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반대라고 하잖아요. 천지신명께서 당신에게 일확천금 돈벼락을 내릴 모양입니다. 그리된다면 이 주막을 접고 임금님이 사시는 한양 다동에 조선에서 제일가는 기루를 짓고 행세를 해봅시다. 기루에 경국지색의 해어화 두세 송이만 키우면 고관대작이 몰려올 테지요”
“과연, 부인의 뜻이 크고 웅대합니다.”
옆에서 밥을 먹고 있던 경진 부부는 시부모가 나누는 이야기를 모두 엿듣고 있었다.
그녀는 밥을 먹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반편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숟가락을 잡은 채 경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실실 웃고 있었다. 무료한 나날이 흐르고 있었다.
비가 그치면서 오닭은 오가는 행인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맹장군 주막은 평상시처럼 손님들이 들고나면서 바쁘게 돌아갔다. 경진은 손님들을 맞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아가씨, 여기 국밥 네 개 하고 막걸리 한 동이 주쇼.”
“처녀, 우리는 고기 안주와 막걸리 두 동이요.”
“이봐 색시! 이 방에는 막걸리와 소주 각각 한 동이씩 들이고 안주로 돼지 뒷다리를 주시오. 이 주막에 들병이나 작부가 있어요?”
“저희 주막에 그런 여인은 없어요.”
경진은 손님들의 다양한 주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맹장군은 바쁘게 돌아가는 주막을 살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잠시 후에 며느리를 불렀다.
“아가, 봉놋방에 든 손님 중에 돈이 있어 보이는 자들을 파악하여 나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들이 하룻밤 자고 간다면 술값을 반만 받아라.”
경진은 시아버지가 스님이 경고하고 도호부 포교들이 나와 조사를 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녀는 주막 영업이 끝나고 맹장군에게 대충 봉놋방 호수를 알려주었다.
틀림없이 내일 새벽에도 맹장군은 닭 우는 소리를 내고 강도질 할 것으로 확신했다. 경진은 반편이 곁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반편이는 경진의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다. 그녀는 맹장군이 또 강도질한다면 도호부에서 나온 군사들에게 잡힐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만약 맹장군이 강도질하다 붙잡히면 연좌법에 따라 친정 부모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경진은 맹장군의 악행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상태로 두 시진이 흘렀다. 그때 대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경진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재바르게 담장 아래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에 때 이른 닭이 울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시아버지 맹장군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가짜 닭이 두세 번 정도 울더니 조용했다. 잠시 후에 가짜 닭이 서너 번 더 울었다. 그리고 이내 잠잠했다. 맹장군은 오닭으로 달려갔다. 그가 사라지고 곧이어 이상한 소리가 주막에 울려 퍼졌다.
“닭아 닭아 울지마라! 맹장군 인닭이다.”
“닭아 닭아 울지마라! 맹장군 인닭이다.”
경진은 주막 주변을 뛰어다니며 목청이 터져라.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외쳤다. 주막 주변에는 서너 채의 민가가 있었고, 집집이 닭을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닭들의 속성을 잘 알았다.
밤에 한 집에서 닭이 울면 다른 집의 닭들도 무의식적으로 따라서 울곤 했다. 맹장군이 내는 닭 울음소리에 봉놋방 서너 곳에 불이 켜졌다. 잠을 자던 손님들은 닭 소리와 곧이어 들린 경진의 외침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박서방, 방금 이상한 소리 들었는가?”
“행수님, 닭이 울 때가 아닌데요. 조금 전에 닭이 우는 소리는 사람이 내는 소리라고 합니다. 참으로 희한한 일도 다 있습니다.”
첫 번째 봉놋방에 들었던 손님들은 방문을 열어 밖을 살피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웅성거렸다. 그때였다. 다시 한번 여인의 음성이 주막 안마당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경진이 가성假聲으로 외치는 소리였다.
“닭아 닭아 울지마라! 맹장군 인닭이다.”
경진은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살며시 방으로 들었다. 잠에서 깬 봉놋방 손님들은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누워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이 서방, 얼마 전에도 한밤중에 닭이 울었다는구먼. 그리고 오닭에 도깨비가 나타나 길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못된 짓을 했대.”
“조금 전에 닭 우는 소리도 도깨비가 낸 소리구먼.”
“에이! 빌어먹을 도깨비. 다시 잠이나 잡시다. 새벽부터 도깨비가 나타나니 오늘은 날떠퀴가 사나울 듯합니다.”
