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과 신비'의 나라를 기대하고 온 롯데월드 손님에게 '안전과 현실'을 알려주는 존재가 있다. 롯데월드에 놀러 온 손님이 위험한 행동을 할 때 제재함으로써 손님의 '안전'을 지키며, 손님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하면 롯데월드의 행복한 분위기 또한 보장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책임진다. 나는 안전청결 캐스트다.
손님에게 안전과 현실을 확실히 알려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바로 퍼레이드* 때다. 퍼레이드를 보는 손님은 공연의 아름다움을 좇느라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퍼레이드가 이루어지는 공간과 손님이 있는 공간은 연약하디 연약한 줄 하나만으로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퍼레이드 때 손님을 예민하게 관찰해야 하고,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곧바로 제재해야 한다.
다만, '모험과 신비'를 추구해야 하는 퍼레이드에서 '안전과 현실' 만을 신경쓰다 보니, 나도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존재임을 잊곤 한다. 언제부터인지 손님의 공간과 퍼레이드의 공간을 분리하는 저 줄과 내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은 줄일 뿐이라, 손님에게 안전과 현실을 알려주는 용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매일같이 퍼레이드를 접하다 보니, 저 줄보다 내가 더 특별한 존재라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무의미한 존재로 보게 되었다.
5살배기 아이가 줄을 흔들기 시작한다. 위아래로 맥없이 출렁이는 안전 줄. 나는 왜 안전청결 캐스트가 줄을 쳐 놓았는지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 즉시 아이의 보호자분께 가서 안내를 드린다. 공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어린이 손님이 줄을 만지지 않게 통제 부탁드리겠다고. 안내를 들은 보호자께선 아이에게 만지면 안 돼, 아저씨한테 혼나, 하신다. 아이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는 시무룩해하듯 줄에서 손을 뗀다. 어린이 손님에게 다정하게 대하며 동심을 지켜주고픈 마음이, 나는 지금 안전과 현실을 알려줘야 하기에 묵살되어 버린다. 어쩔 수 없다. 내 역할을 다 해야 퍼레이드의 아름다움이 사고 없이 보장된다.
그런데 다시 안전줄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다른 아이인가, 싶었는데 같은 아이다. 보호자 분도 공연을 보느라 아이를 신경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다시 부탁드리는 멘트를 하기에도 껄끄러워서, 두 팔을 부드러운 속도로 올리며 줄에서 손을 떼 달라는 제스쳐를 보여 준다. 그러다 생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땐 어땠을까?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경고를 받아도, 눈 앞에 아름다운 요정님이 계시면 경고를 받았다는 사실도 금방 잊어버리고 동심의 세계에 빠지곤 했을까.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한가? 퍼레이드의 아름다움이고 뭐고 오로지 퇴근만을 기대하는 성인이 되어버렸다. 안전과 현실을 알린다는 현재 역할에 매몰되어 낭만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가 줄을 잡고 흔들 때마다 마음이 섬찟섬찟한다. 지금의 내 상태는 그저 물건일 뿐인 줄과 다를 바 없는데, 동심에 가득 차 있는 어린아이가 줄을 흔들 때마다 나도 흔들리는 기분이다. 마치 동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며 말해주는 듯하다.
하지만 다 커 버린 성인이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제는 성인인 상태를 인지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한 상태에서 동심을 되찾아야만 한다. 성인이 된 후 서서히 사라져버린 동심을 어떻게 하면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
안전청결 캐스트 분들이 롯데월드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자신이 알바하는 음식점을 휴무날에 방문하여 식사하고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들은 이미 나와 같은 입장에 있다. 퍼레이드를 하도 많이 보는 데다, 안전과 현실을 생각하다 보니 질릴대로 질린 상태일 테다. 그런데 그들은 그때 그 순간만큼은 '안전청결 캐스트' 가 아닌 '손님'의 역할로 롯데월드에 왔다. 단순히 손님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안전청결 캐스트로 일하고 있기에 퍼레이드가 질릴 만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레이드를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손님' 이었다. 조금은 소심하게 박수도 치고, 노래에 맞춰서 몸을 들썩이며, 퍼레이드 공연자와 눈을 마주치고 손을 흔들며 소통하려 한다.
그들은 실제로 공연에 참여해서 춤을 추기도 한다. 롯데월드에서는 퍼레이드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데, 그 중에서는 플래시몹*이라는 이벤트도 열린다. 안전청결 캐스트는 전혀 관심 없는 척 공연이 이루어지는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가, 갑자기 합류해서 춤을 추는 것이 포인트다. 물론 사전에 춤을 배워야 하며, 배운 춤을 많은 사람 앞에서 보여주겠다는 당찬 마음이 있어야만 참여 가능하다. 그래서 그렇게 해 보았다. 춤을 배우고 마음도 제대로 먹은 다음 그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끽했다. '안전과 현실'을 손님께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모두 잊고, 오로지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만약 퍼레이드를 봤던 손님이 플래시몹에 참여하는 안전청결 캐스트를 봤다면 조금 당황했을수도 있다. 퍼레이드 때 그렇게 현실적이고 냉랭해 보이던 직원이 갑자기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으니. 그 손님이 어린아이라면, 줄을 만지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시무룩했던 감정도 금세 잊어버리고, 나를 동심의 눈빛으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이 매번 '인생을 즐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어떠한 행동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즐겁겠다!' '재미있겠다!' 는 순수한 감정으로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롯데월드에 놀러 와서 퍼레이드를 즐긴다거나, 플래시몹에 참여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안전청결 캐스트들은 그들조차 모르는 사이에, 인생을 즐기려는 태도를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내게 전해주었다.
롯데월드에 놀러 온 손님에게 '안전과 현실'을 알려주는 동시에, '모험과 신비'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게끔 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중이다.
퍼레이드*: 축하 행사 따위로 시가를 화려하게 행진하는 일. 롯데월드에서는 로티 왕자가 로리 공주를 구출한 상황을 축하한다는 콘셉트로 퍼레이드가 이루어진다.
플래시몹*: 불특정 다수인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 롯데월드에서는 공연팀을 주축으로 하여, 다른 부서 캐스트가 자유롭게 플래시몹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