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점

아주 간단히 서술해보았다.

by 유창우


해외봉사 참여 후기


사회복지학과 4학년 유창우


처음엔 그저 나를 위해 시작했다. 대학교 입학 이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생활 12년 동안 ‘학교-집-학교-집’이라는 지루할 만큼 반복적인 삶은 대학교에 와서도 이어졌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귀가 전 친구들과 술을 마실 뿐이었다. 20살 나의 삶에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복학 직전까지 계속됐다.


공자께서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다고 말씀하셨다. 그저 주어진 것을 공부하는 것 밖에 모르던 나는 공자께서 학문에 뜻을 둔 나이보다 여덟 살 늦게, 인생에 뜻이 확고하게 서기 일곱 살 전인 스물세 살에 간신히 학문에 뜻을 두었다. 사회복지학과로의 전과이다. 그에 걸 맞는 대외활동도 여러 가지 시도했다. ‘학교-집-학교-집’이라는 루틴을 벗어나 바쁘게 만족스러운 삶을 두어해 지냈지만, 나의 주체를 잃어버린 듯, 무언가 부족하다는 열망은 항상 가득했다. 남들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체의 영원회귀가 떠올랐고 ‘지금 이 삶이 반복된다면 나는 정말 만족할 수 있는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가?’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되고도 고민이 가득했다.

그러던 중 ‘하계해외봉사활동’ 공지를 발견했다. ‘저거라면 뭔가 다를 거야, 방황하는 내가 몽골의 밤하늘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겠지,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서 해외봉사를 한 번 쯤 다녀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야, 대학생으로서 대학교 다니면서 한 번 정도는 이런 기회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방황하는 나, 사회복지학과 학생, 대학생 세 가지 모두 오롯이 나이다. 처음엔 그저 오롯이 나를 위해 시작한 해외봉사였다. 나만을 위한 동기로 시작한 봉사활동이었다.


급하게 팀을 구했다. 서류 제출 며칠 전 급하게 팀을 구하고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서 그동안 수없이 써보았던 계획서를 능숙하게 쓰고 제출했다. 그때까지도 역시 나만을 위했다.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내게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같은 팀원들을 자주 보게 되며 조금씩 나의 태도는 변화했다. 각자의 개성으로 똘똘 뭉쳐 봉사활동에 집중하는 그들이 예뻐보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계획서를 많이 써본 만큼 더 많은 경험을 해본 만큼 팀원들이 열망하는 해외봉사 합격을 위해 도와주고 싶었다. 이 때부터 나만을 위한 봉사는 우리 팀원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그 대상이 조금은 확장되었다.


해외봉사에 최종합격 후에는 나도 모르게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서의 태도가 계속해서 나왔다. 우리가 계획한 프로그램이 몽골 아동에게 충분한 효용감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인가 계속해서 고민했다. 몽골 아이들을 위해서 한국어 시간에 사용할 노래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한글가사로만 썼던 노래였지만, 몽골 아이들을 위해 절반을 몽골어로 바꾸었다. 해외봉사참여라는 나를 위한 선택이었는데 어느새 봉사의 대상을 위해 생각하는 태도를 갖게 함은 ‘수년 간 배운 사회복지가 몸에 배어 있긴 하구나 헛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해외봉사라는 소중한 경험이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서의 나를 다시 재점검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봉사에 대한 열정을 키워가며 비행기에 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첫 나흘간은 솔직히 무의미함을 많이 느꼈다. 몽골 대통령 선거로 일정이 급하게 바뀌어 몽골 아이들을 만나는 일정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또 오롯이 봉사의 마음만을 가지고 왔던 그때의 내게 우리 학생 봉사단 간의 결속과 친목을 강조하는 시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봉사단에게 조금씩 물음표가 생길 즈음 몽골의 아이들을 만났다. 학생 봉사단은 어땠을까? ‘며칠을 내리 쉬다보니 아이들을 만나는 게 두렵다.’, ‘아이들을 빨리 보고 싶었는데, 막상 보려니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첫 수업이 진행되고 우리 학생봉사단은 지난 5일 중 가장 큰 활기를 띄었다. 모두가 두려워하던 수업은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했고, 밤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더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했다.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다보니 귀보다는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다.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주었다. 내 마음에 나를 위한 생각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생각이 크게 자리했다. 그렇게 나를 위한 봉사활동에서 나는 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봉사활동 또는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종결은 언제나 안타깝다. 4일 간 서로 감정을 공유한 아이들과 헤어짐은 아쉬웠다. 불가피하게 일정이 변경되어 아이들과 만날 하루가 줄어든 것은 특히 아쉬움을 더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우리에게서 무언가를 배웠을까? 가장 중요한 물음이 아닐 수 없다.

몽골 출발 전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놀렸다. ‘대학생들 후진국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뭐 대수냐, 해외봉사 그거 이름만 해외봉사지 그냥 내용은 놀러가는 거 아니야?’ 나도 사실 자신 있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노력이 더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문적이지 않은 우리의 노력은 아이들과 그저 놀아주는 것에 그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은 그저 아이들과 놀아 아이들에게 기쁨만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몽골 문화탐방을 할 때에 있던 일이다. 학생 봉사단 친구들과 쇼핑을 하기 위해 몽골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 일행 옆으로 몽골 어린이들 몇 명이 지나갔다. 그 순간 통역을 도와주던 친구가 저 어린이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말을 하며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우리 봉사의 의미를 찾았다. 어려서 외국인 선생님들과 소통하고 즐거운 기억을 남기는 것은 단순히 한 편의 기억을 넘어 외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없애고 세계시민으로서 평등의식을 지니도록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우리를 조롱한 몽골 아이들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저 아이들도 우리와 함께했던 몽골 어린이들처럼 외국인 선생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 우리를 조롱하지 않고 밝게 인사해주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생봉사단의 열흘은 전문적이지 않은 미흡한 수준의 교육봉사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 노력을 아이들이 알아주었고 그것은 ‘대학생들 후진국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의미를 넘어서 시나브로 차별 없는 세상에 일조하는 노력이었다. 내가 봉사 끝까지 나만을 위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이런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위한 시작이어도 괜찮다. 우리의 선택과 행동은 우리의 마음까지 바꿀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시작한 봉사였고, 결국은 오롯이 아이들을 위한 마음을 지니게 바꿔주었다. 행동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던 마음이다. 이 글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거나 같은 상황을 맞이해본 경험이 있다면 과감히 나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경험을 해보기를 바란다. 굳이 해외봉사가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공자께서 말한 이립(뜻을 세우다)을 한 번쯤 느끼면 좋지 않겠는가? 나를 위한 선택에서 남을 발견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