봉놋방에 든 손님들은 다시 잠을 청했고, 오지랖 넓은 한 사내는 밖으로 나와 봉놋방 앞을 바장이며, 조금 전에 닭 우는 소리는 도깨비짓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봉놋방은 불이 꺼지고 곧이어 코 고는 소리가 진동했다.
그 시각 맹장군은 하얀 두건을 쓴 채 오닭을 서성거렸다. 그는 날이 밝을 때까지 아무도 오닭을 넘지 않자 투덜거리며 주막으로 돌아왔다. 경진은 맹장군이 빈손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엿보고 있었다.
반편이는 잠꼬대를 해가며 잠들었고, 여흥 댁은 자주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맹장군 부부는 한동안 큰 소리로 언쟁을 벌렸다. 그들이 싸우는 소리에 경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도깨비를 오닭 정상에 세워라.”
아침 일찍 날이 새기도 전에 인천도호부 포교들이 오닭을 찾았다.
그들은 고갯마루에 커다란 인형 하나를 세웠다. 인형은 흰 두건을 쓰고 붉은 오랏줄에 단단히 묶여 있는데, 그 모습이 맹장군과 흡사했다. 날이 밝자 도호부 관리들이 다시 나타나 오닭에 세워둔 도깨비 인형 앞에다 방을 붙여놓았다. 포교들은 구월리 뿐만 아니라, 인근 성말, 못윗말, 전재울 등에도 똑같은 방을 붙였다.
그동안 행인을 상대로 강도질을 일삼던 도깨비를 잡았다. 오늘 정오에 오닭 정상에서 강도 도깨비를 처형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와 형 집행을 참관하라.
- 인천도호부사 -
정오가 되자 구월리와 근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오닭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관아에서 강도 도깨비를 처형한다는 소리를 듣고 잔뜩 호기심에 부풀어 있었다. 구월리와 근동에 대략 칠백여 호戶가 거주하고 있었다. 도호부에서 도깨비를 치죄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부평뿐만 아니라, 멀리 한양까지 퍼졌다.
오닭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얀 두건을 쓴 도깨비 인형은 붉은 오랏줄에 꽁꽁 묶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로 도깨비가 사람을 해친 것으로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머나! 도깨비는 전기수*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런데 저 도깨비가 그 누구랑 비슷한 거 같은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쑥덕공론을 이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도깨비가 맹장군과 비슷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삽시간에 도깨비가 맹장군의 동생이거나 아니면 먼 친척일 수도 있다는 공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주막에서 시원한 냉수로 목 좀 축이고 가시죠?”
정오가 되기 전에 인천도호부에서 나온 형방刑房이 부하들과 맹장군이 운영하는 주막에 나타났다.
그들은 시원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곧바로 형장으로 향했다. 형방 일행이 주막에 머무는 동안 맹장군 부부는 방 안에 숨어 부들부들 떨었고 경진은 콧노래를 불렀다. 맹장군 부부는 형방 일행이 떠나자 후들거리는 다리로 오닭으로 향했다.
맹장군 부부는 도호부 관리들이 도깨비를 어떻게 단죄하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정오가 되었다. 형방이 집행문을 펼쳐 들고 구름처럼 모인 사람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맹장군 부부도 사람들 틈에 있었다.
“지금부터 선량한 사람들을 상대로 강도질을 일삼은 도깨비에 대한 형을 집행하겠습니다. 집행에 앞서 도호부사를 대신하여 형방께서 형 집행문을 낭독하시겠습니다.”
젊은 포교의 안내가 있고 나서 형방이 큰소리로 집행문을 낭독했다.
“근자에 들어 도깨비가 나타나 오닭을 지나가는 선량한 사람을 해치고 재물을 강탈하였다. 미물이 사람을 해한 죄는 참수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도깨비는 저승에 들어 염라대왕에게 또 한 번 단죄를 받을 것이다. 다시는 섬부주贍部洲에 나타나지 말지어다. 또 나타난다면 그때는 당사자 도깨비는 물론 구족九族을 멸할 것이다.”
형방이 집행문 낭독을 마치자, 다른 관리가 소리쳤다.
* 전기수 - 傳奇叟. 조선 말기 직업적으로 소설을 읽어 주거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사람.
“망나니는 극악무도한 도깨비를 참수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맹장군 보다 덩치가 두 배나 큰 망나니가 시퍼렇게 날이 선 대도大刀를 들고 나타나더니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보고 씩 웃었다.
봉두난발에 얼굴은 시커멓고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그와 시선이 마주치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맨발에 누더기를 아무렇게나 걸친 망나니의 모습은 지옥에서 온 사악한 두억시니가 분명했다.
