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닭*은 구월산* 정상에 있는 고개 명칭이다. 이곳을 오가는 행인이 많아 주변에 주막, 마방, 대장간 등이 즐비하다. 고개를 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행상, 보부상, 유생, 농민, 어부, 중, 기녀, 논다니, 거지, 품팔이꾼 등 다양하다. 구월이라는 지명은 구월산에서 비롯되었다.
이 지역은 인천도호부 주안면에 소속되어 성말, 구월말, 못윗말, 전재울 등 자연부락이 분포되어 있다. 나라의 부군면府郡面 통폐합 정책으로 이 지역은 부천군 다주면 구월리로 개편되면서 땅 이름 구龜자가 아홉 구九자로 바뀌었다. 오닭은 서인천이나 남인천에 사는 사람들이 부평이나 한양 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넘어야 했다.
* 오닭 - 구한말 지명으로 현재 인천시 남동구 간석 오거리에서 부평 가족 공원으로 넘어가는 경인로(京仁路) 우측 구간으로 추정되고 있다.
* 구월산 - 龜月山 현재 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에 소재한 만월산(滿月山)으로 부평동과 간석동, 만수동 사이에 있다. 높이는 해발 187m이다.
맹장군은 인천에서 꽤 알려진 인사로 팔 척 장신에 힘은 항우와 비견할 만큼 장사이며 김바리*였다. 그의 외모는 마치 금강야차*를 연상할 정도로 꺽지고, 성정도 무척 감궂어 사람들은 그를 보면 슬슬 피할 정도였다.
그는 행상으로 외지를 떠돌며 걸태질하여 돈을 모아 십여 년 전부터 오닭 아래에 주막을 짓고 행인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었다. 그는 낮에는 주막 일을 거들었고 밤이면 밖에 나가 쏘다니다가 날이 밝을 때쯤 귀가하곤 했다.
맹장군은 꽤 오달져 보이는 여흥 댁과 혼인하여 슬하에 고삭부리 같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또래 아이들보다 인지 능력이 모자라 마을에서 반편이로 통했다. 부부는 근동에서 어렵게 짝을 골라 아들을 장가보냈다.
맹장군은 아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하자, 그를 방안에 가둬놓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반편이 아들은 온종일 방안에 갇혀 문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도화, 행화가 흐드러지게 핀 늦봄이었다. 인천과 부평, 한양을 오가는 행인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오닭은 장터처럼 변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잡상인들이 오닭 근처에 난전을 열어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사품에 맹장군 주막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손님들로 북적였다.
봉놋방이 손님으로 만원이 되면 마당에 있는 평상으로 손님을 받았다. 주막에는 곰배팔이와 파락호 그리고 개호주들도 제법 드나들었으나, 맹장군의 위세에 기가 죽어 술값을 외상으로 한다거나 떼어먹는 짓은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사방에 땅거미가 내려앉으면서 하룻밤 묵을 손님들이 하나둘 봉놋방에 들기 시작했다. 주방에는 여흥 댁 말고도 동자아치와 반빗아치들이 있었다. 봉놋방에 든 손님은 하룻밤을 묵고 갈 예정이고, 평상 손님은 국밥이나 막걸리만 마시고 곧 떠날 것이었다.
맹장군은 낮부터 술에 절어 얼굴이 불콰했다. 그는 날이 저물자, 대문 앞에서 주막으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 김바리 - 잇속을 노리어 남보다 먼저 약빠르게 달라붙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 금강야차 - 金剛夜叉. 여러 가지 무기로 악마를 굴복시키며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아가야, 길손 중에 돈이 있어 보이는 손님을 잘 살펴보거라. 그자들이 봉놋방에 들어 하룻밤 자고 간다면 탁주값을 반만 받도록 해라. 잠들기 전에 돈 많은 손님이 어느 방에 들었는지 알려줘야 한다.”
맹장군은 경진에게 속삭였다.
“아버님, 돈 많은 손님에게 술값의 반만 받으라니요?”
“너는 이 시아비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경진은 구월리에 사는 오대吳帶라는 사람의 외동딸이었다. 그녀는 얼굴도 제법 반반한 편이고 눈치도 빨랐다. 오대 부부는 맹장군 아들이 반편이 소리를 듣지만, 맹장군 집안이 가멸차다는 소문에 딸을 시집보냈다.
