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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과 만년필 May 13. 2023

음악도 못 듣게 하냐?

돌발성 난청이라니… 내가…

난 내 공감능력이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한국 남자치고는 상당히 상위권에 속한다고 자평했었다. 약자의 편에 서려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지겹다’라는 말로 무시하지 않으려 애써왔다. 그런데… 아직 많이 멀었다. 나는그 당사자가 되기 전에는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충분히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멀리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힘든 상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알려고 하는 노력도 기울이지 못했다. 큰 병은 아니지만 상당히 불편한 돌발성 난청이 내게 왔고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적어본다.




“음악도 못 듣게 하냐?

몇 년 전 아내가 돌발성 난청을 먼저 앓았다. 높은 음역대의 소음이 계속되는 곳에서 일하는 아내는 하루 종일 소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거기에 스트레스와 길어진 통근거리에서 오는 피로까지 겹쳐 아내에게 돌발성 난청이 생겼다. 아내는 집에 와서는 조용히 지내고 싶어 했고, 내가 적당한 음량으로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조차 힘겨워했다. 퇴근하면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던 나는 라디오를  꺼달라는 아내의 요청에 짜증이 나서 말했다.


“음악도 못 듣게 하냐?”


지금 난 너무 부끄럽고 아내에게 미안하다. 이비인후과에서 내게 돌발성 난청이라고 진단한 후 나눠준 쪽지에는 다음의 주의사항이 적혀있었다.


- 소음을 피하세요.
- 잠은 최소한 8시간 이상 주무셔야 합니다.
- 커피와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 과음, 과식은 하지 않습니다.
- 무리한 운동은 피하시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 이어폰을 사용하지 마세요.


맨 처음에 적혀있는 것조차 나는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 내가 지금 겪어보니 아무리 부드러운 선율이라도 어느 정도 데시벨 이상의 소리는 소음이고 그냥 너무 힘들다. 그런 상태의 아내에게 음악 못 듣게 한다고 짜증을 부렸던 내가 참 못났다.


“조용한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라도 지으며 살고 싶네요”

 난 이런 얘기가 농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거나 전원생활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이 귓병 덕에 ‘도시의 소음’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고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베란다 창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소음들이 참 힘들었다. 8시도 안 된 주말 아침에 부우웅 하는 청소용 송풍기 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한 높이로 계속 반복되는 듣기 싫은 소음이었다. 창문을 닫고 나니 이제는 멀리 공사장에서 기반공사를 하는지 쿵쿵하는 소리가 신경을 긁어온다. 공사소음이 멈추자 다시 창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까치소리가 너무 컸다. 시골에도 까치가 있겠지만 아파트 단지에서 여러 동에 둘러싸인 곳에서 울려 들리는 소리는 상당한 소음이다. (아파트 단지의 길고양이는 이 까치들을 쫓기 위해서라도 있어야 한다.) 이런 소음이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내가 건강해 이겨내고 있었고 이제 내 ‘연약한’ 귀는 이런 소리들을 힘겨워하고 있다. 조용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귀가 약해진 사람도 있겠구나 생각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또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온다. 아… 정말 조용한 곳에 있고 싶다…


“일찍 찾아오신 건 참 잘한 일입니다.”

내가 처음 귀가 먹먹하고 물속에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생겼을 때 아내는 얼른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돌발성 난청은 치료가 쉽진 않지만 스테로이드 처방 등의 방법이 있다고 말한 뒤 치료를 일찍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했다. ‘돌발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병은 그 원인이 여러 가지고 분명하지 않아 최대한 소음을 피하고 약을 쓰는 것 말고는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고 한다. 걱정스럽게도 3분의 1 정도만 완전히 회복되고 나머지는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청력을 잃는다고 한다. 하여간 몸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얼른 가는 게 맞다.

돌발성 난청 지식백과 정의


“알아야 한다. 배워야 한다.”

“몰랐어요”라는 변명은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다. 어른이라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몰라서 틀리거나 잘못된 경우가 있다면 부끄러워하고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멀리 있는 사람들 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변 사람의 아픔에 대해서 만큼은 배우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밝은 것만 생각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라'는 말도 어린이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나는 이제 병, 장애, 그리고 죽음 같은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것들도 알아야 한다. 눈을 돌리지 말고 제대로 알려고 해야 한다. 은유 작가가 말했든 그런 것은 '살면서 그냥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로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많이 이야기했는데요. 그만큼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는 것이 글이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은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사회적으로 해석된 것이지,
사실 '살면서 그냥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김영사 92쪽


이번 일을 통해 중요한 깨달음이 있긴 했지만 어서 낫고 싶다. ‘아픔만큼 성숙’ 해지는 건 훨씬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아픈 만큼 덜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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