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의 나날

by 파뿌리씨

1996년 9월 24살의 나이로 사회생활을 시작.

2024년은 사회생활 만 27년 차를 마무리하고 28년 차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28년 차에 교권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연수휴직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너무나도 힘들었던 2023년이었기 때문에...

2024년은 잘 버티었다고 나에게 상을 주는 한 해라고 생각했다.

1회 글에도 적었는데 학부모와 나와 합이 맞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학부모를 나쁘다고 말하면 그 학부모도 나를 나쁜 교사라고 말하지 않을까.. 사람 생각은 다 똑같을 거 같다.



24살부터 시작한 직장생활은 작년 2023년도까지 딱 두 번 학교현장에서 나가있었다.

2000년 아들 출산할 때 휴가 2개월과

2010년 갑상선암 수술 시 병가 100일


저 두 번은 '쉼'이 아니다.

출산휴가 2달은 내 몸도 돌봐야 하고 신생아도 돌봐야 한다.

암으로 인해 받은 병가는 수술하고 수술 후 조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온전한 '쉼'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2024년 연수휴직 및 '쉼'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쉼'이란 의미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신랑이 생각하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 것 같다.


신랑이 생각하는 '쉼'이란 - 내가 학교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쉼'이다.


내가 생각하는 '쉼'이란 - 28년 만에 처음 가져본 귀중한 시간이기에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쉬는 게 '쉼'이다.


그런데 집에 있으니 내가 생각하는 쉼의 형태로 쉴 수가 없다.

집. 안. 일.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존재하는 이상...


출근을 할 때는 그렇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이 집안일이라는 것이..

서로 시간 있는 사람이 하거나.. 때론 무시하거나.

물론 작년과 올해의 집안일이 달라진 것도 없다. 더해진 것도 없고 덜해진 것도 없고.


그런데..

딱 달라졌다고 생각되는 건..

신랑의 마음가짐이다.


내가 출근을 하지 않고 쉬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작년보다 집안일에 손을 확실히 덜 댄다.

내가 집에 있으니 내가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난 그게 괘씸했다..

올해 집안일을 하려고 쉬는 게 아닌데..

온전히 날 위해 쉬고 싶은데..


지난주 일요일

저녁을 해 먹고 나니 몸이 방전이 되는 듯했다. (갑상선 암 수술하고 난 후 갑자기 몸이 방전되는 경우가 있다. 예고도 없이. 누군가 내 몸의 전원 스위치를 꺼버리는 것처럼)

대충 치워놓고 방에 가서 쉬어야겠다 하고 일찍 감치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다음 날인 월요일

여전히 방전이 된 듯한 컨디션 때문에 '오늘은 하루종일 누워있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침대에서 나오질 않았다. 신랑과 아들은 알아서 출근 및 학교를 간 듯하고.

신랑한테

'오늘은 게으름을 조금 피워야겠어요. 침대에서 나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라고 통화를 했다.


졸졸 따라다니며 케어해야 할 아이가 있는 집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있는 집이니

충분히 나의 하루를 이해해 줄줄 알았다.

그리고 올해가 어떤 해인가?

어떻게 얻은 쉼의 해인가?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어도 되지 않나?


5시 조금 넘어서 신랑이 퇴근을 했다.

난 여전히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있었고..


그런데 안방에서 들리는 바깥의 소음들이 심상치가 않다.

문을 닫거나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들이 평화로운 소리가 아니다.

무언가가 불만이 내포되어 있는 소리이다.

한숨도 들리는 듯하다..


안방에서 나가는 나를 쳐다보는 표정에서 심기가 불편함이 읽혔다.

"왜 그러실까?"라고 물으니

" 아니. 그 정도 누워있었으면 사람이 들어올 시간쯤에는 일어나서 저녁도 준비하든지 쫌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닌가?"


대답에 완전 빡이.....ㅠㅠ

" 그냥 누워있었던 게 아니지 않느냐. 분명 컨디션이 무척 안 좋다고 이야기했었다."

" 그 정도 누워있었으면 됐지?..."


작년의 신랑은 그렇지 않았다. 내 컨디션이 난조를 보일 때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올해의 신랑은 왜 그런 것일까? 무엇이 신랑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했을까?


그 이후로 난 2일 동안 안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침묵의 시위..

3일째 되는 수요일

신랑이 미안함을 넌지시 표현해 왔다..

아들한테

" 엄마 보고 나와서 밥 먹어라 해라."


[저녁 배달시켜 놓고 나와서 밥을 먹어라]...라는 건 우리 집 신랑이 미안함을 최대치로 표현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나 또한 신혼이나 30대처럼 너 하나 이겨보겠다고 시위를 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으니.(그런 방법이 통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살면서 이미 알고 있기에) 못 이기는 척하고 나옴으로써 그 시위는 끝이 났다.


안방에 갇혀있는 그 3일 동안은 무척 분했다.

'아니. 내가 올해 어떻게 쉬는 해인데?.. 꼴랑 하루 침대에서 조금 쉬어본 건데.. '

'집에 있다고 해서 집안일을 왜 내가 다 해야 하는데? '

'집안 일 하려고 쉬는 해 아닌데..'

'사람이 아프면 다른 가족이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집에 있으면 아픈 것도 안되나?'....................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젊었을 때의 나였다면

또 분명히 안방에서 나왔을 때 분함을 이기지 못해 따지고 들었을 것이다.

나의 분함이 이해를 받지 못했다면 그리고 또 안방에서 안 나왔겠지...


지금 50이 넘은 나는

그게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다.

3일 동안 충분히 분한 것으로 일단 마무리 지었다.

지금 당장 따지고 들지 않아도 조만간 이야기할 시간이 분명 있으리라는 걸 알기에.


그렇다고 괘씸한 마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괘씸은 여전하다.

그런데 괘씸한 건 나만 그런 걸까?

아마 신랑도 나한테 괘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입장에서 먼저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니..


그 서로의 괘씸함은 '오해였다느니' 혹은 ' 내 생각이 짧았다느니'라는 식으로 풀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건.

상대방의 감정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고 동의한다'라는 암묵적인 표현이 아닐까?



발행하기 위해 글을 수정하는 이 순간의 나는

'쉼'의 생각을 바꾸었다....

'쉬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버리려고 한다.

'쉬어야 한다'라는 생각이 오히려 이 생활을 방해하고 있는 거 같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 혹은 [작년의 나 자신을 보상해주어야 한다.]라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꽉 차 있으니 꽉 차 있는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올해 이 시간들이 망했다고 느낄 거 같다.


신랑의 생각대로 출근을 하지 않는 그 자체만으로도 '쉼'이 맞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만으로도 '쉼'이 맞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 하루가 조금 편안하다.

집안일을 대하는 내 생각도 조금은 말랑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여전히

집안일을 많이 해야 되는 건 신랑한테 괘씸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