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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한 마음 Sep 25. 2020

우리들의 이야기

'십 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오전 열  시 반 우리는 줌에서 만났다. 늦잠을 잔 탓에 아이를 유치원까지 데려다주고 오니 벌써 열 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전날 사둔 에그 타르트를 입안에 대충 욱여넣고 커피 물을 끓였다. 아직은 뜨거운 커피 잔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그렇게 나는 그녀들과 마주 앉았다.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부산하게 움직이다 겨우 시간 맞춰 입장한 그녀들의 모습이 서로 엇비슷하여 세수도 안 한 내 민낯이 다행히 부끄럽지가 않다. 가벼운 안부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명희 쌤이 입장하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우리의 두 번째 글쓰기는 공통 주제로 진행되었다. 각자가 생각해 본 몇 가지 주제를 모아 투표로 정한 것인데, 내가 제안했던 주제로 정해졌다.  ‘십 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막상 내가 제안은 하였으나 글을 쓰려고 하니 너무 막막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글의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매번 그러했듯 마감날이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완성한 글을 멤버들과 카톡에서 먼저 공유하고 줌 모임에서 만난 것이다.


이번엔 지난번과 다르게 각자 쓴 글을 자신의 목소리로 읽어보기로 했다. 나의 글을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던 지난 시간도 신선하고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역시 자신의 호흡과 감정을 실은 자기 목소리로 듣는 글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는 느낌이었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순간순간 멈칫했고, 격한 감정이 차올라 눈물 흘리기도 했다. 함께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우리는 같은 지점에서 멈추고 호흡했고 또 눈물지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아닌 마치 나의 이야기를 대신해 쓴 듯한 글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같은 순간을 공유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멈춰있는 순간 안에 함께 묶여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그 느낌이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서로가 깊이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 그 공감의 순간 말이다.




젤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십 년 후의 명희는 딱 ‘지금’을 살라고 했다. 딱 ‘너’를 살라고.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라고.
어느 날 문득 열어본 그녀의 갤러리에 정작 그녀 자신은 없다는 걸 안 명희는 그날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 십 년의 시간 속에는 자식과 부모, 남편에 대한 기억으로만 가득했다고.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살아낸 시간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는 상실감을 이야기하던 그녀가 참 쓸쓸하고 가여웠다.


내가 아는 그녀는 참 따뜻한 사람이다. 늘 먼저 배려할 줄 알고 상대방을 따뜻한 눈빛과 말로 감싸 안아주는 그런 사람. 주변 이들에게 그만큼이나 따뜻한 볕을 내어 주느라 정작 자신에게 쓸 에너지를 아껴두지 못한 그녀가 이제는 자기만의 곳간을 더 충실히 채워나갔으면 했다. 하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그녀는 어쩌면 자기가 구축해 온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이미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일 테니. 온전히 혼자일 때 누리는 행복감보다 좀 더 넓은 울타리 안에서 함께 나누는 행복을 더 크게 누릴 줄 아는 사람. 자신만의 곳간을 가득 채운 어느 누구보다 그녀가 더 행복한 이유일 게다.


혜정은 터널 속을 통과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면 터널 끝이 보인다는 십 년 후의 혜정의 다독임에 그녀가 눈물을 보이자 내 안 깊은 곳에서도 뭔가 뭉클하고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오프라인에서 함께 한 모임이었다면 나는 아니 우리는 그녀를 꼬옥 안아 주었을 거다. 대신 마음으로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충분히 잘 해왔어. 그리고 잘하고 있어.

제 돌이 갓 지난 아이를 키우며 사이버대학 강의를 듣고 이런 활동들까지 꾸려나가는 그녀가 참으로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젊음이 힘인가 아니면 그녀 말처럼 그녀는 내면이 정말 강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보다 한참은 어린 그녀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계속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다.


