 김 씨 부인 사이에 봉, 균 두 아드님과 임을 보셨습니다.
오빠 하곡 봉(葑)은 임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분으로 통훈대부 사헌부 장령, 성균관 전한을 지내셨습니다. 참으로 묘하게도 같은 시기에 조정에 출사 하신 임의 아버님 허엽 공과 율곡 선생은 동서로 나뉘어 자주 대립하였습니다.
오라비 허봉은 대립각을 세우던 율곡 선생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함경도 종성(鍾城)에 유배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듬해 석방된 오라비는 금강산에 들어가 유유자적하다 38세에 세상을 버렸습니다.
임의 아버님은 처가가 있는 경포호숫가에서 사가독서 하며 강릉과 인연을 맺어 가세를 중흥했고, 또 한 분은 가까운 오죽헌에서 태어나 대학자이며 정치가로 성장하여 문명(文名)이 대대손손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두 분이 강릉을 인연으로 두고 있으면서 대결하였지요.
같은 고을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마치 수백 년 세월의 차이가 나는 것 같은 임과 사임당. 신사임당이 세상을 뜨고 12년 후에 임께서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만약 임이 조금만 더 일찍 세상에 왔더라면 두 가문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두 가문의 갈등은 후대를 사는 강릉 사람들에게는 큰 상처로 남을 테지요. 어떤 모자는 후세의 추앙받는 위인이 되었고, 어떤 가문의 여선은 아직도 조선의 슬픔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을 숭모하는 후손이 모여 임의 시문을 입에 달고 다닌답니다. 조선에 태어났다고, 여인으로 태어났다고, 거안제미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내의 아내가 되었다고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임의 아버님과 큰 오라버니 성(筬), 둘째 오라버니 봉, 임의 남동생 균 그리고 임을 일러 양천 허 씨 문중 다섯 문장가로 인구에 회자하고 있답니다. 임의 고운 시문은 영원토록 저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꺼지지 않는 등불로 많은 문사와 묵객의 허전한 가슴을 채워주고 세상을 밝혀 주리라 믿습니다.
화관을 쓰고 시 창작에 열중이신 임을 봅니다. 낭군은 며칠째 돌아오지 않고 쓸쓸한 동방에 촛불만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춤을 춥니다. 임의 한 서린 장탄식에 병풍 속 화조(花鳥)들도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합니다.
춘삼월 늦은 밤 꽃비가 내립니다. 진한 꽃내음에 임은 살며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봅니다. 달빛이 마당에 쌓인 꽃잎 위에 하얗게 부서지면서 임의 두 눈가에 눈물이 갈쌍갈쌍 합니다.
따뜻하게 덥혀 놓은 이부자리는 차갑게 식어 버렸고, 달님도 미안한지 얼른 구름 뒤로 숨어 버립니다. 초선(貂蝉)이나 양귀비가 감히 임에게 비견이나 되겠습니까. 저 멀리서 소쩍새가 짝을 찾는 구슬픈 소리가 바람을 타고 전해지네요.
임은 붓을 놓고 경대를 들여다봅니다. 거울에 비친 여인은 옥제의 딸 직녀이거나 잠시 인간세계에 유배 온 선녀가 틀림없습니다. 임의 아리따운 미모에 월궁 항아(姮娥) 조차 질투심을 느낄 지경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꽃향기는 더욱 진하고 달빛은 태산처럼 뜰에 쌓여도 기다리던 낭군은 끝내 보이지 않습니다. 앞산에서짝 잃은 귀촉도가 피를 토합니다. 낙심한 임은 붓을 들어 응어리진 정한을 풀어놓습니다. 타관에서 온 나그네 임의 울울한 심사를 대신 읊어보겠습니다.
燕倞斜簷兩兩飛(연량사첨양양비)
제비는 처마 끝에 쌍쌍이 날아들고
落花僚亂撲羅衣(낙화요난복라의)
지는 꽃은 어지럽게 치마를 스치네.
洞房極目傷春意(동방극목상춘의)
봄철 빈방에서 애태우는 이 속내
草綠江南人未歸(초록강남인미귀)
풀은 푸른 데 가신 분은 오시지 않네.
- 허난설헌의 시 “규정(閨情)”에서 -
하계에 상심한 여심을 달래 줄 인사가 없음을 알고 많은 밤과 낮을 통한 속에서 지새우다 은연 중 흉중을 시문으로 그렸습니다. 양반가 규중에서 그린 시문에 일부 몽매한 사대부의 손가락질이 보이기도 합니다.