경진은 온종일 주막에서 시어머니 여흥 댁의 일손을 거들어야 했다. 그녀에게 주막 일은 각다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오대는 가난한 서생書生 출신이지만 예의를 중히 여기는 자였다.
그는 한때 과거에 응시할 정도로 웅지를 지녔으나 번번이 낙방하자 입신출세를 포기하고 고향 구월리에서 훈장 노릇을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훈장을 하자 경진은 사내아이들과 어울려 공부하여, 천자문을 읽을 줄 알았고, 소학小學도 떼었다.
아녀자가 사내들과 어울려 공부한다는 일은 불경한 짓이었다. 여인은 조신하게 있다가 나이 차면 혼인하여 지아비 뒷바라지 잘하고 자식 낳아서 훈육하면 되었다.
경진은 보통 영리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성정은 무척 곰살궂으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경진이 나이가 차서 혼인할 시기가 되자 많은 가문에서 오대에게 매파媒婆를 보냈다.
맹장군은 아들이 반편이 소리를 듣는지라 며느리만큼은 똑똑한 처녀를 들이고 싶었다. 그는 오대의 딸이 인물도 곱고 상당히 영리하다는 소문을 듣고 오대를 찾아갔다. 하지만 오대는 맹장군의 외아들이 반푼이라는 것을 알고 고민했다.
“아버지, 소녀는 인물보다 착한 심성의 사내가 좋아요.”
“그 댁은 잘 사니 시집가면 풍족하게 살 거 같네요.”
오대의 처도 딸을 거들고 나섰다.
“그 집 아들이 약간 모자란다고 한다.”
“저도 약아빠진 사내보다 모자란 듯한 사람이 좋아요.”
부인과 딸의 의견에 오대는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맹장군과 여흥댁이 또 찾아왔다. 그들은 여러 번 오대를 찾아가 읍소한 끝에 경진을 며느리로 맞이할 수 있었다. 맹장군은 경진을 며느리로 들이고 무척 기꺼워했다.
맹장군은 가을이면 오대에게 인사치레로 쌀가마를 보냈다. 물론 경진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대는 맹장군으로부터 쌀을 받고 마음이 편치 못했으나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너는 시아버지가 하는 일에 일절 관여하지 말아라.”
“어머니, 아버님 행동이 수상해요. 밤마다 집을 나가서 날이 밝아야 돌아오십니다.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시는지 모르겠어요. 어제는 아버님께서 온종일 창고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어요. 창고에 무엇이 있는 겁니까?”
여흥댁은 경진의 푸념에 가슴이 뜨끔했다. 요즘 들어 여흥댁은 똑똑한 며느리 눈치를 보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맹장군은 서너 해 전에 주막 뒤편에 작은 창고를 지었는데, 그 창고는 맹장군만 출입할 수 있었다. 평상시에 창고 문은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의 무쇠 자물통이 채워져 있어서 그 창고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네 시아버지는 창고에 들어가면 세상 모든 근심과 시름이 싹 사라진다고 한단다. 너는 시아버지가 창고에서 무엇을 하든 신경 쓰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말아라. 오로지 나를 도와 주막 일에만 신경 쓰거라.”
여흥댁은 행여 며느리가 창고 안에 들어갈까 봐 겁을 냈다. 경진은 시어머니의 말이 더 이상했다. 자신도 가족의 일원인데 창고에 얼씬도 못 하게 하는 시부모의 처사가 서운했다. 그럴수록 경진의 의구심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맹장군의 주막에는 길손을 위한 봉놋방이 열 개가 있었다. 낮에는 손님들이 보통은 마당에 설치된 평상을 이용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은 봉놋방에 들었다. 방 한 칸에 대여섯 명이 잠을 잘 수 있었고, 하룻밤 자는 데 드는 비용은 한 냥 정도였다. 일을 마친 경진이 맹장군에게 고했다.
“아버님, 네 번째, 일곱 번째 봉놋방에 든 손님이 모두 다섯 명인데 그들은 돈이 많아 보였습니다. 아버님 말씀대로 그분들에게는 탁주값을 반만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술 두 동이를 더 마셨습니다.”
