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을 때 좋은 관계.

vs. 안 좋을 때 더 빛을 발하는 관계.

by 양윤미

윤홍균의 <자존감수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에 바꿀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타인과 과거다.”


요약하자면 과거에 내가 타인과 맺었던 관계들은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 느낀 기쁨과 상처들은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또렷이 남는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힘든 과거든, 떠올리면 힘이 되고 즐거운 과거든 그 모든 것들이 엮여져 지금의 내가 된다. 과거가 곧 그 사람이라고 정의내릴 순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누군가의 지난 일들은 마치 연혁과도 같다. 그가 살면서 내린 선택들은 그의 가치관과 그가 따르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준다.



내가 20살이었던 여름, 갑자기 엄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빠에게는 20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잃은 큰 슬픔이었을 테고, 나와 내 동생들에겐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내 편 하나를 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엄마를 미워한 적도 많았고 싫은 순간도 있었지만 엄마는 내 삶에 뗄레야 뗄 수 없는 큰 사람이었다. 나는 큰 아픔 앞에 슬퍼했고 어안이 벙벙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힘들고 안 좋은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어 멍하니 서 있기만 했던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었다. 못된 말을 내뱉은 사람은 할머니였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홀아비 만들었다고 고함을 치며 내 엄마를 모욕했다. 아빠에게 새 장가를 가자며 자식들은 죄다 고아원을 보내라며 소리쳤다. 나는 17년이나 지난 과거의 그 순간에 들었던 모진 말들이 여전히 잊혀 지지가 않는다. 그 순간에 할머니를 진정시키기보다 할머니를 이해하라며 나를 설득하던 아빠에게 크나큰 경멸을 느꼈다. 자식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니 그 부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라던 아빠는 엄청난 생색을 냈다. 알고 싶지 않았고 알지 않는 게 훨씬 나았던 할머니와 아빠의 본심은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드러났다. 상황이 좋은 때에는 함께 할 수 있지만 상황이 힘들어지고 안 좋을 때에는 언제든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가족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내가 버는 과외비와 알바비를 조금씩 요구했다. 나는 이용가치가 있었다. 동생들은 학생이니 돌봐야 할 대상이었으나 성인이었던 나는 아니었다. 용돈한 푼 받지 않던 내가 알바를 전전하면서 내 한 몸 책임지고 살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는데 그런 나의 삶에 논곱만큼도 관심 없는 사람이 아빠였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되듯, 십만원 이십만원, 아빠가 돈이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내 주었던 나의 진심에 대해서 나는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나는 돈을 좀 더 달라는 아빠에게 힘들것 같다는 말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기업에 다니는 분이 늘상 돈이 모자란 것은 의아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표현하지 않는 한 길 사람 속의 마음이 궁금했던 나는 나 하나 챙기고 사는 것도 버겁고 벅차 처음으로 거절을 했다.


나는 한참동안 못된 딸이라는 욕을 들었다. 그 때 내 가슴을 후벼팠던 크나큰 배신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는 그 때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을 멈췄어야 했다. 멈춰야만 했다. 그러나 바보같았던 나는 아빠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닐거란 희망을 애처롭게 붙들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을 선택했다. 우여곡절 끝에 연대보증까지 서주게 된 후, 아빠는 자신은 갚을 돈이 없으니 보증인인 네가 갚아야 하지 않겠냐며 매몰차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제 멈춰야 한다는 것을.


전화기를 붙든채 눈 앞이 흐려졌던 날 이후, 나의 가슴은 차갑게 식어갔다. 내 심정이 어떤지 내 기분이 어떤지 아랑곳하지 않던 아빠는 할머니가 준 돈으로 나보다 어린 베트남 여자와 재혼했다. 남탓만 하며 살아온 아빠는 자신의 재혼생활이 망가지고 결국 이혼의 전철을 밟게되자 모든 비난의 화살을 내게 돌렸다. 큰 딸인 내가 중간에서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보려 애썼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여리고 물러터져서 당하기만 하던 나는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를 맞이했다. 오십만원만 더 입금해달라는 말을 거절하자 아빠는 내 집에서 살면서 하숙비도 안낼거면 당장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 길로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을 나왔다. 당장 몸을 누일 수 있었던 곳은 한 평 남짓한 고시원이었다.


좋을 때 좋았던 관계만큼 가볍고 부질없는 게 있을까. 나의 마음 상태도 좋고, 나를 둘러싼 상황들도 좋을 때는 대부분 좋은 관계를 가진다.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뭉칠 수도 있고, 서로 깊이 알지 않아도 어느 정도 어울릴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관계 말이다. 더구나 SNS의 발달은 온라인에서 취향에 맞는 사람을 팔로우하고 구독하게 했고 가볍고 피상적인 수많은 관계들을 양산해냈다. 지금의 10대 혹은 20대들은 그런 가벼운 관계들이 익숙하고 자연스러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이름조차 모르는 유명 셀럽들과 연예인들을 걱정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은 없다.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내가 잘 되길 바랄 리도 없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순간 내 곁에서 함께 걸어주지도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오직 나를 알고 내 이름을 알고 내가 누구인 지, 어떤 사람인 지 아는 사람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 의미 있는 관계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이 주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처음엔 피상적이고 가벼웠던 관계가 깊고 소중해지는 전환점을 맞는다. 만고불변의 법칙이긴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지고 마음 상태도 안 좋아질 때 관계들은 증명된다.


돌아보면 내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마다 보석같이 빛나던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의 시간과 돈을 내어주고 내가 조금이라도 툴툴 털고 빨리 일어날 수 있게 돕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아픔을 제 일처럼 여겨주고 내 눈물에 함께 울컥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밤마다 우리 집 앞에 와서 혼자 우는 건 아닌 지 확인하고 가던 사람, 내 생각이 났다며 자주 전화하던 사람, 너만 생각하고 살라고 울면서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사람. 그 사람들의 애정과 위로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빨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혹시 슬프고 힘들었던 과거가 지금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알려주자. 이미 다 지나갔고 이미 끝난 일이며 나는 나의 오늘을 살아가면 된다고. 좋지 않았던 관계들 특히나 착취당했던 관계 속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나를 탓하지 말자. 누구보다도 아팠을 나 자신을 안아주고 용서하자.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감보다는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얼마나 수고하고 애썼는지 알아주자.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은 과감히 미련 없이 놓아버려라.



나의 결혼식을 앞두고 나는 꽤 오랫동안 보지 않고 지냈던 아빠에게 연락을 했다. 집에서 나가라고 했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며 눈을 피하는 아빠는 꽤 늙어있었다. 우리가 함께 살았던 시간 속에서 공유했던 아픈 추억들은 이미 힘을 잃었다. 내가 홀로 고군분투하며 지내왔던 외로운 세월은 아주 밀도높은 서사로 나를 변화시켰고 아빠와 내 사이엔 크나큰 간격이 존재할 뿐이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해서 남편의 손으로 바꿔 잡고 걸어가던 버진 로드는 나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었다. 내 아픈 원가정과 작별하고 나와 내 남편이 만들어갈 새로운 가정에 대한 소망의 걸음이었다.


바꿀 수 없는 타인과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길 바란다.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당신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들은 서서히 드러난다. 만일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당신 곁에 있는 데도 알아채지 못한 것일수도 있다. 안 좋을 때 더욱 좋아지는 관계들만큼 소중한 게 없다. 그런 사람들은 잃지 말고, 놓치지 말고, 열렬히 사랑하며 살아라. 그것이 행복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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