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게으름

약간의 편리함은 꿀맛 같은 쉼을 주지만, 그 편리함을 쉽게 선택하지 말기

by 주부아빠

오늘은 새벽부터 주방으로 향했습니다. 휴일 이후에 잠깐의 게으름을 피웠더니 냉장고 속에 엔 김치밖에 없습니다. 익은 지 한참 된 총각김치, 늘 먹는 배추김치, 얼마 전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물김치가 전부입니다.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들었습니다. 전에는 메추리알을 사다가 삶고 껍질을 까서 만들었지만, 오늘은 깐 메추리알을 샀습니다. 좋게 말하면 요령이 생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게으름 때문입니다. 장조림은 메추리알의 양에 따라서 간장과 물의 비율은 달라집니다. 유튜브 요리 채널 몇 개를 공부한 후 물과 간장의 비율을 계산했습니다. 냉장고 야채 칸을 지키고 있던 새송이버섯과 쥐눈이 버섯도 추가했습니다. 먹다 남은 양파와 대파 조각들도 같이 넣었습니다. 꽈리고추 대신 청양고추로 매콤함을 첨가했습니다.


간장조림을 밥에 비벼 먹을 수 있도록 짠맛보다는 단맛의 비중을 더 높였습니다. 단짠의 조화 중에서 단맛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았습니다. 간장조림의 짠맛이 익숙해질 때, 불을 끄고 통깨를 뿌려 음식을 완성했습니다.


가족들은 메추리알 조림이 맛있다며 잘 먹습니다. 예상대로 달달하게 조린 간장 양념은 메추리알 보다 더 인기입니다. 밥에 간장을 붓고, 조린 메추리알을 으깨어 밥을 비벼 먹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식사 시간입니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나는 화장실을 들락거렸습니다. 처음에는 아침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분 나쁘게 뱃속을 자극하는 배앓이는 과식의 신호가 아니라, 뭔가를 잘못 먹어서 오는 신호였습니다.


변기에 앉아서 요리의 과정을 곱씹으며 잘못 넣은 재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요리의 과정을 되짚어봐도 문제 될만한 재료는 없었습니다. 청양고추나 꽈리고추가 너무 매워서 배가 아플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 온 메추리알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메추리알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생 메추리알을 사다가 집에서 삶아서 요리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며 스스로를 야단칩니다.


내 게으름이 원인이었습니다.


살림의 게으름이 가족을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살림에서 약간의 편리함은 잠깐의 쉼을 주지만, 그 편리함을 쉽게 선택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내 선택은 잘못되었습니다. 계란 대신 메추리알을 사는 게 아니었습니다. 계란이 비싸다고 값싼 메추리알로 바꾸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생각할수록 게으른 나 자신을 원망합니다.


저녁 반찬거리를 준비하려고 마트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시원한 비가 내립니다. 비바람이 나에게만 달려드는 기분입니다. 오늘따라 비바람이 내 얼굴만 거세게 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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