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서 더 발룬티어스의 공연이 10분 정도 지연되고 있었다. 10분의 차이만큼 햇빛은 점점 노을 색에 가까워지면서 공연을 위한 최고의 조명이 되어주었다. 더 발룬티어스의 곡 <summer>는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보다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노을이 지는 초여름 날씨에 더욱 잘 어울린다. 정말 그런 날씨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 <summer>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보컬 백예린은 노래를 부르기 전에 회심의 멘트를 하나 날린다.
여러분은 여름을 아름답게 보내셨나요?
좀 우울하게 보내셨어도, 저랑 비슷하니까 괜찮아요.
이 멘트가 충격적이었던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하겠다.
첫째. 저렇게 무대에서 즐거워 보이는 가수가 우울해하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어서.
둘째. 연예인이 우울해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어하는 내가 이상해서. 연예인은 뭔가 특별한 사람이니까, 일반인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리 없으리라 여겼다.
연예인도 그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일 뿐임을 알고는 있다. 그래도 수많은 팬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을 좋아하다 보면 허무함에 빠질 때가 많다. 내가 연예인을 좋아해 봤자 연예인이 나를 알아주기나 할까... 하면서 이따금 실의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연예인은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팬이 '난 수많은 팬 중 하나일 뿐이다' 하며 허무함에 빠지길 원치 않을 것이다. 사회적인 성공, 화려한 외모, 다채로워 보이는 일상 때문에 팬이 자신을 범접할 수조차 없는 존재로 여기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정말 팬과 진실한 소통을 원하는 연예인이라면 말이다. 가수 백예린은 그런 연예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이번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의 더 발룬티어스 유튜브 영상을 보면, <summer>의 전주가 나오는 중, 회심의 멘트를 하기 전에 관객의 대답이 잦아드는 순간을 조용히 노리고 있다. 그 말은 즉, 팬들과 뜻깊게 소통하기 위해 어떤 멘트를 해야 할지 미리 고민했고 준비했다는 뜻이다.
다만 가수 백예린은 계속해서 팬을 환상에 빠지게 한다. 숱 많고 찰랑이는 금발 머리, 세상 힙해보이는 타투, 두 개의 목소리(물방울 고구마 창법과 시원시원한 고음 창법)를 넘나드는 조절 능력, 두 개의 자아(록 밴드-더 발룬티어스-의 백예린과 감성적인 백예린). 멋있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멋있음 덕분에 백예린에 대한 환상은 더욱 커진다. 환상이 커질수록 일대일 관계로 뜻깊게 소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은 점차 사그라든다.
희망이 사그라드는 허무함에 빠질 때마다, 연예인은 팬에게 '자석'을 쪼개어 나누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만 한다. 아주 작게 쪼개진 자석을 받은 팬이라면, 그것이 한낱 돌덩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없이 작아졌더라도 자석은 자석이다. 끌어당기는 힘이 전혀 없는 돌덩이와 달리, 다른 극에 붙을 수 있는 자석. 가수 백예린은 곡을 부르기 전 멘트를 통해, 본인이 팬에게 나눠준 애정은 돌멩이가 아니라 자석임을 알려줬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연예인이 나눠준 애정이 한없이 작아 보일지라도, 그 애정은 분명 자석처럼 팬과 연예인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
유튜버 '원의 독백' 님은 자신의 채널 구독자 수를 공개하지 않는다. 자신이 마치 유명한 셀럽이 된 것처럼 찍은 Q&A 영상이 있는데, '왜 구독자 수를 공개하지 않나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 채널을 구독하고 계신 분들께서 자신을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으시길 바라서요. 저와 제 구독자분들은 일대일 관계인 거죠."
https://brunch.co.kr/@snowone/39 - 참고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