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봄바람이 되어
17 년을 함께한 반려견이 떠났다. 17년이면 강아지 치고 오래 산 거라고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알 거다. 17년의 세월 동안 '짱구'는 단순한 강아지가 아니라 나의 동생이자 가족이었다.
약 5년 전부터 심장과 폐가 좋지 않아 약을 먹기 시작했다. 폐수종이라는데 꽤 노쇠한 탓에 언제라도 악화될 수 있기에 엄마의 하루 중 '약먹이기'는 굳건한 일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짱구보다 몇 달 어리지만 역시나 노견인 '뭉치' 역시도 노화로 인한 심장비대증으로 약을 복용해야 하면서 두 강아지의 약 복용은 하늘이 두쪽 나도 지켜져야 할 우리 가족의 사명과도 같았다.
한 달 전쯤, 그때부터 짱구는 조짐이 보였다. 짱구는 숨 쉬기조차 힘들어했다. 급히 병원에 데려갔지만, 상태는 빠르게 악화되었고 결국 응급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검사를 진행한 후 짱구의 병세가 많이 악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들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혈전 수치가 치솟았을 뿐 아니라 신장 한쪽이 종양-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으로 잠식되어 있었다. 흉수도 차 있어 호흡이 곤란했던 것이었고, 심하진 않았지만 복수도 조금씩 차오르는 상태였다. 노견인 데다 지병이 있던 탓에 한 두 달 사이에도 안 좋아질 수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급작스러운 소식이었다.
흉수를 빼내고, 다시 차오르는 걸 막기 위해 이뇨제의 용량을 늘렸다. 신장에 무리가 갈 수 있지만 흉수 억제가 우선이라 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병원에 서너 일 입원도 하고 집에는 호흡을 도와줄 산소방도 설치했다. 하루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택시 안에서 답답한 공기 때문에 호흡이 가빠지는 짱구를 보고 이미 나는 우리의 마지막이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노력이 무색했다. 작은 강아지의 가슴속에 흉수는 원망스러울만치 빠르게 차올랐다. 병원 방문 주기가 점점 짧아지면서 흉수 배출을 도와주는 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권유받았다. 심장, 폐, 신장까지 모두 좋지 않은 상황이라 15분의 호흡마취도 괜찮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모니터링하며 수술을 진행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불안한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고민 끝에 수술을 결정했고, 새벽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늘 따뜻한 눈빛으로 짱구를 보살펴주셨던 수의사 선생님의 손으로 짱구를 넘겨드렸다.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길게 느껴질 15분을 앞두고, 아무것도 모른 채 품에 안긴 작은 생명체를 꼭 껴안았다. 마음의 소리가 너무 간절한 탓에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수술 잘 받고 와, 15분 있다가 보자, 사랑해 우리 짱구. 그리고 그게 마지막일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모두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짱구는 다시 숨을 쉬지 않았다. 탁한 눈동자에는 더 이상 반짝이는 생명의 빛이 없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들지 못하셨고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3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음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이 끊어졌다. 엄마가 이제 보내주자고, 끊어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선생님을 달랬다. 괜찮다고, 덕분에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이제는 아프지 않게 보내주자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울면 울수록, 마치 천국의 문 앞에서 짱구를 다시 데려올 수 있을 것처럼. 그게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이제는 그 눈물에 작은 조각배를 띄워 포근하고 예쁜 곳으로 보내주어야 했다.
장례식장 추모공간, 곱고 예쁜 수의를 입고 작은 관에 놓인 짱구를 보며 우리는 슬프지만 아쉬운 것은 우리의 욕심 때문일뿐, 이 작고 가녀린 생명체를 위해서는 이 것이 더 편안한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주일을, 한 달을 더 살았다고 해서 이 이별이 아쉽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잠시라도 더 붙잡아 옆에 두고 싶은 우리의 욕심 때문에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삼키며 매일 밤 고비를 맞닥뜨려야 하지는 않았을까. 지금쯤 살랑이는 봄바람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 아무런 고통도 없는 곳에서 편안하게 맘껏 뛰어놀 하얀 강아지를 생각하며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17년, 사람으로 치면 고등학생일 나이. 17년 동안, 우리는 작은 하얀 강아지에게서 세상 어떤 것보다 크고 진실한 사랑을 받았다. 턱 아래 영감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고, 알배추를 어느 강아지보다도 맛있게 먹었던 짱구. 고마웠어, 짱구야.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더 많이 안아줄게.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