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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순간들에 대해 써라.

2025.02.17 월

by JasonChoi

나는 희귀 난치병 질환을 가지고 있다.

'크론병'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이다.

21살이라는 나이에 확진을 받았으며,

27살의 나이에 첫 번째 소장절제술을 받았고,

32살의 나이에 두 번째 소장절제술을 받았다.

지금은 일반인의 절반 정도의 소장으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상생활의 전혀 불편함은 없다.


하지만,

이 질환을 겪으며 빼앗긴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가끔 후회하는 삶을 사는 순간들이 있다.


대학에 입학하여,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그렇듯 꽤나 많은 술자리에 참여했었고, 그 분위기를 너무 좋아했었다. 농구하는 것 또한 너무 좋아하여 동아리도 농구 동아리에 등록하였고, 친구들과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여, 항상 이 친구 저 친구 다 모아서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 남들과 다르지 않던 일상을 보내던 중 생각보다 심한 통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가만히 길을 걷다가도 통증이 찾아오면 주저앉아 쉬어야만 하는 순간들도 찾아왔다. 무언가 배 안에서 장기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었고, 짧게는 3분, 길게는 20분을 아프곤 했었다. 그리고 대학 휴학을 낸 21살에 크론병 확진을 받았다.


억울했다.

그냥 억울하기만 했다.

사람마다 고통과 상실감의 정도는 상대적이기에,

그 시절 나는 너무나 억울했다.

같은 또래들이 나와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에 왜 나는 이런 거지 같은 병에 걸린 건가 너무나 억울했다.


확진 초기에는 정말 멍청하게도 그 억울함에 제대로 된 관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 결과 27살에 더 큰 좌절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영국 유학 준비도 하고 있었고, 학교에서는 나름 열심히 공부하여 교수님으로부터 졸업 후 스카우트 제의 또한 받았을 때였다. 하지만 모든 게 날아갔다. 응급수술로 소장을 일부 절제하면서 병원에서만 2달 가까운 시간을 있었고, 그로부터 완벽하게 몸을 회복하는 데에만 1년이 넘게 걸렸다. 대학에서 공부한 것들, 유학준비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약한 멘털이 문제였으리라.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잉여인간이었고, 현실에서 도피해 사는 인간이었다.


나는 그 시절의 내 삶을 빛나게 살지 못했고, 나의 나약함으로 인해 내 20대의 한 페이지를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그때는 정말 모든 게 다 싫었던 것 같다.

남들보다 뒤처진 만큼 더 노력하여야 했고, 다시 돌려놓을 것들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머리로는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다.


첫 번째 수술 후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뒤부터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되었던 것 같다. 어차피 이미 이렇게 된 거 마인드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크론병이라는 게 내가 아무리 관리를 위해 노력해도 언제 다시 제발 할지 모르는 병이기 때문에 마인드라도 잘 다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5년 뒤에 같은 수술을 다시 한번 받긴 했지만, 처음만큼 무너져있지는 않았다. 처음보다 재활도 빨랐고 내 생활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


한번 모든 걸 놓았던 것만큼 지금은 아무것도 놓고 싶지 않아서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고쳐야 할 부분들은 지금도 많긴 하지만, 첫 수술 후의 빼앗긴 나의 인생의 일부분을 지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 크론병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해보고 싶다는 계획을 제출했었는데, 앞으로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뒤에 꼭 나의 이야기를 연재해보고 싶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더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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