경진이 맹장군에게 자신이 파악한 내용을 알렸다.
“잘했다. 잘했어. 과연 내 며느리로다.”
자시子時[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주막 영업이 끝나고 대문도 굳게 닫힌 상태였다. 맹장군은 경진이 알려준 네 번째, 일곱 번째 봉놋방으로 접근하였다. 그는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엿듣고 있었다. 봉놋방에서는 사내들의 코를 고는 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껴있어 앞에 사람이 서 있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마구간에 매어져 있는 나귀 방울 소리가 가끔 정적을 깼다. 그는 봉놋방 앞을 이리저리 바장이다가 내외가 거주하는 방으로 들어왔다.
“봉놋방에 돈 많은 작자가 다섯 명이나 들어왔는데,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되겠지. 내가 힘이 팔팔할 때 돈을 모아야 한다고. 임자도 그리 알고 있어. 며늘아기가 내가 하는 일을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해.”
“그 짓을 그만두면 안 돼요? 우리는 충분히 먹고 살만 하잖아요?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습니다. 불안해 죽겠어요.”
여흥댁은 맹장군이 무엇을 하든 절대로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린다고 말을 들을 맹장군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흥 댁도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맹장군이 밤일을 시작한 지 서너 해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새벽에 하얀 두건을 쓰고 오닭을 넘는 과객을 상대로 강도질을 하곤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맹장군이 강도라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새벽에는 시아버지 뒤를 밟아봐야지.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해. 시아버지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한다면 말려야 해.”
경진은 돈만 아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측은하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언문諺文도 모르고 한자漢字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반편이는 졸리면 잠자고, 배고프면 밥 먹고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전혀 모르는 목석이나 다름없었다.
“색시야, 어서 자자.”
경진은 한번 마음먹은 일은 꼭 실행에 옮겨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반편이는 빨리 자자며 경진을 이불 속으로 잡아끌었다.
부부는 혼인한 지 일 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어린아이 소꿉장난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편이는 밤이면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잠만 잘 뿐이었다. 그는 나이가 스무 살이 되었지만, 남녀의 오묘한 운우의 정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시집을 잘못 온 걸까? 아무리 반편이라도 음양의 기본적인 법칙도 모르다니. 언제까지 이렇게 손만 잡고 잠을 자야 하나?”
목석같은 반편이에게 손을 잡혀 이불 속에 눕기는 했지만, 경진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녀는 차츰 반편이에게 불평불만이 싸여가고 있었다.
반편이는 금방 잠이 들었고 경진은 오감五感을 깨운 채 뜬 눈으로 누워있었다. 그녀가 피곤함에 지친 나머지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시 후에 대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경진은 그 소리가 분명 맹장군이 밖으로 나가면서 낸 소리라고 짐작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살폈다. 시부모가 사용하는 방은 불이 꺼진 채 적막에 잠겨 있었다. 경진은 방에서 나와 살며시 대문을 열고 사방을 살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주막 뒤편에서 갑자기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닭 울음소리는 그녀가 가끔 들어온 소리가 분명했다. 그런데 닭 우는 소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진짜 닭이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사람이 흉내를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경진은 닭 울음소리가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단정했다. 닭 울음소리가 주막 주변에서 연속해서 들렸다. 날이 밝으려면 두 시진* 정도 더 있어야 했다.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조금 뒤 봉놋방 두 곳에 불이 켜졌다. 불 켜진 봉놋방 손님들이 기괴하게 우는 닭 울음소리를 정말로 닭이 우는 소리로 믿는 게 틀림없었다. 경진은 담장 뒤로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폈다.
“김서방, 곧 날이 밝을 거야. 나귀를 끌고 운종가*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하네. 오늘 중으로 노들나루*에 도착해 내일 아침에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 해.”
* 시진 - 時辰. 한 시진은 현재의 두 시간 정도.
* 운종가 - 雲從街. 조선 시대 지금의 종로 거리를 가리킨다.
* 노들나루 - 현재의 노량진을 말한다.
“*행수님, 좀 이상합니다. 잠자리에 든 지 얼마 안 된 듯한데, 벌써 닭이 울다니요? 닭이 병들었거나 제정신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리고 닭 우는 소리도 이상합니다. 감기에 걸린 닭 같습니다.”
