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는 김치 맛이 좌우합니다.
저녁에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 고민을 하며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냉장고 칸칸마다 자리 잡은 반찬 그릇들을 둘러봅니다. 모두 김치뿐입니다. 친정집과 처갓집 그리고 내가 만든 김치가 담겨있습니다. 놀러 나갔던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 저녁을 먹고 다시 체육관에 가야 합니다.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도 급해집니다. 고민 없이 김치찌개로 저녁 메뉴를 정했습니다.
너무 짜지 않게, 너무 맵지 않게... 지난번 실패한 김치찌개를 먹고 난 후 아이들의 요구사항입니다. 인터넷 동영상을 몇 군데 살펴보면서 짜지 않고 맴지않으면서 시원하고 맛있는 김치찌개를 고민했습니다. 김치찌개는 김치 맛이 가장 중요함을 알고 있기에 그릇에 담긴 김치 가운데 가장 맛있는 김치를 골랐습니다. 또 실패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서 찌개를 끓였습니다.
아이들이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식탁에 미리 음식을 차렸습니다. 김치찌개만 불 위에서 조심스럽게 끓고 있습니다. 작은 아들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아들은 친구들과 게임에서 만나야 한다며 게임을 먼저 하고 식사는 중간중간에 나와서 먹겠다며 아빠를 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갑니다. 곧바로 큰 아들도 집에 왔습니다. 배고프다며 식탁에 앉았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런 행동은 처음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작은 아들을 불러서 식탁에 앉혔습니다.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이며 야단을 쳤습니다. 숙제보다 식사가 우선이다, 식사는 가족이 서로 마주 앉아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자리이다, 아빠가 너희들의 하인이냐, 아빠를 대하는 너희들의 자세가 너무 불량하다, 오전에는 휴대폰으로 게임하고 오후에는 밖에서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게임하고 집에 들어와서도 게임을 하겠다며 방으로 들어가면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느냐, 아빠가 언제까지 너희의 이런 모습을 참고 기다려야 하느냐, 언젠가는 너희들에게 큰 화를 낼 것만 같다..... 너무 화가 나서 목소리까지 떨렸습니다.
아이들 야단을 치느라고 김치찌개가 넘치는 줄 몰랐습니다. 찌개가 넘쳐흐르자 가스 불은 꺼졌습니다. 덕분에 김치찌개는 졸지 않고 적당한 맛을 낼 때 완성되었습니다. 한바탕 소리를 질러도 화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먹던 식사를 중간에 그만두었습니다. 냉장고에서 활명수를 꺼내서 마셨습니다.
고개 숙인 아이들은 의심스럽게 김치찌개를 맛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아빠의 찌개 중에서 최고로 맛있다며 밥을 먹습니다. 야단맞을 때 고개 숙인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들은 밥을 다 먹고 조금밖에 남지 않은 찌개를 버리지 말아 달라며 부탁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정말 맛있나 봅니다.
저녁을 먹은 아이들은 체육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끝냈습니다. 처제가 만들어 준 유자청을 컵에 넣고 따스한 물을 담았습니다. 달달하고 새콤한 유자차를 마시며 풀리지 않은 화를 다스렸습니다. 컵에 담긴 유자를 몽땅 씹어 먹어도 아빠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화가 났습니다. 화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주부 아빠의 선택을 후회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