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가족이었다

반려견을 떠나 보내며

by 차노휘

30일 3시가 조금 지난 시간, S 동물병원 원장이 포미 보호자를 불렀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위에 목 아래 혈관이 잡히지 않아 양쪽 발목에 피를 빼고 밴딩을 한, 수액을 맞고 있는 포미가 누워있었다.


원장은 20만 원이 넘은 검사를 하고 난 뒤 자궁에 고름이 있거나 암일 거라며 엑스레이를 찍은 모니터 까만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는 암인지 고름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추가 검사를 한 뒤 곧바로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며 결정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확률은 반반이라고 덧붙였다.


포미 배를 쓰다듬었지만 의식은 없었다. 독소가 몸 전체로 퍼졌을 거라고 했다. 테이블에서 일어날 수 없을 확률이 많다고 원장은 또 강조했다. 어찌 되든 책임은 회피하고 싶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렇게 죽는다면… 포미가 매일 달리고 싶어 하던 산책코스도 보여주어야 하고 그동안 고마웠고 많이 사랑했다는 말도 해야 하는데… 체온이 남아 있을 때 따뜻하게 안고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다.


원장은 내가 망설이고 있자, 자궁만 드러내면 3일 안에 팔팔하게 달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포미는 고령이었다. 말은 못 하여도 차가운 스테인리스가 아니라 집에서 임종을 원했을 수도 있었다.

건강했을 때의 포미. 잘 웃었다.

그냥 내 품에 안고 병원을 나서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혹시나 돈 계산으로 녀석의 목숨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죄책감으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추가 검사 뒤 수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때였다. 포미가 눈을 치켜뜨며 나를 올려다보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어 속엣것을 토해낸 것이. 그리고는 축 늘어졌다. 원장과 보조 간호사는 혹 혀를 깨물까 싶어 입을 벌리는 기구를 장착하고는 응급처치로 들어갔다.


나는 손가락을 포미 코에 댔다. 호흡이 점점 약해졌다가 마침내 끊겼다.


"수술받기 싫어서 먼저 가버렸나 봐요."


원장이 말했다. 그럴 것이다. 십분 뒤에 갔다면, 확률 반반이라는 말을 들어 추가 비용과 수술비를 다 청구했을 것을. 왜 내가 좀 더 편하게 보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물었을 때, 왜 반반인 확률을 거듭 강조하며 수술만을 권했을까. 안락사를 절대 원한 것은 아니었다. 집에서, 십 년 이상 녀석의 냄새를 묻히며 살았던에서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다. 목이 막혀 말이 끊어지는 내게 냉정한 보호자로 원장은 밀어붙이기만 했을까.


이미 늦었다.


나는 숨이 끊어진 것을 알고도 오물 묻은 포미 털을 물티슈로 닦고만 있었다. 집에서 가지고 온 담요는 오물로 더러워져 있었다. 그리고는 발목 밴딩과 수액을 빨리 빼 달라고 했다. 병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담요는 버려주라고 했다.


모든 것이 제거되자 포미를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콧물이 나오고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 간호사가 티슈를 건넸다. 그리고는 오물이 나올 수 있으니 패드에 싸서 데리고 가라고 했다.


계산을 하고 나가려 하자 카운터 여자가 반려동물 장례 전문기업 '펫 바라기' 팸플릿을 건넸다. 운전해서 두 시간 걸리는 N시 근교에 있었다. 그곳에서 화장할 수 있단다.

생전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 낡을 대로 낡았다.

품에 안긴 포미는 호흡만 멈췄을 뿐 아직 따뜻했다. 평소대로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털을 하나씩 만졌다. 집에 와서는 제일 좋아하던 내 작업실 침대에 하룻밤 마지막으로 재우기로 했다. 오물 묻은 털을 닦아주었다. 제일 좋아하던, 심심할 때면 입에 물고 오던, 이미 낡아버린 인형을 녀석 품에 안겨주고 새 담요로 몸을 감싸주었다. 서서히 몸이 굳어갈 것이다.


그리고는 얼결에 들고 온 펫 바라기 팸플릿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집에 있는 세 녀석은 제 아내와 어미가 죽은 줄을 아는지 평소와 달리 얌전했다. 화장 시간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포대기에 싼 녀석을 무릎에 올려놓고 N시 근교로 향했다. 조수석에는 딸이 앉았다.


딸은 새벽에 두어 번 포미 본다며 자다 말고 작업실 침대로 왔지만 살아생전 포미와 사체와는 구별 지었다. 사체를 사체로 봤다.


십여 년간 같은 침대를 사용했던 녀석. 잠꼬대도 방귀도 잘 뀌던 녀석. 인간관계로 상처받아 유폐되다시피 한 내게 따뜻한 체온을 나눠주었던 녀석. 차가운 나를 처음으로 동물을 사랑하게 만든 녀석. 뒷다리가 불편해 자궁이 온전하지 않지만 깜찍한 두 녀석을 낳은 애엄마 녀석. 두어 번 죽을 고비를 넘겼던 녀석. 이틀 전까지도 간식을 잘 받아먹은 녀석…

N시 근교 펫바라기에서 반려견 장례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찬찬히 펫 바라기에서 진행하는 장례절차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유골함을 무릎에 올려놓고 운전했다.


딸과 포미와 공유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꺼내 이야기했다. 끝도 없는 추억을 되살릴 때마다 자제하고 있던 술 생각이 간절했다.

포미.jpg 포미를 약사암이 보이는 새인봉 절벽에 뿌렸다. 어느 날 장불재에서 내려올 때 들었던 불경 소리의 평안함 때문이었다. 이날부터 나는 무등산을 산행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