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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by 궤적소년

12월, 외할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온다.

올해로 몇 번째인지는 잘 모르겠다.

폐암을 앓고 계셨던 것만 안다.

어릴 적부터 많이 뵈었지만 기억은 많이 없다.


자주 뵈었던 어린 시절엔 외할아버지를 보고 싶단 생각은 딱히 없었다.

명절엔 명절이라 뵈었고, 생신일 땐 생신이라 뵈었다.

굳이 그런 특별한 날이 아닌 평소에도 자주 만나 인사를 드렸었다.


술을 좋아하시던 외할아버지의 거실엔 항상 땅콩이 있었다.

나는 갈 때마다 외할아버지가 나눠주시는 땅콩을 먹었었다.

별 볼 일 없었을 땅콩에 추억이 깃드니 특별해졌다.


요즘은 땅콩을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때의 땅콩이, 외할아버지가 나눠주시던 모습이 더욱 선명하다.


보고 싶단 감정의 시계는 그날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뵐 수 없게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뵙고 싶어진 것이다.


외할아버지이기 이전의 한 인간은 무로 돌아갔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라는 한 사람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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