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팡이

그가 내게 남기기도 한 지팡이

by 박찬미


“여보! 지하 1층 의료기 상사에 들렀더니, 지팡이가 여러 종류가 있더라. 당신 퇴원 전에 함께 들러서 마음에 드는 것 고릅시다.”

남편은 내가 고르는 것이면 다 괜찮으니 그냥 사라고 했다. 그러나 난 남편과 함께 고르려고 지팡이 사는 것을 미루었다. 처음 사게 되는 지팡이니만큼 자신의 몸에 맞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남편은 유전으로 심장비대라지만 특별히 아픈 곳이 없었다. 그 흔한 감기조차 앓은 적이 없었다. 정년퇴직 후 받은 건강검진에서 췌장에 혹이 발견되어 좋아하던 술을 단칼에 끊었다. 그러다 보니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대부분인 모임에 잘 안 나가게 되었다. 대신 좋아하는 요리를 직접 해서 먹겠다며 요리 교실에 6개월 다니게 되었다. 요리뿐 아니라 골프, 드럼 등에 취미를 갖는가, 싶더니 그마저 시들했다. 유일한 취미는 어머님 산소 옆의 텃밭을 가꾸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주목을 천 그루 심었는데, 세월이 가면서 매화나무, 등 유실수를 심었다. 봄이면 냉이와 쑥을 캐고, 두릅과 엄나무 순을 땄다. 초여름이면 매실과 보리수를 따서 청을 만들고, 메리골드 꽃잎을 따서 차를 끓여 마셨다. 포도잼과 보리수 잼, 고추장아찌, 토마토, 오이 피클을 만들었다. 그런데 작년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 밭에서 일하다 보니 심장에 무리가 왔나 보다. 온몸이 풍선처럼 붓기 시작했다. 이명까지 와서 온갖 병원을 순례했다. 결국 심장 문제로 일주일 입원했다. 곧 괜찮아져서 추석 무렵에 퇴원했다. 올해 1월 초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응급실에 갔더니 젊은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요양병원에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 후 부정맥으로 제세동기 삽입하고 그곳에서 설을 보내며 한 달가량 입원했었다. 병원 생활이 지긋지긋하다며 남편은 퇴원을 고집했다. 전동침대, 휠체어 등 온갖 준비를 마치고 간병인을 구했다. 두 달간 매끼 밥을 새로 지어 남편과 간병인에게 밥상을 차려 주었다. 홍어와 장어탕을 맛있게 먹더니 산책을 시작했다. 호흡곤란으로 힘이 들어 등산 스틱 하나를 지팡이 삼아 조금씩 걸었다. 회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5월에 다시 입원하면서 7월 15일 중환자실에서 끝내 남편은 소풍을 떠났다. 5월 입원할 때 난 등산 스틱을 챙기지 않았다. 지팡이를 새로 장만하려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직에 있을 때 퇴근하면 남편에게 하루에 있었던 일을 조잘대며 화장실까지 따라가서 이야기했었다. 귀갓길엔 어떤 말부터 먼저 해야 할지, 순서를 정하기도 했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남편은 내게 엄마이자, 아빠 그리고 친구였다. 먼저 정년퇴직을 한 남편은 집에서 청소며 세탁, 요리뿐 아니라 출퇴근 기사 노릇까지 기꺼이 했었다. 38년간 내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 그는 과일을 깎아서 나에겐 예쁜 조각을 먹게 했고 그는 나머지 부분을 먹었다.


중환자실로 가기 전 남편에게 섬망이 생겼다. 바다를 좋아했던 남편은 병원 앞이 바다냐고 물었다. 걸음마보다 수영을 먼저 시작했단다. 흑산도가 고향인 남편은 한강 수영 대회에서 일등까지 할 정도로 근육질이었다. 몸이 아픈 탓인지 남편은 내게 짜증을 내고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늘 보호자처럼 나를 챙겨주던 남편이 이상해지자 나는 견디질 못했다. 우울증이 생겼다. 중환자실 가기 사흘 전 기침약을 안 먹겠다고 버티기에 간병인을 구하라고 울며불며 짐을 싸서 병실을 나왔다. 이십 분 만에 다시 돌아왔지만 밤새 울었다. 그리곤 그에게 퍼부었다. 아빠가 반대한 결혼 처음으로 후회한다고. 그가 보는 앞에서 내 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런데 아침에 내 손을 잡으며 그는 미안해했다. 원래 미안하단 말을 잘 하지 않는 남편이다.

“내가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정말 미안해. 당신이 밤새 우는 동안 난 피눈물 흘렸어.”

‘여보 나를 용서하지 말아요. 천국에선 부디 맘씨 착한 여자 만나요. 당신은 내가 외국 출장 가고, 영어 관계 일, 임용고시 출제로 한 달씩 집을 비워도, 동료들과 국외로 여행가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즐기라 했죠. 글 쓰는 일도 응원해주고 행사마다 같이 다니며 힘을 실어 줬는데...’.