“김서방, 닭은 부지런한 동물이네. 난 여태껏 육십 년을 살았어도, 영검한 닭이 실수하는 걸 보지 못했어. 어서 준비하고 가세.”
“행수님, 오늘은 오닭에 도깨비가 나타나지 않겠지요?”
“이 사람아. 세상에 도깨비가 어디 있나? 한때 그곳에 도깨비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말하기 좋아하는 자들이 꾸며낸 헛소리야.”
두 사내는 봉놋방을 나와 나귀 등에 짐을 싣고 주막을 나섰다. 그들은 인천과 한양 운종가를 오가는 행상이었다. 경진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두 행상이 떠난 뒤에 다른 봉놋방에서 잠을 자던 손님들도 떠날 준비를 하는 듯했다. 어느덧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반달이 중천에 떠서 세상을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또렷하지는 않지만 길 가는 사람이나 나귀의 형상을 분간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면 길가에 있는 나무들이 흔들리며 요란하게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두 행상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나귀를 앞세우고 터벅터벅 오닭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들이 막 너설이 늘비한 오닭 정상을 넘으려던 찰나였다.
“이놈들! 게 섰거라.”
“앗! 귀, 귀신이다.”
갑자기 기골이 장대한 괴한이 풀숲에서 튀어나와 두 행상의 앞을 가로 막고 섰다. 그 괴한은 하얀 두건을 뒤집어쓴 상태에서 손에는 장도가 들려 있는데 달빛을 받아 칼이 번쩍거렸다.
두 사내는 괴한의 모습에 기가 질려 그 자리서 꼼작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그중 김서방이란 자는 오줌까지 지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두 사내를 뒤따르던 경진은 풀숲에 숨어 기가 막힌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주막의 일곱 번째 봉놋방에 들었던 손님이었다.
* 행수 - 무리의 우두머리 또는 활을 쏘는 무리를 거느리는 우두머리.
“자, 장사님은 뉘신데 우리 앞길을 가로막습니까요?”
“나는 오닭 도깨비다. 이 고개를 넘으려면 통행세로 한 사람당 천 냥을 내야 한다. 어서 통행세를 내놓아라.”
괴한은 큰 칼을 휘두르며 두 행상을 위협했다.
“도깨비님! 수중에는 노잣돈 오십 냥밖에 없습니다.”
“저 나귀 등에 실려있는 것은 무엇이냐?”
“저, 저건 건삼乾蔘입니다요.”
“괴나리봇짐을 풀어봐라.”
괴한은 행상들이 주저주저하자, 신경질을 내며 그들의 괴나리봇짐을 빼앗아 풀어보았다. 괴나리봇짐 속에서 은자銀子와 엽전 꿰미가 나오자, 괴한은 두 행상을 노려보았다.
“이놈들! 나를 속이려 해?”
“도깨비님, 그 은자와 돈은 소인들 장사 밑천입니다. 그 돈을 가져가시면 저희 식구들은 굶어 죽습니다요. 통행세로 오십 냥만 드릴 테니, 제발 저희를 보내 주십시오.”
“이놈들! 이 돈과 은자는 통행세로 받은 것으로 할 테니 어서 저 나귀와 사라져라. 네놈들 사정을 봐서 많이 깎아준 거다. 시끄럽게 굴면 모가지를 뎅겅 잘라버릴 테다.”
괴한이 칼을 휘두르며 으름장을 놓자, 행수와 김서방은 가리산지리산하다가 부평 쪽으로 도망쳤다. 두 행상이 어둠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지자, 괴한은 답답한지 쓰고 있던 두건을 벗어버렸다.
“앗! 아, 아버님이…….”
경진은 하마터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런데 잠시 후 사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맹장군은 얼른 걀쭉한 두건을 뒤집어쓰더니 길가로 숨었다. 경진은 숨을 죽였다. 희미한 달빛을 머리에 임질한 사내 세 명이 커다란 등짐을 지고 오닭을 넘기 위해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다.
경진은 시아버지의 실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고 나자,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그녀는 맹장군이 차마 자신의 주막을 이용하는 손님을 상대로 강도질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