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의 저력
최근들어 야근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불필요한 야근을 종용하는 관리자는 직원들에게 꼰대 이미지로 인식되고, 관리자 또한 이를 알기에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쿨하게 보내주는 게 요즘 추세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야근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이며, 현재 거의 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외환브로커를 하다 현재 병원 사무직으로 근무 중이며, 사회생활 8년차 입니다]
제가 야근을 싫어하는 만큼 왜 야근을 하는지, 또 야근의 효과는 무엇인지 고민했기에, 생각해왔던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친구들끼리 맥주 한잔 하면서 자주 듣는 소리입니다. 하나 문장을 곱씹어 보면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 싶습니다. ' 일을 다했다, 일이 없다'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청소라는 업무가 주어졌을 때, A는 50%의 완성도로 일을 다했고, B는 100% 완성도로 일을 마무리했고, C는 범인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200% 완성도로 결과물을 내놓았을 때, 이 세명이 똑같이 '일을 다했다'라고 말한다면 C는 참 억울할겁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배우고 이뤄야 할 것이 더 많다고들 하는데, 일반 직장인들이 일을 완벽하게 다 하였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단순히 내가 생각한 일을 다 했기 때문에 야근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일의 범위를 매우 협소하고 소극적으로 잡았을 확률이 크고, 이는 야근의 부조리함을 얘기할 때 적절한 근거가 아님을 애기하고 싶습니다.(특히나 기획력이 강한 사람일수록 일은 무궁무진하게 남아있기에...)
그래서 저는 『일이 없는데 야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을 안 할 건데 자리에 앉아만 있는 경우』라고 수정해야 옳은 말이라 생각합니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야근에 대한 반론은 효율성이 아닌 당위성의 측면에서 인문, 역사, 철학과 연계된 삶과 노동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의미가 있습니다.
노동의 역사를 보면 산업혁명 이전에 농사꾼은 12시간 정도의 노동을 하였습니다. 허나 산업혁명을 기점으로14~16시간의 가혹한 노동환경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에 따른 과도한 노동의 신체적, 정신적 폐해를 막고자 12시간 법, 10시간 운동 등을 거쳐 현재 일 8시간 근무가 일반화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세계적으로 많은 인구가 이보다 훨씬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여있습니다...)
'인간이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 게 적당한 것인가'를 물어본다면 제 수준에서 정확한 답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허나 반대로 누군가가 꼭 8시간 근무가 맞다고 주장한다면 그 또한 전 믿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제기되었던 "8시간 일하기, 8시간 놀기, 8시간 자기"라는 캠페인을 기점으로 20세기 미국에서 8시간 근무가 정착되었지만, 이 제도의 근거는 신체능력 및 근무형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기보다는 철학과 정치의 영역이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근무형태와 개인의 체력, 집중도 등 근로자에 따른 적정 노동시간이 다를 것이기에, 때에 따라서는 적절한 야근이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풍선효과처럼 야근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존 근무시간에 집중도가 떨어질 거라는 단정적인 의견은 맞지 않구요. (시간 투입에 따른 노동의 한계생산성은 분명히 줄어들겠지만, 8시간 일하는 것보다 9시간 일하는 것이 성과가 무조건 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근무태만과 야근은 별도로 봐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불필요한 야근을 위해 근무시간에는 일을 안 하고 저녁에서야 일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런 케이스는 단순하게 근무태만도 하고 야근도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근무태만에 따른 낮은 성과물을 야근을 활용한 '근태 보여주기'로 절충하고 싶기 때문이구요. 필자가 주위에서 봤던 제대로 "일" 하는 사람들은 근무시간에도 열심히 하고, 야근때도 죽어라 합니다. 그리고 매우 우수한 성과를 내는 사람 중에 야근을 아예 안 하는 사람을 전 안타깝게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채용 시 스펙을 보는 이유는 뭘까요? 아무리 뛰어난 채용시스템을 개발하더라도 짧은 시간 내 지원자의 다양한 정보를 거짓 없이 얻는 것은 어렵습니다. 즉, 스펙이 지원자의 능력을 완벽히 말해주지는 않지만, 다른 판단기준에 비해서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정확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관리자가 부서에 왔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관리자는 빠른 시일 내 직원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역량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영업실적 같이 수치화가 용이한 분야라면 다행이지만, 대다수 관리직군의 업무는 성과와 역량 정도를 파악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렇기에 관리자 입장에서도 직접적인 성과 外 판단할만한 보다 간단하면서 측정 가능한 기준이 필요하며 그중 하나가 표면상의 근태입니다.
관리자 입장에서 야근하는 사람은 어떻게 보일까요? '순응적, 희생, 일 중심'과 같은 이미지가 그들에게 투영되기 쉽습니다.
야근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능력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능력도 없으면서 사사건건 조직에 대항하는 최악의 직원은 적어도 아니라는 얘기가 됩니다. 게다가 흔히들 말하는 충성심, 희생 등의 샐러리맨 정신은 때때로 업무능력만큼의 중요성을 갖기도 하죠.(조직이 크면 클수록 성과만이 전부가 아니기에...)
그렇기에 야근 여부만 가지고 직원의 역량을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이 사람이 야근을 할 수 있는가'를 하나의 요소로 생각하는 것은 관리자 입장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야근을 하기 싫어할수록 야근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야근을 하지 않는 칼퇴분들이 정상적인 야근러와 경쟁하려면 적어도 1.5배 이상의 업무능력을 갖추셔야 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1편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