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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코치 Dec 20. 2022

유능한 부하를 만드는 방법

김 대표는 ‘한 말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회의를 마무리할 때 대개 사회자는 대표에게 한 말씀을 요청한다. 이때의 한 말씀을 강평이라고 부른다. 회의가 끝날 때 강평을 하시겠느냐고 물어보면, 김 대표는 “회의 중에 얘기 다 했는데 뭘 또 얘기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번은 박 상무가 김 대표에게 왜 강평을 하지 않는지 물었다.


“강평이라는 게 결국 회의 중간에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거밖에 더 되겠어? 했던 이야기를 자꾸 하면 뭐해. 듣는 사람 지루하기만 하지.” 김 대표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관리자들은 대개 자기 임무가 부하직원을 가르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부하들이 잘 모르는 것은 가르쳐 주고, 잘못 한 일은 지적하거나 고쳐주고, 실수한 일은 혼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게 관리자가 밥값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 그런데, 그런 게 밥값을 하는 방법이 아니야.


관리자는 지들이 직원들이 하는 일을 죄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매사에 가르치려고 들어. 사실 다 알지도 못해. 그러니 가르치려고 할 필요 없어. 가르쳐주지 않아도 직원들 다들 일 잘 한다고. 직원들을 믿고 지켜 보고 도와주면 되는 거야. 그게 관리자가 제대로 밥값 하는 방법이야.”


‘밥값’을 한다는 것은 역할을 다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리더의 역할, 즉 리더가 밥값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정하고, 앞장서서 구성원을 이끄는 등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업무의 전문가로서 구성원에게 업무 지식을 가르치고, 잘못한 것을 고쳐주고, 평가하는 것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렇지만 리더가 업무전문가의 역할에만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리더가 업무전문가의 역할을 하는 것은 리더가 구성원보다 유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상사가 부하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구성원 중 똑똑하고 경험 많고 일 잘 하는 사람이 승진하여 상사가 되어 구성원을 이끌기 때문이다.


승진의 기준이 그러하니 대부분의 리더는 유능감에 젖어 있다. 회의를 2시간 했는데 상사 혼자 1시간 55분을 이야기했다던가, 회의에 대해 강평할 때 회의 중에 이미 했던 이야기를 다시 1시간을 이야기했다던가 하는 것은 유능감에 젖은 상사의 행동이다. 부하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고 내 이야기나 잘 들으라는 것이다. 왜? 나는 니들 보다 많이 아니까.


그렇지만 구성원보다 리더가 더 깊게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첫째, 무엇보다 상사는 부하보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영업팀 정 팀장은 고객사인 A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 팀장과 A사의 최 사장은 ‘형님, 아우’ 사이로 지낸 지 십 년이 넘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그렇지만 ‘지금’ A사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 대리가 더 잘 알고 있다. 이 대리가 파악한 A사의 상황을 무시하고 정 팀장이 자신의 과거 경험에 근거해서 업무 지시를 하면 이 대리는 답답하기만 하다.


둘째, 시대에 따라 일하는 방법도 바뀐다. 정 팀장은 ‘요즘 젊은 영업사원들은 고객을 찾아가서 만나 보려고 하지 않는다니까!’ 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이 대리는 ‘요즘은 자꾸 찾아오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메신저로 종종 안부 묻고 정보를 알려주는 걸 더 좋아합니다.’ 하고 말한다.


유능해서 리더가 되었지만, 정작 리더는 유능함보다 겸손함으로 일해야 한다. 리더의 겸손함은 구성원의 유능함을 불러일으킨다. 반면에 리더의 유능함은 구성원의 유능함을 압박한다.


리더는 자신이 직접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일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자신의 유능함이 아니라 구성원의 유능함으로 일해야 한다. 리더는 유능함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 상사가 유능해서 리더가 될 수 있었다는 건 모두 알고 있다. 상사는 자신이 모르는 건 모르겠다고 하는 게 낫다. 심지어 모르는 척하고 물어보라. 리더의 겸손은 부하의 유능감을 자극해서 부하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게 한다. 겸손함을 통해 부하가 유능감을 발휘할 기회를 주어라.


그런데, 상사가 모른다고 하면 부하들이 기어오를 거라고? 여보쇼, 그렇게 자신 없으면 그 자리 내놓으시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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