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조상을 존경하지 않거나 비방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종종 매스컴을 통해 자신의 조상을 깎아내렸다는 이유로 가문들 간에 법정소송을 벌인다는 소식을 접했다.
누가 나의 조상을 흉보거나 근거 없이 비방한다면 분노하리라. 자신의 조상이 존경스럽고 귀하다면 남의 조상 역시 존경해야 도리가 아닐까 싶다. 도토리 키 재기식의 이웃 간 또는 가문 간의 분쟁에서 이제는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애당초 조상의 원혼을 달래주려고 간 여행은 아니었다. 딸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하여 부러 부산에서 배편을 이용해 현해탄을 건넜다. 왜(倭)의 땡볕은 금수강산보다 따가웠다.
짜인 일정대로 여러 곳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역사적 긴장감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뿌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즐겁고 유익한 가족여행이 되고자 했던 것이 그만 우울한 여정이 되고 말았다.
교토(京都)는 794년 백제 의자왕의 후손인 칸무 천황이 나라(奈良)에서 천도하여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만든 도시로 메이지유신 시대까지 천여 년간 왜의 심장이었다. 그러한 곳에 4백 성상 동안 고통 속에 통곡하고 있는 우리 조상의 원혼들이 있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다이묘들의 불만을 누르고 허황한 자신의 야욕을 채우기 위하여 조선을 침범한다. 물론 두 번에 걸친 길고 긴 전쟁에서 패한 그는 결국 죽음을 맞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문은 문을 닫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비참하게 죽었지만, 그는 현재 일본에 살아있는 최고의 신(神)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러한 사실은 오사카에 가면 확연하다. 특히 그가 만들었다고 하는 오사카성은 죽은 도요토미의 혼령이 거주하는 장소였다.
층마다 그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유물들로 가득하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다. 오사카 사람들은 피폐했던 오사카를 상업 도시로 성장시킨 그를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있다.
교토에 한반도의 핏줄들이 4만 명이나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교토를 비롯하여 왜 땅에 수백만의 한반도의 혈손들이 있지만, 그들은 코무덤(鼻塚)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반도의 후손임을 감추고 왜인으로 행세하며 살아가는 일부 교포, 그들 마음 역시 편치는 않으리라.
가이드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무덤을 찾았을 때 우리 일행을 맞이한 정령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귀가 따가웠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귀에 익은 소리였다. 순간 나는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듣고 또 들어도 틀림없는 우리 가락이었다.
매음 매음 매음 매음 매에~~~
오사카성을 찾았을 때 성난 울음소리로 이국인들에게 고래고래 악을 쓰던 왜(倭) 토박이 쓰르라미들과 달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슬픈 리듬을 타고 있었다. 수천수만의 백의(白衣) 후손들 발길이 이곳에 닿았을 터, 그러나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듯 시시덕거리며 기념사진 찍고 매정하게 돌아섰을 그들 뒷모습에 정령들 가슴이 미어졌으리라.
정령들은 고국에 두고 온 가족을 찾고 있었다. 울음소리는 송아지가 어미를 찾는 지독지정의 슬픈 아리랑 가락이었다. 나는 복받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일행에서 벗어나 눈물을 훔치고 무덤 속 선조들께 사죄하였다.
큰딸이 벌겋게 상기된 채 눈물을 닦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아빠의 모습에 딸은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두 차례의 왜란(倭亂)이 끝난 뒤 전라도 순천 등 남도 지역 주민들의 코가 없었다고 한다. 조선을 침범한 왜군 대장 가등청정(加籐淸正)과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왜병에게 1인당 조선인 코 3개씩을 베어오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당시 두 장수 휘하의 왜병은 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왜군은 베어 온 조선인 코를 소금에 절여 왜국으로 보내 코무덤[鼻塚 - 하나즈카]을 세웠다.
국내에서는 이를 귀 무덤으로 알고 있는데 코 무덤이 옳다. 《일본전사(日本戰史)》속의 《청정고려진각서(淸正高麗陳覺書)》에도 교토의 무덤이 <코 무덤> 임을 밝히고 있다.
코를 왜병들에게 강제로 절단당한 조상들은 회한 속에 치욕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 불감훼상효지시야(不敢毁傷孝之始也)’. 우리는 구한말 단발령에 항거하던 선조들을 알고 있다. 머리카락을 잘려도 이러했거늘 심지어 코가 잘렸으니 말해 무엇하랴.
코 무덤에는 일반 백성뿐 아니라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수많은 조선 병사의 코도 있을 터, 낯선 땅에서 영면하지 못하고 긴긴 세월 원혼이 되어 떠돌고 있을 조상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왜인들은 최근 사이판을 비롯하여 남양군도(南洋群島)들 샅샅이 찾아다니며 2차 대전 중 사망한 왜병의 뼛조각을 찾아 위령비를 세우고, 화려했던 한때를 회상하고 있다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살아있는 신이 되어 비총(鼻塚)을 통제하는 한, 열도와 반도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을 테고, 왜인들은 과거 36년의 달콤한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리라. 자신의 조상이 귀하면 이웃 조상 역시 귀한 것을 그들은 애써 외면한 채 고집을 부리고 있다.
삼중 스님이 조선인 수십 만 명의 코가 묻힌 이 코 무덤을 알고 일본 측과 실랑이를 벌여 1990년에 그곳에서 환국위령대재를 지낸 뒤 코 무덤의 흙과 영혼들을 모셔와 1992년에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와 전라북도 부안군 호벌치에 안치했다.
코 무덤은 애초부터 코 무덤으로 불렸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뒤 왜인 하야시 라잔(林羅山 1583~1657)이 코 무덤은 잔인하므로 귀 무덤으로 부르자는 주장에 따라 귀 무덤으로 바꾸었는데, 이곳을 찾는 한국인을 의식해인지 지금은 귀(코) 무덤[耳塚(鼻塚)]으로 슬쩍 병기(倂記)해 놓고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 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뻔뻔한 처사에 분노가 인다.
언제 선조들의 원혼들이 다시 현해탄을 건너와 못다 한 한을 풀고 고향의 품에 안겨 편하게 아리랑을 부를까. 돌아서는 발길이 천근만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