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끝은?

그레이하운드 경주장을 찾아서

by 차노휘

녀석을 처음 본 곳은 동물병원에서였다. 내가 반려견의 진료를 마치고 대기실로 나왔을 때, 우아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날렵하고 작은 두상, 탄탄한 U자형 흉부, 아치형 등 곡선, 긴 다리와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은 흡사 햇살 아래 고고하게 서 있는 사슴 한 마리를 연상케 했다. 견주에게 다가가 견종을 물어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왼쪽 무릎인대가 손상되어 치료를 받으러 왔다던 녀석은 그레이하운드였다. 며칠 뒤, 그 견주가 운영하는 농장을 방문했고 경견장까지 가게 되었다.


경견장이라고 불리는 곳은,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공터나 다름없었다. 경견법이 아직 통과되지 않아 합법적으로 경견장을 지을 수 없어서였다. 그래서 경견협회가 주축이 되어 경견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며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던 것이다. 경견장은 초라했지만 나름대로 갖출 것은 갖추고 있었다.


4m 타원형 모래 트랙. 경견 여섯 마리가 각자 대기할 수 있는 스타팅 박스. 트랙 안쪽으로 도르래가 설치된 철망. 미끼를 조정할 수 있도록 무전기와 연결된 장비를 장착한 도르래. 경견협회 회장이 도르래를 움직일 수 있는 무전기를 담당했고 경기를 진행했다.


마침내 경기 시작 호각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레일에 장착된 미끼가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스타팅 박스 문이 열렸다. 여섯 마리의 경견들이 총알처럼 튀어나와 미끼를 쫓았다. 녀석들의 달리기 거리는 트랙 한 바퀴 반이었다.


취재하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 견주들은 경주에 나가는 경견들에게 모두 입마개를 씌웠다. 입마개를 착용하지 않으면 앞서 가는 견의 뒷다리를 물 수 있었다. 또한 경기를 앞둔 전날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달리는 중에 장이 파열될 수 있었다. 심지어 경기 시작 전, 빈속에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오물 찌꺼기까지 배출하게 했다. 경견의 최상의 몸을 위해서 한약을 넣은 사료를 먹이기도 했다.


위 사실의 공통분모는 ‘속도 향상’이었다. 견주들은 좀 더 빠르게, 다른 경쟁자들보다 앞선 경견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비단 견주의 승부욕뿐만이 아니라 경견들의 본능(욕망) 또한 그에 상응했다.


본능의 힘은 강했다. 아직 달리지 않은, 컨테이너에 갇혀 있는 견들은 달리고자 하는 욕망을 잠재우지 못하고 시종일관 울부짖었다. 그레이하운드의 최고 속도가 시속 67.4km이며 단거리 경주일 때는 말보다 월등하다는 정보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가히 속도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레이하운드. 하지만 지나친 욕망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달리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어 의지와 상관없이 광기의 레이서가 되었다. 오래전 녀석들은 왕족의 사냥견이었지만 사냥감을 쫓다가 나무에 부딪혀 죽기도 했다. 광기의 레이서에게는 브레이크 페달이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목숨을 건 질주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내가 본 것은 루어였다. 토끼가죽으로 만든 ‘가짜 미끼’였다.


마지막 호각소리가 들렸을 때 마른바람이 불었다. 경견들의 발아래에서 이는 모래먼지는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휘날렸다. 선두로 달리던 녀석이 고꾸라졌다. 경고 소리가 났지만 경견들은 쓰러진 녀석의 몸뚱어리 위로 가차 없이 내달렸다. 몇 초 뒤 선두 경견이 루어를 물었다. 연달아 도착한 녀석들도 그것을 서로 갖겠다고 으르렁거렸다. 구경꾼들의 함성 소리가 터졌고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모래 먼지가 관중석까지 날아들었다. 경기가 종료됐다는 호각소리가 들리기 전에 나는, 경견장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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