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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더 Oct 03. 2022

불평등의 대가 – 분열된 사회는 왜 위험한가’를 읽고

 90년대생이 온다고 하며, MZ세대를 알아가려는 트렌드가 인기다. 디지털 네이티브다 뭐다 많은 얘기가 있지만, 이것만 기억하시라. 젊은 세대는 공정에 미쳐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코인열풍이나 정치인 딸의 부정입학 이슈 등 많은 것이 공정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평등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기회의 평등과 그리고 결과의 평등이다. 우리는 기회의 평등을 일컬어 흔히‘공정’이라고 하며, 결과의 평등을 ‘분배’라 한다. 과거에는 두 가치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느냐가 사회적인 주요 논의 대상이었다면, 요즘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기회의 평등,‘공정’만이 사람들의 관심사이다. 허나 저자는 이 두개가 별개가 아닌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며. 결과의 불평등이 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기회의 불평등은 결과의 불평등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보통 평등의 가치를 논할 때, 도덕관념이나 인간의 존엄성 등 윤리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저자는 노벨경제학 수상자답게 과도한 불평등이 부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인 관점에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한다. 불평등의 심화는 기득권 세력이 법과 제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을 수 있게 용인하며, 이는 지대추구를 부추긴다. (지대추구: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생산적인 활동에 경쟁적으로 자원을 낭비하는 현상) 예를 들면 어떤 기업은 실제 지불해야 되는 비용보다 낮은 비용으로 오염물질을 배출하고자 로비를 통하여 환경법안을 본인의 입맛대로 조정할 수 있다. 이렇게 배출된 오염 피해는 일반 시민이 세금을 납부하여 대신 복구한다. 혹은 어떤 기업은 자연 광물과 같은 재화를 정부로부터 편법적으로 구입한 후 독점적인 지대추구를 달성할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한 과정들이 차츰 쌓이면서 미국사회의 1%는 본인들에게 유리한 룰을 만들어 나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공정이라는 단어에 대한 환상을 조금은 거둬야 한다. 세상에 완벽한 평등과 공정은 없다. 단지 조금 더 나은 결과가 있을 뿐이다. 과거 왕과 농민의 관계는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평등 했지만, 그들은 적어도 세상이 공평하다고 착각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반대다. 개인이 이룩할 수 있는 변화와 성취는 매우 크지만, 모든 결과를 개인에게 귀속시킬 만큼 사회가 공정하지는 않음을 잊어버린다. 


 이런 능력주의 시류는 울적한 생각으로 뻗어나간다. 중세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켜 불운한 사람이라 표현했다. 현재는 어떠한가? 부자는 부자가 될 만한 노력과 능력이 있기에, 그럴만한 사람이기에 지금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부자가 된 것이 응당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 ‘가난한 사람 또한 실제로 열등하고 사회에 기여하지 못해서 지금 위치에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데 있다. 현대사회에서 빈자에게는 가난이라는 고통보다 패배감과 불안이 더 무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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