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옥상에 올라갑니다.

당분간... 꽃 구경은 검색도 하지 않을 겁니다.

by 주부아빠

간질거리는 햇살에 못 이겨서 옥상에 올라왔습니다.

아침 일과(?)를 정리하고, 작은 아들의 온라인 수업을 수시로 감독한 후 믹스커피 한 잔을 들고 올라왔습니다. 비 온 뒤라서 햇살은 순결하고 깨끗합니다. 캠핑 의장에 앉아서 성벽들처럼 둘러싸인 아파트 건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만끽합니다.


주부의 삶을 살면서 느낀 단점 중 하나는 집 안에서의 일에 집중하다 보면, 햇살을 마주할 기회가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가사를 하다 보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집에서만 움직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래서 이젠 햇살을 만나러 일부러 일을 만듭니다. 적은 양의 빨래도 바로바로 세탁합니다. 옥상에 올라가 빨래를 널면서 햇살을 쬐기 위해서입니다. 식재료가 부족하면 마트까지 일부러 걷기를 합니다. 걷는 동안이라도 햇살에 노출되기 위함입니다. 아이들에게 심부름시킬 일도 제가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바깥을 나갈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옥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죽은 화초들이 심긴 화분들입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 때문에 집안에 화초와 꽃들을 자주 심었습니다. 화려한 꽃 보기를 좋아하고 꽃 향기를 좋아하는 아내는 화분 가꾸기를 못합니다. 꽃은 자주 사 오지만, 꽃을 돌보는 일은 주로 제가 맡습니다. 살림과 가사가 서툰 저에게는 화초와 화분까지 돌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죽은 화분이 옥상에 널려있습니다. 옥상에 올라온 김에 화분까지 정리했습니다. 흙과 죽은 꽃들을 버리고 주변을 정리했습니다. 화분을 깨끗하게 씻어서 햇볕에 말렸습니다. 이젠 더 이상 꽃을 사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다시 의자에 앉아서 커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아내가 빈 화분을 보면 또다시 꽃을 사 올 것만 같습니다. 귀찮아서가 생명을 지킬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믹스커피를 다 마실 때쯤,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빈 화분에 내가 먼저 뭔가를 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관상용 꽃과 화초가 아닌 먹거리를 심기로 했습니다. 옥상을 서둘러 정리하고, 집으로 내려와서 유튜브를 검색했습니다. 다양한 홈가드닝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상추와 고추뿐만 아니라 베란다에서 키우는 고구마와 감자, 심지어는 아스파라거스까지도 키우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키워서 먹을 수 있는 토마토를 심기로 결정하고 화원으로 향했습니다.


젊은 화원 주인의 입담과 어수룩한 제 성격 탓에 짭짤이 토마토 2개, 일반 상추 3개, 겨자 상추 2개, 쑥갓 2개, 일반고추 2개, 매운 고추 1개,. 그리고 가지 2개까지 사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여기에 집에 있는 흙 대신 영양분이 가득한 원예용 흙까지 사 가지고 왔습니다.


우선, 화분에 토마토를 하나씩 심었습니다. 상추와 쑥갓은 먹고 버린 스티로폼 박스에 옹기종기 심었습니다. 고추와 가지는 커다란 원통에 듬성듬성 심었습니다. 홈가드닝 유튜버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아주 쉬운~' 혹은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라는~'이라고 웃으며 하는 말을 믿으며 정성스럽게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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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어놓은 화분과 상추를 사진 찍어서 아내에게 보냈습니다. 올봄에는 상추와 고추, 가지와 토마토까지 집에서 길러 먹을 수 있다며 자랑까지 곁들였습니다. 아내는 너무 많이 샀다며 투덜거립니다. 그래도 살림에 보탬이 되겠다며 카톡 문자 마지막에 웃음표시를 붙였습니다.


올봄에는 죽어가는 꽃들을 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꽃을 좋아하는 아내에게는 미안합니다. 대신, 코로나가 진정되면 아내와 함께 꽃구경을 자주 다닐 계획입니다.


아내에게 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유튜브 링크와 함께 감자도 심어 보라며 문자를 보냈습니다. 감자를 좋아하는 아내는 집에서 감자도 키우면 재밌겠다며 신이 나서 감자 키우는 유튜버 동영상 몇 개를 더 보냈습니다.


당분간... 꽃 구경은 검색도 하지 않을 겁니다. 감자 심으러 다시 옥상에 올라갑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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