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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진 Jul 14. 2023

금연

2023년 5월 19일

20대의 마지막 해에 담배를 시작했다. 나는 살면서 흡연만큼은 손대지 않을 거라고 믿었었다. 애연가 친구들이 많았던 대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태우지 않았던 연초였다. 그래서인지 내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내게 담배는 학창 시절 소위 '노는 친구'들의 전유물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냄새만으로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했다.


담배를 권한 건 이별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겪은 짧은 연애. 나는 그때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몇 번이고 잠수교가 있는 한강에 바람을 쐬러 갔던 기억이 난다. 매일 술에 취할 순 없었으니 이거라도 태우면 좀 나아질까 하는 요량이었다. 그렇게 허술하게 시작한 흡연이다. 그리고 나는 쉽게 중독됐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하던가. 이번 이별을 잊을 때까지만, 내 마음이 달래질 때까지만.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매번 되풀이했다. 그 사람은 나를 볼 품 없이 여겼는데, 남기고 간 흔적은 생각보다 깊었던 것이다.


떠난 사람은 너무나 쉽게 떠나가는 법. 남은 사람은 끝없이 그 이별을 곱씹고 되풀이한다. 혼자서 무저갱의 어디쯤을 헤매다 보면, 위로가 되는 건 많지 않다. 깊은 한숨 섞인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얼마나 많은 강물과 하늘을 쳐다보았던가. 그래도 분명한 건 단 한 가지. 어떻게든 잊힌다는 것만 믿으면서. 다소 무뎌지는 게 정확하지만 말이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을 뿐이다. 하루 몇 번이고 까무러칠 뻔했다가, 이러다가 사람 잡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이다. 후회와 자책으로 가득 찬 영겁의 시간을 흘려보내면 그렇게 된다. 그런데 그때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완전히 잊었다고. 모두 떠나보냈다고.


어쨌든 담배만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연초는 어느새 습관이 돼있었다. 일을 하다가 한숨을 돌리려고, 사교활동을 위해서. 가족들에게도, 연인에게도 몰래 담배를 피웠다. 긴 고민에 빠질 때면 줄담배를 태우기도 했다. ‘끽연'이 주는 여유와 교류 활동이 매력적인 점도 분명히 있었다. 다만 끝에서 타는 것은 담뱃잎뿐이 아니었다. 배우 최민식 씨가 말했던가. "내 가슴을 들락날락했던 것은 이 녀석밖에 없다"라고. 중독을 고백하는 아포리즘은 촌스럽지만 공감됐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갔다. 흡연을 선물한 그 사람은 이미 생각나지 않는지 오래였다. 그는 어쩌면 내 성도, 이름도 기억 못 할 수도 있겠지.


금연을 마음먹게 만든 건 어리석지만 또 이별이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걸 잊으려고 했다. 남은 마음마저 모조리 태우면 잿더미가 되지 않을까 하고. 아니, “다 타버렸구나 “는 그 질문에 ”절대 아니야 “라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회했다. 그래서 온몸으로 나를 태워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불태워도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속이 새카맣게 변할 동안, 어느새 태운 연초는 한 갑 가까이 늘어난 경우도 있었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번지기 전에 고쳐야 할 때였다. 다만 흡연자라면 금연은 마음먹는 자체가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담배가 아니면 더 이상 위로할 것이 없다는 의미다. 그게 겁났던 걸까. 처음 시작할 때의 다짐이 우습게도 몇 년째 중독을 벗어날 수 없었다. 다만 이대로는 나 자신을 완전히 집어삼킬 게 분명했다. 그래서 멈춰야 했다.


금연은 끊는 게 아니라 평생 참는 것이라고 했다. 각자 방법이야 있겠지만 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했다. 조금씩 줄이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아예 멈추는 것이었다. 미루고 또 미뤘던 결심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노래 선생님은 자신의 금연 성공기를 종종 얘기했다. 술에 취해 남이 버린 꽁초를 주워 필 정도였다면서, 꿈속에서도 담배를 태울 정도로 누구보다 흡연에 대한 갈망이 심했다면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라며 날짜를 정해놓고 끊어보라고 했다. 금연껌이라던지, 전자담배라던지 다른 대체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단 한 번에 잊어야 한다고, 고통의 총량을 한 번에 받는다 생각하고 끊어내야 한다는 그의 조언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런 이별이 어디 있나요.


나는 작년 생일이 돼서야 담배를 끊었다. 7년 만의 이별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금연 계기를 묻는 이는 많지 않지만 내 답은 똑같았다. 담배를 태우는 게 정말 아프다고 말했다. 속을 모르는 이들은 한 번에 금연에 성공한, 심지어 단칼에 끊어낸 지독한 녀석이라며 추켜세웠다. ‘아니요. 나는 모두 타버린 걸요. 더 이상 타오를 수가 없답니다.’ 누군가는 금연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너 같은 골초는 곧 실패할 거란 농담 했다. 공허한 마음은 어느 쪽도 달래 지지 않는다. 가슴 깊숙이 박혀버린 그것은 아무리 토해내도 빠지지 않는다. 그래,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니깐. 나는 무엇과 이별했는지 모르겠다. 헤어질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완벽한 이별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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