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내 발가락 골절의 원인은 전봇대였다 2

by 사육일칠

결국 전신마취 행. 수술은 진료를 볼 필요도 없이, 내 의사를 물어볼 틈도 없이 진행되었다. 아, 수술할 거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분명 끄덕였지만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서 안 다친 발의 엄지발가락을 끄덕여 의사의 손을 툭툭 쳤다.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난 필사적이었는데... 수술실로 들어갈 때쯤 아... 그냥 목소리를 낼 걸. 수술실은 너무너무 추웠다. 어쩌다 내가 여기에 왔는가. 오늘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났다면... 그랬다면 썬크림도 꼼꼼하게 발랐을 테고 그늘에 숨을 필요도 없었을 테고 전봇대에게 습격당하지도 않았을 텐데...정확히는 그 트럭이 습격했지. 그리고 그 남자는 대체 왜 전봇대를 바라보았던 걸까. 상반신의 담요가 덮였다. 덕분에 차가움이 덜해졌다. 산소마스크까지 덮일 때쯤, 그래. 그 남자가 다 문제였던 거야. 전봇대가 넘어질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거지. 아니, 애초에 전봇대를 넘어뜨리는 게 목적이었던 거야. 트럭 안에 있었던 남자는 사전에 영입한 테러범이었을 테고. 사람이 깔리는 건 고려 사항이 아니었을 것이고. 깔린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면 의심받을 게 분명하니까 일단은 나를 끌어냈을 것이다. 그렇지만 왜 굳이 전봇대를 넘어뜨려야 했냐는 말이다. 일단 수술이 끝나서 다 나으면 반드시 그 남자를 찾아서...

정신을 차렸다. 병실 천장이 보였다. 5분 뒤 남자가 찾아왔다. 뭐라 뭐라 했는데 뭐라는진 전혀 못 알아들었다. 아, '잘 됐다'는 말은 정확히 귀로 빨려 들어왔다. 마취 기운이 남아있는 와중에도, 그럼 발은 알아서 다 나을 테니 그 남자만 찾으면 되겠다 싶어서 폰을 찾았다. 내 폰... 두 팔을 마구 휘젔자 뭔가 떨어져서 우당탕 소리가 났다. 어떤 여자가 들어와서 무슨 일이냐고 뭐 찾는 거 있냐고 물어본다. "제 폰 좀 주세요..." "어디 있는데요?" ".... 잘 모르겠어요..." 폰 번호를 알려드려니 여자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받아봐요. 어머님이 폰 가지고 계신가 보네."
"폰 들 힘이 없어요..." 여자는 아무 말 없이 내 뺨과 침대 사이에 내 폰을 집어넣었다. "야 괜찮니? 바로 그쪽으로 갈게..!" "괜찮아 엄마... 빨리 내 폰 좀 줘... 그 남자... 그 남자를 빨리 찾아야 돼...." 마취해서 정신이 없나 보네...라는 엄마의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00님, 보호자 오셨어요."
병실 커튼이 촥, 열리는 소리와 함께 괜찮냐고 물어보는 엄마.
"너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남자라도 생겼니? 입원해서까지 남자를 찾고 난리야."
"아우, 그런 남자 말고.... 어떻게든 찾아야 하는 남자는 생겼어."
"누구?"
"날 전봇대에서 구해준 남자."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엄마.
"트럭이 쳐서 넘어진 전봇대에 깔렸는데 그 남자가 날 빼내줬거든."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는 엄마.
"사람이 깔렸는데 당연히 빼줘야지.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면 일단 낫고 보자."
"바로 찾아야 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
"그 남자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어."
"남자 생긴 거 맞구만."
"전봇대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니까. 대체 왜 그랬는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아."
"... 너 진짜 전봇대에 깔린 거니?"
한숨을 푸욱 쉬고는,
"전봇대가 멀쩡히 서 있을 때도, 트럭에 부딪히는 순간에도, 부딪혀서 넘어지는 순간에도, 넘어져서 내 발을 아작 내는 순간에도, 나를 끌어낸 후에도 전봇대를 쳐다보고 있었다니까. 내가 그 사람을 빨리 안 찾고 배기겠냐고."
"딸아, 이해는 하는데, 찾은 다음엔 뭘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사고 났던 장소에, 똑같은 곳에 가보고, 만약 만나면 물어볼 거야. 그때 왜 그랬는지."
분명 엄마는 쏜살같이 내 말을 반박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내가 그 남자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걸 그때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한다면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남자의 눈빛이다. 공허한 듯하면서도 강렬했던 그의 눈빛. 그 남자가 날 끌어낸 뒤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자, 그 상황을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던 주변 사람들. 그 사람들도 그 남자의 행동에 홀린 것이다. 분명 엄마도 그 상황에 있었다면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을 거다. 남자의 행동은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웠으니까. 이것까지 설명한다면 엄마도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퇴원하고... 11시쯤 그곳에 가 봐."
김이 빠졌다. 확신에 찬 눈빛을 느끼고는, 더 이상 왜 그러려고 하는지 묻지 않으려는 느낌이었다.

