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뱅이가 자존심을 건드린 날

집에서 인형 눈이라도 붙여서 비상금을 만들어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by 주부아빠

요즘 부추 반찬을 자주 만들어 먹습니다. 옥상에서 키우는 부추를 끼니때마다 먹을 만큼 가져다 반찬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집 옥상 산지직송이라서 신선도는 최고입니다. 아이들도 매콤한 부추무침을 맛있게 먹습니다. 자주 먹다 보니 만들 때마다 약간의 변화를 줍니다. 멸치젓갈과 참치 젓갈, 참기름과 들기름을 번갈아 넣어가면서 질리지 않도록 음식을 만듭니다.


밥을 먹던 큰 아들이 부추무침에 골뱅이를 넣어서 먹고 싶다며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매번 부추무침을 먹고 있는 아이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더 맛있게 먹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에 저도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점심을 준비하면서 골뱅이무침이 생각났습니다. 식사 준비를 잠시 미루고 집 근처 마트로 향했습니다. 마트를 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편의점에도 골뱅이를 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1+1 혹은 2+1 행사를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마트 대신 편의점으로 갔습니다.


편의점 골뱅이는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골뱅이 깡통 1개의 값이 마트의 값보다 2배 비싼 값입니다. 골뱅이는 할인행사를 하지 않습니다. 골뱅이 옆에 있는 꼬막은 2+1 행사를 합니다. 골뱅이와 꼬막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매우 비싼 골뱅이를 살까, 아니면 저렴하고 양이 많은 꼬막을 살까....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골뱅이였기에 비싼 골뱅이를 선택했습니다.


계산대로 가는 중에도 망설입니다. 비싸도 너무 비싼 값이었습니다. 나는 망설임이 끝나기도 전에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내밀고 있습니다.


골뱅이를 넣은 부추무침은 별미였습니다. 여기에 진미채와 양파, 당근도 넣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손님에게 내놓아도 손색없는 맛입니다. 아이들은 골뱅이를 하나라도 더 먹겠다며 야단입니다. 골뱅이 덕분에 맛있는 점심을 먹었습니다.


퇴근한 아내는 편의점에서 뭘 샀길래 1만 6천 원이 문자로 왔냐며 물었습니다. 점심때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나도 값이 너무나 비싸서 망설이고 고민했지만,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원했기에 그냥 샀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질타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걸어가면 마트가 있고 그곳에서 사 오면 절반값인데 왜 편의점에서 샀으냐, 편의점이 비싼 줄 모르느냐, 아이들이 원한다고 다 들어주면 어떻게 하느냐, 비싸면 그냥 편의점에서 나와야......


아내의 말에 화가 났습니다. 비싼 걸 사 와서 나도 망설였지만, 아이들을 먹이는 것이기에 그냥 샀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먹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자주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고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혹시 1+1 할인행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갔다고, 갔는데 차마 빈손으로 그냥 나오지 못하겠더라고....


갑자기 아내는 평소 아이들에게 원칙과 규칙을 어겨도 엄격하지 못하고 관대하게 대하며 두리뭉실 넘어갔던 나의 태도를 싸잡아서 불만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며칠 전부터 몇 주 전까지의 일을 모두 끄집어내어서 조목조목 못마땅했던 나의 태도를 지적합니다.


평소에는 그냥 사과하고 앞으로 잘하겠며 받아들이는데, 이번엔 나도 화가 났습니다. 아내의 지적사항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듯이 변론했습니다. 사실, 말싸움은 제가 백전백승입니다.^^


골뱅이 때문에 시작된 싸움은 상대방의 감정과 자존심을 건드리는 큰 싸움으로 커졌습니다.


아이들은 부부싸움의 기운을 금세 알아차렸습니다. 싸움은 부부가 했는데, 눈치는 아이들이 봅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아내에게 시도했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나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이불을 들고 작은 아들방으로 갔습니다.


잠들기 직전에 카톡이 울립니다.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가 보냈는지 압니다. 아내는 평소 부르던 '00 아빠'란 호칭 대신' 000 씨'라고 내 이름을 말하며 장문의 카톡을 보냈습니다. 대충 내용을 훑어보고 작은 아들을 끌어안고 잠을 잤습니다. 아내는 안방에서 혼자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아내는 나에 대한 화를 아이들의 실수와 잘못을 혼내는 일에 쏟아냅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눈치를 봅니다. 당분간은 골뱅이를 싫어할 것입니다. 카드 사용 문자가 아내에게 가지 않도록 비상금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집에서 인형 눈이라도 붙여서 아내가 모르는 비상금을 만들어볼까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이전 02화짠맛이 강해질 때 드는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