임은 진솔한 심정을 사훼(蛇虺) 같은 자들의 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순수한 감정을 담았습니다. 절제된 묘사로 여인의 응축된 정한을 보입니다. 음미하는 저도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 장호와 옥류는 깨끗하고 푸른데
荷花深處繁蘭舟(하화심처번난주)
연꽃 우거진 깊은 곳 난을 실은 배에서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물을 두고 임을 만나 연을 따서 던지네
或被人知半日差(혹피인지반일수)
혹시 누가 보았을까 반나절 부끄럽네
- 허난설헌의 시 “채련곡(採蓮曲)”에서 -
감추고, 누르고, 못 본 척해야 하는 조선의 분위기에서 임의 시문은 명징하면서도 차갑기도 하고 오뉴월 장미보다 더 열정적으로 다가옵니다. 오죽했으면 있지도 않은 가상의 연인을 만들어 놓고 연밥을 따서 연못에 던지고 한나절 부끄러워했을까요.
수줍음 많은 여인의 휑한 가슴을 보는 듯하여 감상하는 저로서는 차마 가슴이 저리고 아파 겨우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임의 뜻이 낭군에게 전해졌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임은 남매를 먼저 저승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임의 곡자(哭子)라는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답니다. 임의 유택 앞 오른쪽에 마련된 남매의 무덤을 보면 누군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지 않을까요?
차례로 어린 남매를 먼저 보내야 했던 어미의 가슴 찢는 통곡으로 하늘이 울고 땅이 꺼질 듯한 통한의 시문을 천지신명께서는 알고 계실 겁니다.
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 슬프고 슬픈 광릉 (광주) 땅이여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 두 무덤이 마주 보고 있구나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 백양나무에는 으스스 바람이 일어나고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 도깨비불은 숲 속에서 번쩍인다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 지전을 불살라 너의 혼을 부르고
- 이하 생략 -
- 허난설헌의 시 “곡자(哭子)”에서 -
복중에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연년사(連年死)한 어린 남매의 무덤을 안고 울부짖는 임의 통곡이 귓전에 맴돌아 나그네는 차마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통곡은 당시 성리학으로 대변되는 조선의 질곡에서 힘든 삶을 인내하며 살아야 했던 조선 누이들의 애가(哀歌)가 아니던가요.
꽃은 일 년생이지만 사람이란 이름으로 피어난 꽃은 영원을 산답니다. 하지만 모두 영원을 사는 꽃은 아니지요. 임께서 곱게 자라 김문(金門)의 사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것도,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 것도 우연은 아닐 테지요.
삼라만상은 절대 우연에 의해 생겨나지 않습니다. 만상은 필연에 의해 생멸을 반복할 뿐이지요. 임을 뵙고 싶어 철마를 타고 천 리 눈보라 속을 달려온 저나 임의 생가를 찾는 무수한 발걸음들은 전생에 있어 임과 옷깃이 한 번이라도 스친 분들 아닌지요.
가슴에 불덩이를 안고 봉건 윤리의 인위적인 틀 속에서 박제된 채 살아가야 했을 임의 울분을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자유를 향한 강렬한 여심(女心)이 임의 시문에 그대로 묻어나 있습니다. 처음 시문을 접하는 분은 임을 하늘에 사는 천녀로 착각할 수도 있을 테지요.
시문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선은 바로 임이 아니던가요. 아름다운 천녀를 통해 임의 이룰 수 없었던 꿈을 대변한 유선시(遊仙詩)는 중국의 것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한 폭의 요지경을 보는 듯한 몽상에 자주 빠지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습니다.
임의 시에 묘사된 화려한 궁궐, 재미있는 놀이, 맛있는 음식들, 아름다운 옷과 장식품들, 신선들과 여선(女仙)들 간의 사랑 이야기 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정신적 탈출구가 될 뿐만 아니라,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당송(唐宋)의 복사꽃 향기를 잠시라도 맡아본 문사라면 얼마든지 임의 체취를 느낄 수 있거든요. 문명을 높이기 위하여 인위(人爲)를 첨가하는 문사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시류와 손잡고 분칠을 짙게 한 문장이란 우수마발이나 마찬가지랍니다. 백 사람이 한번 보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는 시문이 아닌, 한 사람이 평생을 곁에 두고 보는 시문이 더욱 가치가 있지요.
임의 고귀한 창작을 두고 일부 얼자들은 표절이라는 무책임한 독설을 내뱉고 있으나, 이 역시 달밤의 견폐지성쯤으로 치부하면 될 듯합니다.
“여자무재편시덕(女子無才便是德)”
여자의 재주 없음은 오히려 미덕이다.
삼종지도를 주창하던 뻔뻔스러운 사대부들의 머릿속이 이러했습니다. 여인은 평생 문밖 출입을 삼가고 집안에 들어앉아 애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면 되는, 그야말로 여비(女婢)의 신세라야 했습니다.
