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선생님.

03.03.2021 essay

by 책영



평생 ‘읽는 행위’를 좋아했다. ‘읽는 행위’라 한 건 굳이 책이나 잡지가 아니라도 읽는 건 다 좋아했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광고 문구도 재밌게 읽으면 재밌다. 어렸을 때는 더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초등학생의 내가 지금 나를 본다면 얼마나 어렸을 때보다 책을 많이 안 읽는지, 얼마나 순수한 읽기의 즐거움과 혜택을 포기하고 사는지를 보고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그땐 달리 들여다볼 게 없었다. 손바닥만 한 화면을 늘 지니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쉬는 시간에 <빨강머리 앤>을 읽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던 남자애가 기억난다. 정확한 말은 기억 안 나는데 그게 재밌냐는 투의 말이었던 것 같다. 이해가 안 됐다. 교실마다, 쉬는시간마다 티비를 틀어준다면 몰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것만큼 쉬는 시간을 흥미진진하게 보낼 방법이 어딨다고 그러는 거지?


더 많이 읽고 싶어 하는 학창 시절 나의 욕구를 크게 충족시켜준 것은 고등학교였다. 새로 지은 서울 시립 고등학교 1기였던 우리는 교육과정의 실험쥐 같은 존재였다. 그런 고등학교에서 만난 문학 선생님은 칼 같은 단발머리에 차분한 목소리 톤, 냉정해 보이시다가도 웃으면 이모처럼 포근해지는 인상을 가지셨었다.

선생님은 시중의 교과서가 아닌 늘 본인이 준비한 자료로 수업을 했다.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랬다. 서울시교육청의 예산으로 굴러가는 새로 생긴 학교, 특별한 교육과정을 테스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선생님이 가져오시는 건 대부분 근현대 문학이었고, 나는 선생님이 프린트한 종이 위의 활자에서 이상, 이청준, 박경리, 황석영, 기형도 등의 작가를 만났다.


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딱히 별명 없는 선생님은 자동으로 과목=별명이 됐다. 나는 선생님과 친근하게 지내는 부류의 학생이 아니었지만, 그런 학생들도 속으로 편애하는 선생님은 있기 마련이었다. 내겐 '문학 또는 국어'가 그랬다. 친구들과 영화 동아리를 만들었을 때, 동아리마다 지도 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난 국어를 제일 먼저 찾아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어리둥절하셨을 것 같다. 평소에 사근사근하게 구는 말 한마디 없고, 교류도 적던 학생이 갑자기 영화 동아리 지도교사를 해달라고 찾아오다니...

숨막히는 교무실 한복판, 교복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종이에 사인하시는 선생님을 내려다봤던 기억, 그런 나를 의아하게 힐끔거리시긴 했지만 기분 좋은 티는 숨기지 못하셨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난 그렇게 남몰래 국어와의 친근함을 쌓아갔다. 만약, 나중에 유명인이 돼서 은사님을 찾는 방송 같은데 나가더라도 국어를 찾아야지... 하고 망상하곤 했다. 지금 들으신대도 어리둥절해하실 것 같아 조금 웃기다.


사실, 감사한 선생님은 그 말고도 많다. 하지만 그녀는 유일하게 내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마음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창밖에서 떨어지는 목련꽃만 봐도 마음이 일렁일렁하는 사춘기 학생에게 유일하게 마음의 가려운 곳을 긁는 법을 알려주셨던 선생님이다. 그때 만나고 배웠던 작가들의 시나 소설, 수능을 위한 접근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읽고 소화하게 만들어 주셨던 해설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다른 과목 교재나 학습자료는 대충 구겨서 가방에 쳐박아도, 문학시간에 받은 자료들은 곱게 곱게 한 장 한 장 A4 파일에 들어갔다.


나는 모든 사람 안에 타고난 표현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말로 깨우든, 그림 또는 음악으로 깨워내든, 매일의 성실한 또는 꼬일 대로 꼬인 행동으로 표현하든, 깨워내는 법을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에 연습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예쁜 여주인공이 나오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읽는 걸 좋아했던 소녀인 나는 문학과 문학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덕분에 내 안의 표현을 조금이나마 말과 행동으로 꺼내놓고 사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지금쯤은 선생님의 아이들도 꽤나 장성하고, 세월 따라 새까맣던 단발머리에도 희끗한 색이 섞였을지 모른다. 찰랑찰랑 흔들면 바람소리가 날 것만 같았던 선생님의 단발머리가 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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