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18 화
엘리는 동네친구인 메이와 내기를 했다.
누가 먼저 뒷동산에 있는 사과나무 꼭대기에 열린 사과를 먼저 따올 수 있는지를.
아직 11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그 사과나무는 너무도 크고 높았다. 그리고 그 이전에 엘리는 사과나무의 꼭대기에 열린 열매도 본 적이 없지만, 메이의 확신에 찬 이야기에 그냥 얼렁뚱땅 내기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엘리는 메이가 내기를 제안한 그날부터 매일매일을 뒷동산에 올라 사과나무를 바라보며, 메이보다 빨리 커서 먼저 열매를 따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내기를 제안한 메이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얼마 뒤, 엘리는 메이가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큰 병원이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와 인사도 못한 채 헤어진 엘리의 머릿속에서 사과나무의 내기는 서서히 잊혀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엘리는 대학생이 되어 다른 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고,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엘리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메이 때문이었다. 엘리가 타지에서 공부를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엘리의 메일로 메이가 편지를 보낸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안녕, 엘리.
너무나 오랜만에 하는 연락이라 당황했겠지?
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너와 갑작스럽게 헤어진 뒤에,
나는 항상 너를 생각하며 지냈었어.
3년 동안이라는 긴 세월을 병원에서 보냈고, 다행히 잘 회복해서 평범한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어.
병원에서의 3년이라는 생활을 힘내며 버틸 수 있었던 건 꼭 다시 너를 만나고 싶다는 희망과 너와 한 내기에서 내가 꼭 이길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
너는 내가 제안한 내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미안하지만, 네가 그 내기를 잊은 채 지내왔다면, 내기에서 이긴 건 바로 나일 거야!
우리 고향의 사과나무 꼭대기에 널 위한 선물을 두고 왔어. 혹시 그날의 우리를 잊지 않았다면 한번 확인해 보길 바라!
곧 만나러 갈게.
너의 친구 메이가.'
너무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친구에게서 온 메일이 엘리를 바로 움직이게 만들었고, 고향에 도착한 엘리는 메이의 편지에 쓰인 대로 사다리 하나를 들고 사과나무를 향해 올라갔다. 어린 시절 보았던 크고 높았던 사과 나무라기에는 너무 쉽게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었고, 그 도착점에서 엘리가 발견한 것은 엘리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엘리가 사과나무 꼭대기에서 발견한 것은 이쁘게 포장되어 있는 사과 한 개였다.
엘리는 그 사과를 가지고 내려와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때, 멀리서 씩씩한 걸음으로 올라오는 누군가가 눈에 띄었고, 엘리는 걸어오는 사람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 사람은 바로 메이였다.
너 나 할 거 없이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펑펑 울기 시작하였고, 그간 나누지 못한 대화들을 나누며 11살 시절로 잠시 돌아갔다. 많은 대화가 끝난 뒤, 엘리는 메이에게 물었다.
'이 사과가 나를 위한 선물인 거야?'
'응, 내가 너에게 남긴 선물이 바로 그 사과야.'
'왜 사과를 선물로 놔두고 온 거야?'
'너랑 한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사과나무 꼭대기에 올라갔는데, 거기에는 사과가 열려있지 않더라고. 우리의 내기는 꼭대기에 있는 사과 열매를 누가 먼저 따오는지가 내기의 승패요인이었잖아.'
'그래서?'
'나는 내기에서 이길 수 없었으니, 네가 이길 수 있게 만들어주고 싶었거든. 꼭대기에 올라가 사과열매를 가지고 내려온 건 바로 너니까, 이 내기의 승자는 너야, 엘리.'
메이의 대답을 들은 엘리는 엉뚱한 메이의 생각에 웃음이 나면서도, 그녀만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는 그녀 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하였다.
둘은 같은 생각을 하며 사과나무를 뒤로 하고 내려왔다.
우리들의 13년의 공백은,
앞으로 우리들이 함께할 수십 년의 세월로
덧칠해 나갈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