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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의 조건 2: 일은 내가 만든다

by 박코치

(박코치의 뉴스레터 '리더십의 순간' No. 35)


제가 대리였을 때 제 상사의 상사는 A상무였습니다. 외국 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 A상무는 이러저러한 일을 해 오라고 제게 직접 지시했습니다. 담당자의 일까지 챙기는 분이었습니다. 수첩에 받아 적기는 했습니다만, 좀 쓸 데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쫄따구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막상 출장 가서 A상무가 시킨 일을 저는 까맣게 잊어 버리고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와 출장 보고를 하는데 A상무는 자신이 시킨 일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을 겁니다. 불끈하는 성격의 A상무가 제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화를 내다가 갑자기, “어, 박 대리. 자네 수첩 꼼꼼히 잘 쓰지? 수첩 줘 봐.” 하더니 출장 전에 자신이 지시한 내용에 대한 메모를 찾아냈습니다. “어, 여기 있네. 여기 잘 적어놓고 왜 안했나고!” (표현이 거칩니다만) 정말 허벌나게 깨졌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업무 메모를 자세히 안 쓰고 대충 씁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쫄따구가 팀장도 아니고 임원이 일을 시켰는데 무시하고 하지 않다니요. 혼나도 싸지요.


생각해 보면 저는 문제가 많은 사원이었습니다. 윗사람이 지시한 일을 하지 않거나 잊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지시받은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쓸 데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랬습니다. 한 마디로 납득이 되어야 일을 하는 스타일이었던 거 같습니다. 요즘 팀장들을 고민하게 만드는 젊은 직원의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사원이었으면 공포의 ‘3요‘(제가요? 이걸요? 왜요?)를 난사했을 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상사가 시킨 일이 중요하거나 가치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지시 받지 않은 일도 찾거나 만들어서 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원이고, 나쁘게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사원이었습니다.


그러다 어찌어찌 임원이 되었습니다. 임원이 되니 상사가 시킨 일을 뭉개는 버릇이 고쳐지더군요. 사장님이나 회장님께 직접 지시를 받으니 감히 안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안 그랬으면 임원 생활 오래 못했을 겁니다.


임원이 되어서 참 좋았던 것은 제가 해 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서가 이 정도 일은 해야지’ 하는 일이 있으면 부서장에게 맡겼습니다. 천성이 게을러서 남을 시키는 건 또 잘 했습니다. ’우리 회사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일을 발견하면 전사 프로젝트를 만들어 사장님께 건의했습니다. 일 벌인다고 동료 임원들은 불평했지만 사장님이 허락한 일이니 어쩌겠습니까.


코칭을 할 때 임원이 되고 싶지 않다는 팀장들을 종종 만납니다. 임원이 되면 힘들고 정년 이전에 그만 둘 수도 있으니 임원이 되기 싫다는 겁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팀장님, 임원이 되면 일이 정말 재미있어집니다. 권한이 생기거든요. 지금은 일 좀 해 보려고 하면 사방에서 방해하는 자들이 많죠? 임원이 되면 내가 해 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시켜서 하는 일보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집니다.

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때도 있습니다. 사장님이 시키는 일에도 ‘그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하는 말이 먹힐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임원이 하는 말이니 사장님도 들어주시거든요.”


지난 주 레터에 승진의 조건으로 리더십의 잠재력이 필요하고, 잠재력을 가진 사람은 상사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외에 또 어떤 것이 리더의 잠재력을 보여주는지 이야기해 달라고 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신입사원 때를 생각해 볼까요? 그때는 주어진 일만 하기에도 바쁘고 벅찹니다. 그렇지만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고 고위 리더가 될수록 본연의 일, 즉 담당 업무뿐 아니라 새로운 일을 찾거나 만들어서 해야 합니다. 새로운 일이란 이제까지 해 보지 않은 일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영업담당 임원이라면 새로운 지역에 진출한다던가, 새로운 제품군을 판매하는 일입니다. 또는 완전히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기존에 하던 업무의 방법을 새로운 방법으로 바꾸는 일도 해당됩니다. 영업이라면 대리점을 거쳐 고객사에 판매하던 영업 방식에서 온라인을 통해 직접 판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해 오던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하거나(Better!), 비용을 더 적게 들이거나(Cheaper!), 더 빠르게(Faster!) 하는 것을 말합니다.(줄여서 BCF!)


저는 임원은 상사에게 업무 지시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사로부터 이런저런 일을 하라고 지시받는 것은 임원으로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상사에게 업무 지시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업무에 대해 상사만큼 고민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승진 후보자가 리더십의 잠재력이 있는지 판단하고 싶다면 그가 새로운 일을 찾거나 만들어서 하고 있는지 살펴 보시지요. (*)


https://stib.ee/ZB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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