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아내는 살림의 기술을 잃어버렸습니다.
포근한 주말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 밖을 자주 나가지 않다 보니 계절이 변하는 것을 몸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아내와 동네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따스한 봄기운을 마스크를 통해서 전달되어 답답함은 있지만 그래도 기온은 봄이었습니다.
아내와 마트를 들렸습니다.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고 동네 시장에 구경을 갔습니다. 아내는 어묵을 먹고 싶다며 소문난 빨간 어묵가게로 향했습니다. 나는 쫀득하고 꼬들꼬들한 보통 어묵을 좋아합니다. 아내는 빨간 양념으로 끓인 부산 빨간 어묵을 좋아합니다. 둘이 마주 보며 서로가 먹던 어묵을 먹여주었습니다. 같이 먹으니 다른 맛의 어묵을 서로 먹여주는 즐겁고 유치한 장난도 쳤습니다. 종이컵에 국물을 여러 번 담아서 마셨습니다. 순식간에 빈 꼬챙이가 7개나 되었습니다. 떡볶이는 고민 끝에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오랜만에 부부 데이트를 길거리 어묵가게 앞에서 즐겼습니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니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생각을 잊었습니다. 오후 1시에 학원 가야 하는 큰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 오시냐며 밥은 어떻게 먹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아내와의 즐거운 시간을 더 누리고 싶어서 냉동실에 얼려있는 피자 몇 조각을 해동해서 먹고 학원 다녀오라고 말했습니다. 큰 아들은 시큰둥하게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큰 아들의 기분과 상관없이 아내와 계속 시장 구경을 다녔습니다. 식구들이 먹을 장을 볼까 생각했지만, 오늘만큼은 우리 부부만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어서 장은 보지 않고 돌아다녔습니다.
원래 아내는 45세까지만 일하고 이후에는 집에서 살림하며 사는 게 꿈입니다. 집안 꾸미기를 좋아하고 살림살이를 만들고 사는 게 취미입니다. 아이들 초등학교 때는 대부분의 필요한 것들은 손수 만들 정도로 살림과 육아의 기술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언젠가부터 가정살림을 내가 맡다 보니, 아내는 살림의 기술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은 거칠 과 투박한 회사원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내는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만, 자신의 원래 꿈을 이루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가끔씩 힘들어합니다.
아내는 아이들의 점심이 해결되었으니 좀 더 놀다가 들어가도 된다며 시장 구경을 즐거워했습니다. 기분 좋은 봄기운이 마주 잡은 두 손을 더욱 행복하게 감싸주었습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11시에 학원 갔던 작은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이 보이지 않는다며, 주부 아빠를 찾는 전화입니다. 큰아들과 마찬가지로 작은 아들에게도 냉동실 얼린 피자로 점심을 먹으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들은 냉동실에 피자가 보이지 않는다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피자는 아마도 큰아들이 모두 먹어치운 모양입니다.
작은 아들의 투정을 이기지 못하는 저는 아들에게 냉동실에 있는 얼린 밥을 해동해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작은 아들이 좋아하는 청국장찌개를 포장해서 갈 테니, 밥을 해동 놓고 식사 준비를 해 놓으라고 설명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찌개를 사 가지고 간다는 말에 아들의 태도는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작은 아들 때문에 미쳐 끝내지 못한 부부 데이트는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들이 좋아하는 청국장찌개를 샀습니다. 찌개가 짤듯하여 근처 가게에서 두부와 호박을 샀습니다. 함께 넣어서 끓이면 덜 짜기도 하고 찌게의 양도 늘려서 저녁까지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짧았지만, 좋았다며 행복해합니다. 집에 들어가자며 피곤하다며 손발만 씻고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안방 문을 조용히 닫고 찌개를 다시 끓여서 작은 아들 점심을 먹였습니다.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바꾸며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습니다. 아들에게도 휴대폰을 진동으로 바꾸라고 말했습니다. 다 먹은 식기는 조용히 싱크대에 담그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내의 낮잠 때문에 설거지는 잠시 미뤄야겠습니다. 물 끓는 소리에 잠이 깰까 봐서 커피 대신 우유를 마십니다. 오늘은 걸 축한 우유에서 단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