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서평
삶이 유난히 무거웠던 시기를 지나왔다. 어쩌면 아직도 진행형인 얘기일지 모르겠다. 지금은 잘 떠올리지 않게 된 그때의 나는 비교와 자기검열에 시달리며 살았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의 제목을 보자 그 시기가 바로 생각났다. 저자 또한 내가 자주 봐 온 박찬국 교수님이었다. 그렇게 이끌리듯 책을 펼쳤다.
책은 내 삶을 지배해 온 방식에 ‘계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무엇이 더 이득인지, 어떤 선택이 더 효율적인지 따지는 눈으로 사람과 관계, 심지어 나 자신까지 평가해 온 시간들이 있었다. 그에 비해 이 책이 말하는 ‘시적인 사유’는 사물을 해부해서 이해하려 들기보다,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 주는 태도에 가깝다. 날카로운 분석 대신, 조용히 곁을 지키는 부드러움으로도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곱씹을수록 오래 남았다.
불안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강하게 와 닿았다. 이전의 나는 불안을 ‘없애야 할 감정’으로만 여겼다. 그런데 이 책은, 불안이야말로 내가 ‘죽을 자’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신호라고 말한다. 언젠가 끝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자각 앞에서, 지금까지 움켜쥐고 있던 안전과 안락의 기준들이 얼마나 허망했는지 서서히 드러난다. 행복을 설명해 주겠다고 약속하던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삶의 근원적인 어둠을 비켜 가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보자고 한다. 이상하게도 그 어둠을 직시하는 순간, 마음 한켠이 조금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시를 쓰는 나를 완전히 다른 자리로 옮겨 놓았다. 나는 그동안 시를 쓴다는 일을, 내 감정을 나만의 언어로 재단하고 배열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 책 속에서 시인은 침묵 속에서 세계의 소리를 먼저 듣는 사람에 가깝다. 말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짜내는 대신, 사물과 순간이 먼저 건네오는 떨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 떨림을 언어로 옮겨 적는 사람. 그 설명을 읽는 순간, 지금까지 내가 써 온 문장들이 조금 부끄러워지면서도, 동시에 앞으로의 시들이 새로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삶을 짐으로 느끼는 감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하루는 버겁고, 시를 쓰기 위해 텅 빈 화면을 마주할 때면 어깨가 무거워진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 짐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분명 달라졌다. 더 이상 가볍기만 한 삶을 꿈꾸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무게를 어떻게 들고 걸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이 무게가 나를 부수는 것 같다가도, 부서진 자리에서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는 사실이 조용히 기쁘게 느껴진다. 삶이 왜 짐이 되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을 건네는 책이었고, 덕분에 나는 그 짐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은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