조선뿐만 아니라 지나(支那)나 동영(東瀛)의 여류들도 감히 임의 시문에 다가설 수 없습니다. 한대의 반첩여(班婕妤), 당대의 설도(薛濤)와 어현기(魚玄機), 송대의 이청조(李淸照), 주숙진(朱淑眞) 등을 임의 곁에 세우기가 참으로 민망합니다.
그들의 시문은 여염의 담장을 넘지 못했으며, 겨우 기방에서 허황한 사내들의 흥을 돋우는데 이용되었을 뿐입니다. 조선은 여인이 제대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라 임의 고통은 더했습니다.
아버지 초당 선생과 오라비 하곡 그리고 남매의 잇따른 죽음과 동생의 귀양은 임에게 삶의 이유를 상실케 했습니다. 임은 조선에 재앙이자 동시에 희망이었습니다. 당시의 재앙의 불꽃은 후대에 이르러 희망의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시문의 창작으로 이승에서의 피안처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임은 시어머니에게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테지요. 아아, 참으로 어리석고 몽매한 시대에 까막눈을 가진 자들 틈에서 임은 인간 세상에 피어날 꽃이 아니었습니다. 우매한 자들이 미쳐 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임을 알아본 후손들이 임의 아픈 상처를 위무하고자 경기도 광주 고을에 이어 임이 일곱 살 때까지 뛰어놀던 이곳 초당동 임의 생가 앞에 섰습니다. 그들은 임을 비롯 허엽, 허성,허봉, 허균 등 양천 허 씨(許氏) 다섯 문장을 기리는 시비를 세우고 기념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명나라 오명제(吳明濟)가 조선시선이란 서책을 내고, 동시대 남방위(藍芳威)가 조선의 시를 수집하여 조선고시를 명나라에서 편찬하여 임의 문장을 만방에 알리게 되었습니다.
명나라 문인 주지번(朱之蕃)은 동생 균(筠)과 친교가 있었던 자로 임의 시문을 모아 명나라에서 난설헌집(蘭雪軒集)을 엮었으며, 1711년 왜(倭)에서도 분다이지로[文台屋次郎]란 사내가 임의 시집을 편찬한 사실을 아시는지요?
이웃에서 임을 사모하는 기운이 충천한데 정작 이 땅의 후손들은 임을 홀대하는 듯하여 가슴이 미어진답니다.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며 중국풍의 시문을 지어야 양반 행세를 할 수 있다는 사대부들의 고리타분한 습성을 타파한 분이 바로 임이십니다.
羽客朝升碧玉梯(우객조승벽옥제)
우객은 비취 옥계단 타고 올라가고
桂嚴晴日白鷄啼(게엄청일백계제)
계수 벼랑 맑은 햇살에서 흰 닭이 운다
純陽道士歸何晩(순양도사귀하만)
순양도사는 왜 이리 늦는지
定向蟾宮訪羿妻(정향섬궁방예처)
아마 월궁에 항아를 만나러 갔나 보네
순양도사 여동빈(呂洞賓)이 월궁항아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는 한 폭의 신선도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 공부를 핑계로 임을 독수공방 하게 한 낭군을 원망하는 마음을 이렇듯 신선의 세계를 시문으로 그려낸 임의 절박한 심정을 조금은 알 듯합니다. 남녀가 자유로이 노닐며 고루한 양반의 금기를 깨버리는 임의 문장은 가히 혁명적 발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봉건시대 여성에 대한 속박을 격파하는 임의 시에 찬사를 보냅니다. 대관령에서 불어온 설한풍이 휘몰아치며 나그네를 눈밭에 묶어놓습니다. 쓸쓸히 앉아 있는 임의 동상 옆에 앉아 뜨거운 숨소리를 듣습니다. 시공은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놓은 잔에 눈꽃이 내려앉아 감로수가 넘칩니다. 저 동해의 해조음이 들리는지요. 저 백두대간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는지요. 이 땅의 후손들이 임의 시향을 감상하여 신기루를 좇는 황금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아 주소서.
눈앞의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 아닌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녀 서로의 가슴을 부여안고 살아가는 후손이 되게 하소서. 나그네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임의 시비를 끌어안습니다.
임은 무서리를 맞고 달빛에 젖어 시들어가는 스물일곱 송이 부용꽃이 아닙니다. 임은 후손의 영원한 연인이며, 만방(萬邦)에 아름다운 문명을 남기신 선녀입니다. 나그네 마지막 잔을 올리니 마다하지 마시고 흠향하소서.
- 강릉 초당동 허난설헌 생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