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왓츠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Spiderman, 2019)
마블 영화는 이제 독립된 영화로써의 가치나 기능을 완벽하게 상실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이전 작품을 보지 않았으면 서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MCU 시리즈의 에피소드 하나이다. 전작 엔드게임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나, 팬들을 위한 오마주도 너무 많았다. 엔드게임 개봉 전에 공개됐던 1차 예고편에서는 감쪽같이 숨기더니, 아이언맨을 향한 추모는 러닝타임 내내 소환됐다.
엔드게임 직후의 세계를 스파이더맨 솔로 무비로 다루려고 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홈커밍 이후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한 스파이더맨인지라 이번 솔로 무비에서 다뤄야 할 내용도 떡밥도 어마 무지하게 많은데, 엔드게임의 뒷마무리까지 맡았으니. 인구의 절반이 5년 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온 거대한 사건에 이상한 용어 하나 붙여놓으면 다인가. 페이즈 3과 4의 전환점에 있는 MCU 세계관 설명, 스파이더맨 이야기, 여기에 늘어난 개그까지 꾹꾹 눌러 담았는데 썩 괜찮지는 않았다
스파이더맨을 아이언맨의 사이드킥 역할로 MCU에 불러낸 것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완성된 히어로가 아닌 성장하는 청소년기의 캐릭터인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 괜찮기는 하지만 언제까지 스타크 사이드킥으로 그릴 건지. 지금의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에 의해 다듬어졌고 그에 대한 리스펙트가 나오는 건 좋다. 아무리 아이언맨 사망 직후의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그의 그림자가 짙을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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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이언맨 사망으로 인한 스파이더맨의 심리적 상태나 고민들을 깊이 있게 다뤘다면 물론 괜찮았을 것이다. 예고편만 보면 "다음 아이언맨은 누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전면적으로 내세웠으면서, 정작 본편에서 피터가 하는 고민은 아주 가볍게 그려진다. 물론 의미부여야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만, 이상한 자기 합리화로 미스테리오에게 이더스를 내준 것을 보아라. 빠른 전개와 복잡한 세계관, 넘쳐나는 떡밥으로 인해 그의 캐릭터는 완전히 죽었다. '성장하는 히어로'였던 스파이더맨은 이번 작을 통해서는 어느 부분도 성장했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최근 마블 영화에서 제일 아쉬운 건, MCU가 너무도 거대한 작업이 되어버려서 캐릭터 하나하나에 대한 심리 묘사가 정말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예고편을 통해 떡밥을 풀고 본편에서 회수하고 심지어 떡밥을 깨부수어버리는 장난은 진짜 잘 치는데, 그 과정에서 캐릭터가 심하게 압축된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의 피터도 아이언맨 추모, 세계관 설명, MJ랑 로맨스, 몰입 방해하는 개그에 뒤덮여버렸다. 파 프롬 홈에서 건질 건 끝내주는 액션씬과 찌리릿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