귀갓길 전철 경로석에 앉았던 여성이 나와 같은 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초로의 남자가 팔을 번쩍 위로 올리더니 반짝반짝 작은 별 율동처럼 손가락을 앞뒤로 흔들고 함박웃음을 날리며 그녀를 품에 안을 듯 걸어왔다. 남편이 전철역 안으로 아내를 마중 나왔나 보다. 순간 그녀가 억만장자보다 부러웠다. 잘 생긴 것도 키가 크고 젊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반갑게 아내를 맞아 줄 남편이 내 곁엔 없다.

남편의 입원 기간 내내 지팡이를 언제 살까 고민했었다. 의료기 상사에 가서 물품을 살 때마다 보였던 지팡이를 언젠가는 꼭 살 줄로 여겼다. 내게 남편은 공기 같은 존재였다. 늘 곁에 있어 고마운 줄 모르고 살았다. 당연히 언제고 내 곁에 있는 줄 알았다. 그 소중함을 이제야 깨닫는다. 공기가 없으니 숨이 멎을 거 같다. 지팡이를 사놓지 않아서 남편이 간 것만 같다. 지팡이를 사 놓았더라면 그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출세욕도 성취욕도 강한 편이 아니다. 남편은 그런 내게 늘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며 권유해서 대학원을 세 군데 졸업하고, 워드 1급,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정보기능사 자격을 따게 되었다. 뒤늦게 승진 준비를 하였지만 남보다 빠르게 승진하게 되었다. 남편이 먼저 교장 승진하고, 내가 마침내 교장으로 승진하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였다. 장녀이자 맏며느리지만 대소사는 남편이 알아서 하니 난 학교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언제나 묵묵히 그의 의견에 따랐다. 첫 책 출간 때 남편은 단체 톡 방 곳곳에 나의 책과 프로필을 올리며 아내를 자랑스러워했다. 허망하게 남편을 보내고 눈물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난 마지막 지팡이에 지나치게 집착했다. 어느 날 남편은 말쑥한 차림의 뒷모습으로 꿈에 나타났다. 그의 길을 따라가려 급하게 걸음을 옮기는 중에 잠에서 깼다. 그래! 남편은 가면서 내 길을 따라오라고 평소와 같이 나를 인도한 것이다. 그 길은 남편의 마지막 지팡이 길. 남편이 그 지팡이를 짚으며 내가 가길 바라는 길이다. 그가 내게 준 영혼의 지팡이!


이태리 영화 <길>에서 잠파노라는 떠돌이 차력사는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된 젤소미나를 버리고 길을 떠난다. 몇 해 후 어느 마을 공연장에서 귀에 익은 노랫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잠파노는 젤소미나가 자신을 한없이 기다리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뒤늦게 젤소미나의 사랑을 깨닫게 된 잠파노는 한없이 후회한다. 잠파노는 의도적으로 그녀를 버리고 길을 떠났지만, 남편은 병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두고 그의 길을 떠났다. 잠파노가 젤소미나의 사랑을 늦게야 깨닫듯, 나도 그가 간 후에야 몸서리치게 그에게 잘못한 일을 떠올린다. 식판을 앞에 두고 두 시간을 기다려도, 밥을 물에 말아 떠먹여 주어도, 못 먹겠다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200m도 안되는 길을 못 걷겠다며 택시를 타자했을 때, 화를 냈었다. 매일 밤마다 그에게 잘못한 일을 후회하며 복기하고 반복한다. 심장이 골절되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눈물보다 더 진한 슬픔이 목구멍에서 떠나질 않는다. 처음엔 나를 두고 먼저 간 그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내 곁에 없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의 옷, 그가 남긴 모든 것 사연 하나하나를 생각하며 시도 때도 없이 통곡했었다. 넋이 나가 전철역을 두세 정거장 지나치기도 했다. 청수한 그의 얼굴. 면역력이 약해지니 양쪽 눈이 번갈아가며 석류처럼 붉어졌었다.


‘여보 좀 전까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노래를 들으며 무척 마음이 시렸어요. 그러다 목청 놓아 실컷 울었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살리겠다고 당신 앞에서 호언장담했건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이리 보내게 되었네요.

달리는 젊은 이를 보면 한없이 부러워했던 당신! 이젠 훨훨 나세요. 뛰고 또 달리고 날아서 천국으로 가세요.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지팡이, 이제 제가 그 지팡이 짚고 온 힘을 다해 당신 몫까지 걸어가렵니다. 그 길로 걸어가서 당신이 못다 한, 그렇게도 커가는 모습 보고 싶어 했던 손주도 키울 거고,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던 작가 모습도 보여주렵니다. 이젠 그만 울려고요. 천국의 길목에서 다시 만나면 당신이 늘 만져주던 늙고 주름진 손 마주 잡고 “수고했어. 고생했어. 고마웠어. 사랑해.”소리 귓속말로 들려주세요’

오늘 아침에도 난 운동화 끈 질끈 묶고 그가 내게 남겨준 영혼의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그가 말한다.

“당신은 뒷머리를 잘 안 빗더라. 지금 다시 빗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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