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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Sep 08. 2022

오늘 하루치만큼의 용기

나는 당신의 오늘이 편안하고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방학 숙제로 일기를 굳이 내주지 않았더라도 나는 아마, 분명 자발적으로 일기를 썼을 것 같다. 나는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아이였던 것 같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고 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속에 가득 찬 것들은 반드시 밖으로 드러난다. 멋진 노래, 혹은 아름다운 악기 연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고, 돌봄과 나눔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은근슬쩍 무시하는 발언이나 차별적인 태도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 같은 게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 지, 나는 누구인 지를 알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나도 모르게 매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내켜서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행동과 만남, 그리고 내가 내뱉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읽지 않고 쓰지 않고 사는 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인정받는 작가가 되진 않는다. 비슷한 소재와 글감으로 글을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현실이다. 세상 모든 일이 다 쉽지 않기 때문에 작가들도 푸념을 한다. 글쓰기는 아무래도 깡충깡충 뛰는 토끼보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거북이를 더 많이 닮은 작업이다. 같이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동료 작가들과 다시 초심을 잡고 다시 펜을 드는 것이 작가들의 일상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거북이도 가끔 자전거를 타고 빨리 달리기도 한다.


성공은 결코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멋지게 차려입은 어떤 화려한 순간 같지만, 반짝이는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시상식이 끝나면 꺼진다. 스포트라이트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모른다. 얼마나 오래도록 흔들리는 길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걸어왔는지, 얼마나 자주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렸는지, 그리고,

그 모든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고 왔는지를 말이다.


매일 먹고 자고 쉬고 평범하게 반복되는 별 볼일 없는 일상, 우리의 비하인드 스토리 속에 성공은 이미 스며들어있다. 왜냐하면 성공이란, 우리가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다는 사실, 그 자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글감만 있다고 글이 줄줄 나오는 것도 아니고, 글이 줄줄 나온다 할지라도 여러 번의 퇴고는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작가들의 마음속에는 "검열자"가 있다. 내 안에 있는 깐깐한 검열자는 내 글의 첫 독자인 나 자신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글은 발행하지 말라고 한다. 진정성이 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검열자의 마음에 들 때까지 편집 수정은 무한 반복된다.


그래서 공개된 내 모든 작품들이 자식처럼 애틋하다. \

피, 땀, 눈물이 들어간 내 분신 같은 작품들이 잘 대접받길 바란다.


글을 발행하기 전,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다. 내 목소리를 세상에 공개하는 일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매번 두려운 긴장 속에서 그 긴장을 넘어서는 용기를 발휘해 글을 발행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모두 듣고 싶어 하는 말도 사실 똑같다.

"정말 고생 많았어. 수고했어 오늘도. 네가 있어서 너무 감사해."


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못 들어서, 또는 해주기 싫어서, 세상에 참 많은 문제들이 일어난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편안하고 따뜻했으면 좋겠다.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서 당신이 오늘 하루치만큼의 용기를 내어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것처럼, 나 역시 주어진 오늘의 삶 속에서 하루치만큼의 용기를 내어 발행 버튼을 누른다.


그러니 하루치만큼의 용기를 품고 거리로 나가자. 어느 편안한 길목에 자리를 잡고 심호흡을 한 후, 나의 목소리를 내 보자. 오늘의 우리가 낼 수 있는 작은 목소리가 우리를 더욱더 용감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의 오늘에 박수를 보낸다.





위의 script는 이번 9월에 전시될 저의 2022 결과 보고 전시회 영상의 자막 내용입니다. 5분짜리 영상을 풀로 업로드하고 싶지만 다음에 온라인으로도 전시가 가능한 플랫폼이 있다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문학인으로서, 제 글의 작품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시와 책과 디카시 액자를 벽에 걸어두었지만, 뭐랄까, 이상하게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영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의 작품세계와, 제가 글을 쓰는 마음,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마인드를 담아서 말이죠.


10여 년 전부터 저장해 왔던 영상과 사진들을 쭉 훑어보며 제 삶을 반추해 보았습니다. 원고를 적고, 원고에 어울리는 것들을 선별하여 간택했습니다. 순서를 정하고, 유튜브 무료 음악을 검색하여 BGM을 선정하였습니다. 제가 선별한 동영상 클립들을 이어 붙이고 음악을 넣고 제 내레이션을 녹음해준 전문가, 김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 (제 남편입니다.ㅎㅎ)


100만 원이 넘는 마이크라며 남편이 생색을 내던 삐까뻔쩍한 마이크에 제 목소리를 녹음해 보니, 닥살이 돋고 민망하고 어디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으면 대부분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는 합니다. 이토록 지루하고 재미없는 목소리가 전시장에 울려 퍼지면 관객들이 하품하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뭐 어때, 그래도 별 수 없지.'였습니다. 목소리에도 인상이 있고 목소리에도 표정이 있다는데, 내가 이런 표정과 이런 인상을 가진 작가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만 말자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브런치에 글도 발행하지 못하고, 작품 전시회도 열지 못하고, 원데이 낭독 클래스 같은 것도 열지 못할 거였으니까요.


사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정말로, 뭐 하나 계획대로 되는 게 없다는 것을 실감했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저는 사실 많이 아팠었고, 죽만 먹고 버티는 상황에, 기력도 없지, 에너제틱한 아이들은 매일매일 방방 뛰지, 태풍도 온다고 하지, 무시무시한 태풍이 가고 나니 갤러리에 누수가 생겨 보수를 해야 한다고 하지, 태풍 때문에 주문 제작한 족자가 하루 늦게 도착했지.


그런데 원래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거 하나 없고, 약간의 실망과 서운함과 일종의 좌절감은 디폴트로 장착해야 조금 더 수월해지는 게 인생이지 않나 싶은 거였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자신만의 전쟁터에서 오늘도 변함없이 치열하게 고군분투했음을 헤아리고, "오늘도 너무너무 수고 많았어. 정말 고생 많았어."라고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는 하루. 그런 포근함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결과 보고전도 그런 의미에서 "쓰다듬다"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제 글과 제 영상과 제 모든 작품들이 누군가를 포근하게 해 주면 좋겠다는, 그런 꿈같은 바람뿐입니다. 솔직히 제가 다정함에 집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다정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쌍욕과 모욕을 더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정하고 상냥한 삶을 배워가고 더욱 그런 것들에 천착하며 계속 따뜻한 것들을 흡수해 제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제게 없는 것들을 새롭게 장착하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지 모릅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 나은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포기하지 않고 열망하며 살아가 보렵니다.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는 작가님과, 브런치를 애정 하며 들러주시는 회원님들 중에 울산에 계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으신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근처에 계시는 분들이 있다면  2주 후에.. 전시장 나들이 오셔서 많은 힐링과 마음의 환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행복한 연휴, 포근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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