“그, 금강야차다.”
맹장군은 망나니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변해 사시나무 떨 듯했다.
“여보. 저건 망나니입니다.”
여흥 댁이 얼굴을 찌푸리며 옆에 서 있는 지아비에게 알렸지만, 맹장군은 바지에 오줌까지 지리다 그만 그 자리에 털썩 퍼더버리고 앉았다.
맹장군이 며칠 전 창고에서 낮잠을 자는 동안 꿈속에 나타났던 금강야차가 바로 망나니와 모습이 흡사했다. 망나니는 대도를 들고 춤을 추었다. 망나니가 칼을 들고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면 구경꾼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형방이 손을 들어 망나니에게 신호를 보냈다. 망나니가 도깨비에게 다가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더니 큰 칼을 번쩍 치켜들었다. 비록 짚과 나뭇가지, 솜, 헝겊 등으로 만들어진 가짜 도깨비지만 마음 약한 사람들은 도깨비 목이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망나니의 기합 소리와 함께 도깨비의 목이 뎅겅 잘렸다. 그런데 희한한 일은 목이 잘리는 순간 도깨비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워했다.
오대는 그의 도호부 친구에게 기묘한 방안을 제의한 바 있었다. 포교들은 돼지 밥통에 빨간 물감을 넣어 도깨비 목 부위에 미리 넣어 두었다. 목이 잘리면서 붉은 물감으로 피범벅이 된 도깨비는 눈 뜨고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아이고, 천지신명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도깨비 목이 잘릴 때 맹장군은 중얼거렸다.
그는 어느새 눈물까지 흘려가며 두 손을 싹싹 비벼대고 있었다. 맹장군이 거의 실신 상태가 되면서 여흥 댁이 ‘사람 살려!’를 외쳤다. 구월리 장정들이 맹장군을 들춰 엎고 주막으로 내달렸다.
곧이어 의원이 달려왔다. 의원은 맹장군이 매우 놀라 혼절한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보름 가까이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두 눈을 뜬 채 멍청하게 천장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경진이 미음과 죽을 쑤어 대령해도 맹장군은 한 숟가락도 먹지 못했다. 경진이 미음을 떠서 맹장군 입안으로 흘려 넣으면 곧 토하기 일쑤였다. 그의 모습은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해갔다.
그가 달포 만에 자리에서 겨우 일어났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얼굴은 홀쭉하게 살이 빠져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검었던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다. 의원이 수시로 주막을 다녀갔다.
여흥 댁도 점차 헛소리하더니 반편이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주막은 경진이 힘들게 꾸려나갔다. 그녀는 맹장군이 이번에는 틀림없이 개과천선하여 다른 사람이 되리라 기대했다.
“장군께서 다행히 목숨은 건졌습니다. 이제 예전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맹장군은 의원의 말에 자신의 주막을 다녀간 스님의 경고와 창고에서 꾼 흉몽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경진에게 친정아버지를 불러달라고 했다. 한 식경 후에 오대가 헛기침하며 맹장군이 들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사돈, 얼른 쾌차하셔야죠.”
오대가 맹장군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사돈, 내가 천벌을 받는 거 같습니다. 나의 부탁을 들어주세요. 이것은 우리 주막 뒤에 있는 창고 열쇠입니다. 창고 안에 오동나무 궤짝 열두 개가 있습니다. 그 궤짝에 내가 평생 모은 재산이 들어있어요. 용궁사에 큰 궤짝 두 개를 전해주세요. 나머지 궤짝과 흰 천에 쌓여 있는 비단은 도호부에 기부하겠습니다. 도호부사에게 말씀드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말씀드려주세요. 우리 가족은 이 주막 하나만 있으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맹장군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유언하듯 말했다.
“사돈, 용단을 내리셨습니다. 진정으로 백성을 돌볼 줄 아는 장군이십니다. 부처님께서도 사돈과 가족들의 앞날을 돌봐주실 겁니다.”
오대도 맹장군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도호부사는 직접 맹장군을 찾아와 고마움을 전하였다. 도깨비가 단죄된 후로 더욱 많은 행인이 오닭으로 지나가면서 주막, 마방, 대장간 등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서너 달이 지나 맹장군과 여흥 댁은 몸을 추스르고 정상으로 돌아왔고,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잘 걷지도 못했던 반편이도 말문이 트이고 의젓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이듬해 맹장군 부부는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보았다.
<끝>
_()_ 끝까지 읽어주신 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2025 을사년도 여여하소서
2025. 2. 5일
저자 최재효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