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 살기

<삶은 왜 의미 있는가 - 이한>

by 사육일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의 무력함을 선명히 기억한다. 학생의 신분일 때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학, 고등학교 때 수시 전형에서 모두 떨어지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때. 이럴 땐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였다.


정말 흔하디 흔한 브랜드에서 나온 가방은 학교 생활 동안 다양한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그랬음에도, 할 일 없이 집에 가만히 앉아있다 보면 덩그러니 놓인 가방이 아무런 의미 없는 물건에 불과해 보였다.


'어째서 같은 물건을 이리도 다른 관점으로 보는 거야?'


스스로에게 질문했지만 답하지 못했다. 방학에는 가방을 볼 때 뿐 아니라, 삶의 무의미함을 조금이라도 느끼기만 하면 무력함에 깊게 빠져들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를 가게 되면 다시 친구를 만나고, 무력함이 언제 있었냐는 듯 잘 지냈다. 방학이 되면 다시 무력함에 빠져들었다. 짧디 짧은 24년의 인생 동안 이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학교에 가게 되더라도 학교에 가지 않으면 무력해진다는 사실을 무서워했다. 결국 방학의 무력함이 학교를 다니는 때에도 침범했고, 결국 인생의 모든 순간이 무력히 변해 버렸다.


기어코 나는 이 무력함이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알게 되었다. 대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고민하던 중 책 하나를 도서관에서 접한 적이 있다. <삶은 왜 의미 있는가>. 내가 나에게 수도 없이 던지고 있던 질문이 그대로 책 제목으로 쓰여 있었다. 대학생에게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고 전하듯이, 도서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책등이 아니라 표지가 정면으로 보였다. 보자마자 책을 집어들었다. 책 페이지를 빠르게 엄지 손가락의 지문 사이로 하나씩 훑으며 어떤 내용의 책인지 살펴보았다.


'우리는 인생의 관찰자가 아니다' 라는 장이 있다(49p 4장). 사람들은 가끔 광활한 우주를 다룬 유튜브 영상을 보며 '인간은 정말 우주의 먼지에도 못 미치는구나' 생각하며 자신이라는 존재의 하찮음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주에서 인간을 바라본 관점이다. 우주보다 더 큰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우주조차 먼지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먼 우주에서 우리 인간을 보았을 때 작고 하찮다고 해서, 인간을 하찮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단순히 무언가를 관찰했을 때 발견하는 현상으로는 대상의 가치를 확인하기 힘들다. 우주에서 인간을 관찰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방학 때 내가 가방을 관찰했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가방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여러 원소가 뭉쳐 있는 덩어리일 뿐이니까.


학교에 가면 일시적으로 환경의 도움을 빌려서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예컨대, 친한 학교 친구와 밥을 먹는 순간까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그냥 다른 인간과 식사라는 행위를 함께할 뿐이야. 음식도 그저 소화하면 없어질 뿐이고.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어' 따위의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친구와의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고 즐거울 뿐이었다. 무력한 상태에서도 사람을 만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있으면 -물론 관찰자의 입장이 되는 순간도 있겠지만- 자연스레 관찰자가 아닌 입장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이 사실을 <삶은 왜 의미 있는가>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방학 때는 무력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곤 했다.


그렇다면 관찰자가 아닌 입장이란 무엇일까. 바로 참여자의 입장이다. 지금까지의 설명과 비슷한 맥락으로, '글을 쓰는 행위' 를 예로 들어 보겠다. 글을 쓴다는 건 그저 종이에 연필 자국을 불규칙하게 남기는 것 뿐이다. 그냥 더러운 종이에 불과하며 라이터 하나로 쉽게 태워 없앨 수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라는 무의미한 생각에서 벗어나 보자. 군대에서 글을 쓰고 브런치 작가가 되는 동안, 나는 돈으로 책정하기 힘든 소중한 가치를 접했다. 군대에서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분의 도움 요청에 응할 수 있었으며, 군대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로 글을 쓴 덕분에 전역을 하고 나서도 인연이 이어지기도 했다. 글을 쓰고 나서 생기는 더러운 종이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는, 더러운 종이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관찰자의 입장이 아닌, 참여자의 입장을 사는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글을 써야만 참여자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꼭 창조 활동일 필요도 없다. 참여자의 입장에서 인생을 산다면,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에게는 참여자의 입장에서 인생을 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인 것이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며 어떤 가치가 만들어졌는지도 글로 쓸 예정이다. 그럼으로써 참여자 입장에서의 인생을 무한히 확장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