연주는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십 년 후의 삶을 들려주었다. 처음 그녀의 글을 읽었을 때 나와는 너무나 대비되게 깨알같이 디테일한 그녀의 미래가 참으로 놀라웠다. 지금 그녀의 결단력과 실행력으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 충분히 이루어지고도 남을 계획들이다. 이런 것이 차이를 만드는 지점일까? 오 년 전이나 십 년 전이나 크게 다를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이유가 무엇일까 자주 되뇌곤 했는데, 그녀의 글을 읽으며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살고 싶은 삶, 이루고 싶은 계획들을 좀 더 구체화하고 수진이 이야기한 것처럼 내 꿈을 머릿속으로 꾸준히 이미지화시키는 노력. 내게 꼭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그녀에게 그토록 영감을 준 전시회를 보고 온 날 그녀의 아버지가 하셨다는 말씀은 첫 직장을 그만두고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던 날 나의 아버지가 하신 말씀과 꼭 같아서 흠칫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참 못마땅하셨겠지. 그렇게 반듯하고 말 잘 듣던 큰 딸이 잘 다니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그 먼 나라로 무작정 떠나겠다고 하니 어이가 없으셨을 것이다. 거기까지 가보니 뭐가 어떻더냐고, 별거 없이 고생만 하다 오지 않았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따박따박 분명하게 말씀드렸지. 아빤 그 낯선 나라에 한 번도 가보지 않으셨지 않냐고. 그런 말은 다녀온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아빠 딸은 스스로가 지불한 돈과 시간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얻어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그 후로 십오 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때 그 여행을 살면서 큰돈과 시간을 들인 일 중 가장 잘한 일로 손에 꼽는다.


십 년 후 휴스턴에 있는 로스코의 그림 앞에 서있을 연주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녀의 팔딱팔딱 살아있는 위트와 영감, 따스한 감성을 담아낸 그림책을 사인본으로 얻는 영광을 나는 꼭 누리고 싶다.


수진은 자신의 이야기가 허황된 것 같아 쑥스럽다 말했지만 사실 우리 중 가장 현실적인 글을 썼다고 나는 느꼈다. 자기 꿈을 위해 구체적으로 구상하고 이미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늦은 새벽녘까지 글을 쓰는 그녀의 일상이 얼마나 치열할 것인지는 우리 중 누구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꿈은 대체 누가 이룬단 말인가. 최수진 그 이름 석자는 이미 특별하다. 그녀가 드라마 작가의 꿈을 이루든 못 이루든 자기 꿈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달려가는 지금의 일상이 그녀가 앞으로 써내려 갈 그 어떤 시나리오보다 값지다. 그녀의 이야기가 쭈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그리고 마지막 나의 이야기. 성공하고 싶은 열망과 가진 것 안에서 자족하며 소박한 삶을 살고 싶은 열망. 그 양극단을 오가는 서른아홉의 나에게 십 년 후의 혜영은 속삭인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번뇌하고 후회하는 날들을 살고 있다고. 십 년 후의 내가 그닥 특별한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과 별반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끊임없이 열망하고 고뇌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쉰에 가까운 나이에도 그런 열정을 지녔다면 아직 젊다는 증거일 테니까. 사는 날 동안에는 끊임없이 고민하겠지만,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나의 세계 안에서 진정한 ‘월든’을 발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진정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이 모임을 위해서 연주는 동 시간대에 잡힌 면접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비록 아이가 이제 막 기관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일을 시작하려면 아이를 대신 맡아줄 손이 필요하고 소중한 내 아이를 짐짝처럼 여기저기 부탁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엄마가 온전히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도우미 비용이나 그밖에 부수적인 것들을 생각하면 아직은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력서를 써낸 이유는 자신의 효용가치를 확인받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출산과 육아로 멈춰버린 자신의 경력이 더 이상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 불안과 갈등은 아마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아이 키우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 가는 통과 의례 같은 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남편과 나란히 대학을 졸업하고 (혹은 석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자신의 당당한 커리어를 일궈왔던 고학력 세대의 여성들이 홀로 외롭게 이런 고민을 떠안고 가야 하는 현실. 이것은 이제 너무도 식상하고 진부한 화제로 여겨질 정도인데 왜 이 사회는 한걸음도 진전이 없는지 진심 궁금하다. 우리가 계속 연대하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필요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인식의 전환이든 나아가 사회 시스템의 전환이든 가능하지 않을까.
육아와 가사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고 일하는 여성의 커리어를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사회적 합의와 기반이 마련되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 모임을 진행하면서 나는 우리의 글쓰기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주된 이유 한 가지는 바로 ‘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혹은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기 위해서이다. 누구의 아내, 엄마, 딸, 며느리이기 이전에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어서. 수진의 말을 빌리자면 ‘나’라는 고유명사 그대로 온전히 서기 위해서.


그런 나와 그녀들의 삶을 응원한다.

우리의 글쓰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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