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흔들릴 때는 그냥 두자.
새벽 4시 눈을 떴다. 깨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잠시 멈칫하고 이내 잠을 깼다.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기차를 탈 준비를 했다. 5시 30분기차를 타야 했다. 다행히도 기차역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 오늘 검사는 금식이라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집을 나섰다. 어두워서 새벽인지 밤인지 구분되지 않는 시각이었다. 이내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역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들 새벽에 어딜 가는 것일까? 많은 인파에 섞여 기차에 몸을 실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이 간절히 생각났지만 오늘은 가방에 생수도 챙기지 않았다. 핸드폰을 뒤적뒤적 만져보다가 가방에 넣고 눈을 감았다. 원래 나는 기차에서 잘 잠들지 못한다.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워낙 긴장을 많이 한 탓에 잠을 못 자는 게 몸에 익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만히 눈을 감고 오늘 일정을 떠올려본다. 생각만 해도 하루가 고되다.
8시가 조금 넘어 수서역에 도착했다. 서울의 출근시간은 역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택시를 잡으려고 섰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의 줄이 있어 기다려야 했다. 겨우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역에서 병원도 멀지 않은 거리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수서역도 도로도 많은 사람들로 많은 차들로 붐볐다. 마음은 급한데 택시는 내 마음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맑은 가을 하늘이 보였다. 참 좋은 날씨에 나는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병원에 오기 전 작성한 링크로 출입 QR코드를 받았다. 입구에서 확인을 하고 병원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서관 1층 채혈실에 도착했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많은 간호사 분들이 한꺼번에 채혈하고 계셔서 그런지 기다리는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곧이어 전광판에 내 대기번호와 내 이름이 뜬다. 오른쪽은 수술을 해서 혈관을 사용할 수가 없고 왼쪽은 이미 많은 혈관사용으로 채혈할 수 있는 혈관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주사를 잘하시는 간호사분들도 나를 만나면 난감해하신다. 역시나 혈관이 굳어버려 채혈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두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채혈을 끝냈다. 내게 미안해하시지만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한걸요. 하고 인사를 대신하고 채혈실을 나왔다.
다음은 흉부 엑스레이를 촬영하러 2층으로 향했다. 엑스레이는 간단히 촬영할 수 있어 금방 촬영을 끝내고 뼈스캔 준비를 하러 핵의학과로 향했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과를 가야 했다. 암이 뼈에 전이가 되었는지 확인해 보는 검사이다. 뼈 검사를 위한 주사를 맞고 3~4시간 대기후 검사가 진행된다. 원래 주사를 맞고 조영제 배출을 위해 물을 마셔야 하지만 뒤에 금식 검사가 있어 물을 마시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내게 챙겨주셨다. 역시 여기서도 주사를 맞아야 하는 난관이 왔다. 역시나 혈관이 없어 이리저리 내 팔을 보시던 선생님께서 손등에 주사를 겨우 놔주셨다. 그래도 이번엔 한 번에 맞아서 다행히 다를 외치며 핵의학과를 나왔다. 이제 3시간 정도 대기를 하고 뼈스캔이 끝나면 CT 검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 3시간 꽤나 긴 시간이라 잠시 산책을 하러 나갈까 병원을 구경해 볼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해서인지 힘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밖으로 발걸음이 쉽게 옮겨지지 않는다. 혹시 검사를 일찍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CT촬영실에 잠시 확인을 하고 나서 이내 그 앞 텅 빈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핸드폰을 만져보지만 그냥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은 마음이 편하지 않은 날이다. CT촬영실 앞 의자에서 한 시간 1층 수납창구 앞 의자에서 한 시간 결국은 뼈스캔 검사실 의자에서 한 시간을 보냈다.
3시간쯤 흘렀을까 곧 검사시간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혹시나 몸에 금속물질이 있는지 확인을 받고 검사를 받기 위해 뼈스캔 검사실로 들어섰다. 하얀 기계 안에 누우니 검사하는 동안 몸이 움직이지 않도록 나를 묶어 고정시켜 주셨다. 힘든 검사는 아니지만 나는 기계들이 무섭다. 검사를 하러 들어가면 검사자의 눈빛을 자꾸만 살핀다. 검사 결과를 내게 알려주시지 않지만 혹시 이상이 있나 없나 그냥 열심히 눈치를 살펴 혼자 의미 없는 결론을 낸다.
진단을 받고 처음엔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받던 중 내 병기가 생각보다 높고 삼중음성타입인 것을 알게 되었고 서울의 병원으로 전원 하여 치료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전원을 결정한 날 병원의 의무기록실에서 내 자료를 모두 받아 들고 기차를 탔다. 채혈부터 CT, MRI까지 내 이름이 적힌 자료들의 두께가 가히 책 한 권으로 묶어질 정도였다. 기차에서 손을 덜덜 떨며 기록지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모르는 의학용어는 사전에서 찾아가며 한줄한줄 읽었다. 울면서 읽었다. CT 자료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No evidence... 전이의 증거는 없음. 읽다가 울고 또 울었다.
뼈스캔 검사가 끝나고 CT 촬영실로 향했다. 여기서도 조영제를 써야 해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 라인을 우선 잡아두고 손에 주사기를 꽂고 CT 촬영할 때 조영제를 넣는다. 역시 두 번 만에 무사히 혈관을 잡아주셨다. 사실 주사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아니 이 정도 아픈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 무시하 검사가 잘 끝나길 바랄 뿐이다. 검사실 전광판 대기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고 곧 CT촬영실로 들어섰다. 아.. 여전히 기계가 무섭다. 크고 하얀 기계가 무섭다. 검사대에 조용히 누웠다. 몸에 조영제가 들어가는 느낌이 이상하다. 방송으로 지시에 따라 숨을 들이쉬기도 하고 내쉬기도 해야 한다. 검사는 어렵지 않지만 기계들에 내가 눌리는 것 같다. 그래서 쉽지 않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오늘의 검사가 끝났다.
일정이 끝나자마자 드디어 물을 넘치듯이 마시고 간단히 지하식당으로 가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무얼 할 수 있는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딘가에 몸을 기대고 싶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병원 밖으로 나와 바로 택시를 탔다. 그리고 누운 듯이 실려서 다시 수서역으로 향했다. 서울의 가을 하늘을 즐길 수 없었다.
검사가 끝나고 이제 일주일을 기다림의 시간으로 보낸다. 혹시 결과가 이상이 있지 않을까 긴장이 된다. 집에 와서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욕도 생기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이 검사에서 나는 경계선의 사람이다. 평범한 일반인이기도 하고 다시 암환우가 될 수도 있는 그 경계에 서있다. 다시 아프고 싶지 않지만 그건 내 의지대로 향하는 일이 아니니까 마음을 다독여 본다. 마음이 흔들린다. 잡아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저 흔들린다. 그래서 그저 그냥 두기로 했다. 마음이 흔들릴 때는 그냥 내버려 두자. 나는 지금 검진 결과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이 흔들릴 때는
그냥 내버려 두자.
잦아들 때까지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