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아내를 자주 잊습니다.
냉장고 한편에 배달음식 때 먹고 남은 소스가 쌓여있습니다. 주로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 찍어먹던 치즈소스입니다. 작은 락앤락 반찬통 몇 개도 먹다 남은 소스를 보관합니다. 냉장고를 청소할 때 버리려고 했지만, 왠지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거란 생각에 구석자리에 쟁여놓았습니다.
점심메뉴를 고민하는데, 아이들이 라면을 끓여 먹자며 달려들었습니다. 몇 달 동안 라면을 먹지 못했으니, 오늘은 먹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라면은 안 된다며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실망이 큰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은 말이 없습니다.
라면 한 번이 뭐라고... 아이들이 불쌍하고 안쓰럽게 보입니다. 아빠는 라면 대신에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작은 아들은 아빠에게 달려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외쳐댑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까르보나라를 꼭 해달라고 말하곤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음... 까르보나라.....
일단, 지체 없이 유튜브에서 까르보나라 쉽게 만드는 법을 검색합니다. 몇 개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머릿속으로 조리과정을 암기합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상상합니다. 다행히 우리 집 냉장고에는 까르보나라를 만들 수 있는 모든 재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딱! 한 가지... 모차렐라 치즈만 없습니다.
모아놓은 치즈소스가 생각났습니다. 여러 종류의 치즈 소스가 모자렐라 치즈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곧바로 조리를 시작합니다.
면을 삶습니다. 양파, 버섯, 베이컨을 잘게 썰어서 준비하고, 웍에 올리브기름으로 마늘을 볶습니다. 볶아진 마늘 기름 위에 준비한 야채를 모두 넣고 다시 볶습니다. 재료가 알맞게 볶아졌을 때, 면 삶은 면수를 두 국자 넣고 끓입니다. 여기에 우유를 부었습니다. 모아놓은 치즈 소스를 몽땅 넣습니다. 그리고 삶은 스파게티 면을 넣고 걸쭉해질 때까지 끓입니다.
조금 싱거워서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소금을 간을 맞췄습니다.
넓은 접시에 스파게티를 담고 그 위에 후추로 마무리를 한 후 식탁을 차렸습니다. 아이들은 마늘을 기름에 구울 때부터 냄새가 좋다며 기대를 합니다. 한입 맛을 보더니 맛있다며 퍼먹기 시작합니다. 적당하게 익은 깍두기를 피클 삼아 맛있게 먹습니다.
냉장고 구석에서 잠자고 있는 사과즙도 꺼냈습니다. 플라스틱 와인잔에 사과즙을 담아 아이들 접시 옆에 놓았습니다. 마시면서 먹으면 느끼함이 줄어들어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후식으로는 오렌지와 사과를 예쁘게 껍질까지 깎아서 접시에 담았습니다.
아이들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 같다며 좋아합니다. 오랜만에 아빠로서의 자긍심이 올랐습니다. 아이들은 식탁 위의 음식과 와인잔을 사진에 남겼습니다. 그리고는 가족 단톡 방에서 엄마에게 사진을 보냈습니다. 아빠의 칭찬과 음식이 맛있다는 설명과 함께 엄마에게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몇 분 뒤에 엄마의 댓글이 올라왔습니다.
"맛있겠다. 엄마 것도 남겨놨지? 저녁에 들어가서 먹어볼게~"
아차!.... 엄마 것을 덜어놓지 않았습니다. 맛있다며 남은 것까지 모조리 먹어버렸습니다. 엄마는 많이 먹지 않아서 몇 번 먹을 정도의 양만 있으면 됩니다. 깨끗한 반찬 그릇을 가져와서 두 아들과 내가 먹던 접시에서 스파게티를 조금씩 덜어서 담았습니다. 조심스럽게 담아서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모두 싹 먹어치우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아내를 자주 잊습니다. 맛있는 걸 먹을 때나 좋은 곳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왠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약간의 반성과 미안함에 퇴근 후 아내를 위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김치전이나 배추전도 준비해 놓을 생각입니다.
다 먹은 작은아들이 아빠를 보며 묻습니다.
"아빠! 더 먹고 싶어요..... 엄마 것을 내가 다 먹으면 안 돼요?"
오늘 저녁, 아내는 김치전과 배추전 뿐입니다. 마음속으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맛있게 먹는 아들을 보면 뿌듯합니다. 하지만,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함이 듭니다. 오후 내내.....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뿌듯함보다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챙겨야 할 대상은 아이들이 아니라 아내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