병실에서의 첫 밤은 어색했다. 건너편에서 아프신 건지 신음 소리도 들렸고, 코를 고는 소리도 들렸다. 항상 귀마개를 끼고 자는데 갑자기 수술받는 바람에 귀마개도 못 챙겼다. 덕분에 거의 밤을 새웠다. 10분 자고 5분 깨있는 걸 반복했다. 그러다 30분 정도 잤을 땐 그 남자를 만나는 꿈을 꿨다. 여전히 전봇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툭툭 건드려 왜 넘어진 전봇대를 바라보고 있냐고 물었다. 그제야 시선이 나에게로 옮겨왔지만 차라리 계속 전봇대를 바라보는 게 나았겠다는 직감이 왔다. 나는 곧바로 멱살이 잡혔고 그의 눈빛에는 공허함만이 빠진 강렬함만 남은 채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말이 들리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그를 방해한 듯 느껴졌다. 헉, 하고 잠에서 깼다. 내 소리가 컸는지 으으웅... 하며 잠에서 뒤척이는 어르신 소리가 들렸다. 꿈이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숨이 진정될 때쯤, 그를 찾아서는 안돼... 생각했다. 만약 꿈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갓 수술을 받아 약해진 내 발가락들이 다시 으스러질게 분명했다. 그래, 다 무슨 소용이냐. 앞으로 그 근처로는 얼씬도 하지 말자고. 편안한 잠에 들고는 간호사가 혈압을 체크하려고 날 깨울 때까지 푹 잤다. 아침밥을 먹고는 퇴원 준비를 했다. 갑자기 입원해서 그런지 준비할 것도 없었다.

3시간 뒤 엄마가 왔다. 나도 모르게 잠든 것 같았다. 부목으로 칭칭 감은 발을 24시간 만에 내딛자니 얼얼하니 아픔이 왔다. 덕분에 그 남자를 더욱 찾고 싶지 않아졌다. 수납을 마치고 간호사 분들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엄마의 차에 타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자취방에 가까워지자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입원하는 딱 하루동안 그렇게 먹고 싶었던 햄버거가, 여러 프랜차이즈 가게를 보니 익숙함에 금방 질려 먹고 싶지 않아졌다. 엄마의 차에서 내리는 순간에서도 그냥 자취방에 남아있는 냉동 피자나 데워먹을 심산이었다.
"최대한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나가더라도 종종걸음으로 걷고."
조수석 창문을 통해 엄마의 신신당부 소리. 대강 고개를 끄덕이면 금세 차를 타고 사라지실 것이다. 끄덕.
"알겠냐고?"
흠칫했다. 내가 뭔가 일이라도 저지를까 많이 걱정하시는 걸까. 네 알겠어요, 또박또박 대답하니, 그제야 조수석 창문이 올라가며 차를 움직이셨다. 멀어져 가는 차를 보며, 엄마와 오래 대화해 본 게 얼마만인지를 생각했다. 차가 아예 사라지고, 시계를 봤다. 11시 10분.

가자.

충동적이었다. 걷기도 힘든 상태였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어찌나 심한지 붕대에 피가 스며 나올 것 같았다. 그렇지만 피가 나오더라도 앞으로 걸어갈 수는 있었다. 왼쪽 다리로는 걷고 오른쪽 다리는 질질 끌면 가능하다. 질질 끌면서 핏자국이 남아도 나중에 친구의 도움으로 청소할 것이다. 도대체 아픈 다리로 왜 염병을 떨어서 날 귀찮게 하냐는 말을 듣는다 하더라도, 일단은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