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초승달” (김성미)
초승달은 음력 초사흘날 저녁에 서쪽 하늘에 뜨는 둥글고 가느다란 눈썹 모양의 달이다. 초승달은 상현달을 거쳐 만월로 가득 차올랐다가 다시 하현달을 거쳐 초승달로 되돌아오는 순환을 반복한다. 옛 선조들이 물그릇을 떠다 놓고 달을 향해 빌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달은 은은한 희망 또는 간절한 염원과 사랑을 상징하는 피사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참 예쁘네요.”로 번역한 것도, 달이 가지는 상징성을 빗대어 표현한 시적이고 아름다운 말이라 할 수 있다.
달은 주기적 순환을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꾼다.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달은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다는 둥근달은 잠시 잠깐 형태가 바뀌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달의 모양이 변한다고 달이 변심한 것은 아니다. 태양과 지구의 위치에 따라 달이 때때로 다른 모습으로 보일 뿐, 밤하늘을 밝히는 달은 항상 그대로이다.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며 바뀌는 겉모습과는 달리,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는 속모습이란 것이 존재한다.
눈 부신 태양 빛에 가려 달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낮의 하늘에도 달이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마음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영원히 변치 않을 은은한 사랑 하나쯤 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진심과 같이 진실한 마음 하나가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 이면에 숨겨진 본질을 볼 줄 아는 안목이 그래서 중요하다. 티격태격하며 자주 싸우는 부부가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가장 아끼는 사람들인 것처럼 말이다.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사랑은 가끔씩 낮달처럼 요란하지 않게 묵직한 위로를 전한다.
시인이 지칭한 “나의 달님”은 언제 어디서나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만날 수 있는 , 시인이 아끼고 응원하는 소중한 사람, 오래되어 닳고 닳은 신발을 벗어둔, 그녀의 남편일 것이다. 시인은 비 오는 늦은 밤 남편이 벗어둔 오래된 신발 뒤축에서 닳고 닳은 초승달 하나를 발견했다. 고단했던 남편의 하루가 모이고 모여 뒤꿈치에 작은 초승달 모양을 새겼다.
반짝반짝했던 새 신발도 자주 신다 보면 발에 꼭 맞는 모양으로 낡게 된다. 처음엔 다 새것이었던 신발들이 점차 낡아지는 과정이 부부가 되는 과정인 것 같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 신발을 사는 것이 결혼이라면, 발뒤꿈치에 상처가 나서 밴드를 붙이는 시절이 좌충우돌하는 신혼, 점차 발에 꼭 맞게 모양을 갖춰가는 것이 서로를 잘 아는 오래된 부부의 모습인 것 같다. 신발 밑창에 뜬 초승달은 부부가 서로 함께 맞춰가며 살아온 오랜 결혼생활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 지친 달님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내비게이션에 찍을 것이다. 허기진 달님은 자신을 빛나게 해 줄 해님이 있는 집으로, 배부른 만월로 차오르는 꿈을 꾸며 들어갈 것이다. “초승달”이란 디카시는 힘든 하루에 마침표를 찍고 퇴근한 가족들이 조우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고단했던 하루를 툭툭 털고, 사랑의 온기로 서로를 채우는 저녁 풍경을 상상하게 만든다. 서울디카시인협회 창간호 디카시 부문 신인 문학상을 수상한 이 디카시를 누군가의 달님들에게 띄우고 싶다.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따뜻한 디카시와 함께 사랑으로 차오르길. 오늘도 모두 행복한 저녁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