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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에 대해 써라.

2025.02.06 목

by JasonChoi

살면서 몇 번 느껴보지 못한 감정.

나에게 증오란 정말 찢어 죽이고 싶어 미쳐버릴 정도의 감정으로 정의된다.

개선의 여지조차 허용되지 않는 감정.


증오라는 감정은 컨트롤이 잘 되지 않는다.

나의 경험 중에서 가장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았던 순간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대학시절 언론학과 수업 조별과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별과제라는 주제부터 어느 정도의 답답함과 화가 치밀기는 하지만, 어쩌다가 한 대상을 증오하게까지 되었을까에 대한 이야기.


당시 나는 4학년이었고, 조별과제 조원은 나를 포함한 8명이었다. 같은 학년이 1명 있었고, 나머지는 전부 후배들이었는데, 사실 조모임을 시작했을 때부터 팀플레이는 포기한 상태였다. 자료조사도 어렵다, PPT 만들기도 못한다, 발표도 못하겠다 뭐 많은 사람이 겪어봤을 행태일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료조사라도 부탁한다고 설득하여 답을 받아내었고, PPT도 내가, 발표도 내가 하기로 하였다.

3주간의 기간 동안 준비를 할 수 있었는데, 나와 동기의 독촉에도 불구하고, 2주 차까지 아무도 자료조사를 진행하지 않았었다. 2주 차가 지나가면서 정신 차린 친구들은 하나씩 자료를 보내기 시작하였고, 나 또한 자료조사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익숙하긴 했다. 조에 대한 운이 없는 건지 꽤나 여러 번 혼자 과제 준비를 했었기에 이번에도 그런가 보다 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화가 나게도, 몇 번의 조별과제를 준비했던 동안에도 없었던 참신한 캐릭터가 하나 생겨버렸다. 정말 아무것도 단 한 번도 참여를 하지 않는 조원. 처음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눈치라도 봐서 쓰지 못하는 자료라도 보내거나 가져오는데, 이 조원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톡방에 답장도 없고, 강의시간에도 말 한마디 안 하고. 이미 화는 날대로 난 상황이었고, 뭐라 할 시간도 아까웠기에 그냥 무시한 채 과제 준비를 진행했다. 그렇게 발표시간이 다가왔고 강의 준비를 하던 도중 교수님에게 호출을 받았다. 강의 직전에 무슨 일인가 하여 교수실에 올라가 보니, 교수님이 이상한 질문을 하셨다. 조원 하나가 조장이 아무것도 안 한다고 교수님에게 면담신청을 했다는 거다. 어이가 없을 대로 없어서 10초간 그냥 가만히 서있었다. 속으로는 이게 미친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교수님께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고, 강의에 참석했다. 나름 준비를 잘해갔고, 발표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발표가 끝나는 동시에, 교수님이 조별과제 발표 후 항상 하시는 질문이 있는데, 과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나 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지금껏 열심히 하지 않은 조원도 감싸가며 힘든 점은 딱히 없었습니다 라는 게 나 공식 대답이었는데, 그날은 그 질문을 듣는 순간, 눈이 돌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조원을 똑똑히 쳐다보면서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대학생활하면서 처음 봤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놓고 남 탓이나 하는 조원은. 저는 저 친구는 저희 조원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사정을 다 들으신 교수님은 더 묻지 않으시고 고생했어요 한마디와 함께 발표수업을 마쳤다.


결과적으로 따지면, 그 수업의 조별과제는 A+를 받았고 그 조원은 D를 먹었다. 교수님의 넓으신 아량이었을까.

여기까지는 그냥 화가 너무 난 정도였었는데, 그 뒤에 온 학과 내에서 내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거 같아서 한참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상황을 뒤집어 버릴까.

그래서 좀 유치하긴 하지만, 학생회의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서 단톡방 카톡과 개인톡 등 주변 과애들에게 다 공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뭐 당연히 상황은 반전되었고, 학생회 친구 손 붙잡고 와서 사과하는 엔딩으로 끝이 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잠이 안 올 정도로 당시에는 완전히 머리가 돌아있었던 것 같다. 무슨 짓을 해서든 존재 자체를 지워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해서 주체가 되지 않았었다.

그 조원이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였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판 붙었을 것 같았지만, 아무리 나쁜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어도 마지노선은 지킨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름 컨트롤된 거 같기도 하지만, 저 당시에는 진짜 화가 너무너무너무 나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도 넘었지만, 얼굴도 생생히 기억나고 상황도 어제 일 같기만 하다. 너무 싫어 죽겠는 사람은 왜 잊고 싶어도 안 잊어지는지..


살면서 또 어떤 증오를 품을 날이 올지 모르지만, 순간의 욱하는 감정이 증오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도록 잘 노력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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