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4 생각
젖먹이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가족이라는 너그러운 동거인들이, 고등학교를 들어가고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친구들과 기숙사 살이를 했다. 갖가지 사투리가 날라다녔다. 친구들을 좋아하던 여고생 시절의 내게 혜화동 꼭대기에 있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24시간 부대끼며 먹고 자는 생활은 제법 적성에 맞았다. 아침이면 부은 눈으로 같이 아침 운동을 하고, 등과 등을 맞대고 야자를 하고, 잠들 때까지 한 방에 모여 과자를 까먹고 숨죽여 수다 떨었다.
대학 입학과 함께 잠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가 해외 생활을 하면서 다시 집을 나왔다. 한 달 월급 절반이 방세로 증발하는 미국 생활. 호주머니 사정을 보호하기 위해 당연히 플랫 메이트가 있었다. 외벽을 흰색과 계란색 페인트로 칠한 전형적인 3층 미국 가정집이었다. 아래층은 살가운 중국인 여자와 미국인 남자 부부가, 위층은 나와 유학생 2명이 방세를 내고 점거했다.
세계 어디서든 집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내방을 가진다는 개념은 내게 친근해졌다. 오롯이 혼자 산 경험이 거의 없어서인지 몰라도 서울로 돌아와 회사를 다니게 된 후에도 쉐어하우스를 선택했다. 보증금도 아낄 수 있었고 생활에 아쉬운 부분은 없었다. 그래도 이젠 정말 나만을 위한 집을 찾아볼까 할 무렵, 또 친구와 같이 살게 됐다.
함께 살이에 익숙한 사람들은 딱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정도로만 포개졌다가 각자 제자리를 찾는 리듬에 익숙하다. 부엌같이 공용공간에서 마주칠 때 주고받는 조용한 눈인사, 서로의 후라이팬 속 한끼를 훔쳐보는 호기심 어린 시선, 타인의 세탁물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앞에서 제 순서를 기다리는 한가한 시간.
동거인들은 안온한 울타리기도 했다가 조심히 다뤄야 하는 예쁜 유리컵이기도 했다가 발라내기 힘든 생선 가시뼈같기도 했다. 그래도 대체로 잘 지냈고, 서로의 안위를 바라며 헤어졌다.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와의 동거는 그 누구와의 동거보다 시끄럽고 편안하다. 딱 여자 둘이 살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투룸. 어느새 그녀와의 동거가 두 달에 접어드는 시점, 나는 갑자기 혼자만의 여행이 절실해졌다. 절대 이 생활이 즐겁지 않은 건 아니지만 수많은 동거인을 거친 내 속에 무언가가 혼자만의 방을 갈구하는 듯했다. 물론 늘 개인방이 있었기에 문을 닫으면 순식간에 고독을 즐길 수 있었지만 그건 오롯이 혼자는 아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조용히 방에 머물 줄 모르는 데서 온다. - 파스칼
모두에겐 자기 자신의 목소리, 발걸음, 향기만 느껴지는 깊숙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20세기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갈래를 만들었던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여성에게 허하라"고 했다. 내가 독립하고서야 엄마는 엄마만의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마음이 찡했다. 친구와 한 달 여행하며 늘 호텔방을 나눠 썼을 때도 기억난다. 고독이 절박했던 난 성당을 구경하겠다는 친구를 혼자 내보냈다. 장장 20일 만의 혼자, 5시간 동안 흠뻑 뒹굴었던 ’ 혼자만의 방’이 얼마나 달가웠던지.
내가 솔로 여행에 대해 고민하던 와중 설 연휴가 시작하고 친구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다들 연휴라고 여행이라도 갔는지 건물 전체가 고요했다. 친구를 배웅한 후, 비척비척 침대로 돌아와 잠시 웅크려 누웠다. 방 2개와 부엌, 거실, 화장실 전체에 고요가 밀려오고 거짓말처럼 이상한 에너지도 밀려들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지겨울 쯤 몸을 일으켜 부엌에서 차를 한 잔 끓여 마셨다. 온 집을 쓸고 닦았다. 금방 더워져서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누구에게 묻지 않고 보일러를 내 체온대로 조절했다. 샤워를 하면서는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곤 조심성 없는 걸음으로 가운을 걸친 채 욕실에서 나와 온 집에 물을 뚝뚝 흘리고 다녀본다.
허기가 져서 버터를 넣은 팬에 양파, 토마토, 시금치를 곁들여 고기를 구워 내 접시에 담아 먹었다. 윤스테이를 보며 낄낄거리는 시간, 향초도 하나 잊지 않고 켜 두었다.
아껴두던 LP판을 꺼내 좋아하는 노래를 몇십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테이블에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고, 틈틈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옷장을 뒤집어엎어 구겨진 옷들을 개고, 뜨끈한 전기장판 위로 파고들어 잠을 자기도 하면서 나태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한밤중 문득 잠들기가 아까워서 혼자 일어나 일기를 쓰고 만 원짜리 편의점 와인도 마셨다.
뭘 해도 집중이 잘 됐다. 바깥세상은 초대장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음성 기반 SNS로 시끌벅적했지만 그 순간만큼 내겐 누구의 목소리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와 내가 안고 있는 문제와 고민만이 아늑하고 조촐한 방 안에서 행복했다.
셋째 날 아침, 혼자만의 방에서 눈뜬 나는 다시 동거인이 조금 보고 싶어 졌다. 디톡스가 끝났다.
혼자였기에 다시 함께할 수 있는 기운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