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역사다.

by 박소령

이십 대 후반, 숙소와 지하철역 사이가 멀어 자전거가 필요했다. 큰 맘먹고 70만 원이 훌쩍 넘는 큰돈을 들여 자전거를 샀다. 지금이야 그 정도 가격이면 별로 비싸지 않은 ‘착한’ 가격이지만 당시 나에게 자전거란, 신문구독이나 우유배달 주문을 하면 끼워주는 사은품 정도였다. 그런데도 큰돈을 들여 내 손으로 직접 고른 빨간색 자전거는 아직 차가 없던 내게 재산 목록 1호였다.


그런데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자전거에 상처가 났다. 차도 모퉁이를 돌다 앞쪽 패들과 기어를 연결하는 크랭크가 인도 경계석에 심하게 긁혔다. 아직 새것이라 반짝반짝 빛이 나던 크랭크의 상처는 멀리서도 티가 났다. 차라리 내 다리에 상처가 났다면 며칠 뒤에 회복되었겠지만 쇠로 된 자전거는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 달 뒤에는 그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아침에 약속이 있어 지하철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저녁에 택시를 타고 숙소에 오는 바람에 애지중지 하던 자전거를 하룻밤 노숙시켰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불안감을 안고 자전거를 찾으러 간 나는 슬퍼졌다. 자전거는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 지하철역 주변 상가를 걷다가 내 자전거를 발견했다. 동내 중학생 녀석들이 훔쳐가서 타다가 딱 걸린 것이다. 이때 ‘이것이 내 자전거요’ 하는 증거가 무엇이었을까? 수많은 기성품 쌍둥이들 중에 내 자전거를 어떻게 알아봤을까? 바로 그 마음 아파하던 자전거의 상처였다. 그 상처가 다른 자전거들과 ‘내’ 자전거를 구별 지어줬다.


헨리 포드의 대량생산 체계 발명 이후 우리는 비슷한 아파트에 살고, 비슷한 내용으로 교육받고, 비슷한 욕망을 꿈꾸며 산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 구분되는 것은 저마다의 인생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 때문이다. 슬픔과 기쁨, 상처와 명예, 그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역사로 남아 그 사람의 인생을 다른 사람들의 것과 구별 지어 오롯한 자기 것으로 만든다.


내 얼굴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큰 상처가 있다. 아랍의 사막에서 훈련 중 암벽 사고로 얻은 것이다. 죽을 뻔한 그 날의 긴박함, 동료들의 헌신적인 구조, 아내의 눈물, 긴급 후송을 위한 조국의 노력 등 여러 가지 것들이 그 상처에 담겨있다. 그 상처는 나에게 역사다.


한정판 물건을 사서 중고로 되팔기 위해 그 포장도 뜯지 않는 요즘이지만, 결코 되팔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만의 한정판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상처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