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토리 홀릭의 꾸준한 글쓰기 여정
“아주 그냥 티비를 끌어안고 살아라.”
“그러다 티비 속으로 들어가겠다!”
어릴 때 내가 자주 듣던 말이다. 만화와 드라마, 영화 보는 것을 너무 좋아했던 나는 입을 반쯤 벌리고 넋 나간 표정으로 티비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최근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다가 박은빈 배우가 아버지에게 김초밥을 사다 주던 장면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엄마고래와 새끼 고래 이야기를 하던 장면에선 콧물까지 흘렸다. 사람에게는 변하지 않는 어떤 면모가 있다.
너무 좋아해서 안 보고는 못 배기던 것들이 만화, 드라마, 영화였다. 어릴 때부터 스토리 홀릭이었던 나는 그동안 보고 듣고 익숙해진 플롯들이 마음속에 차고 넘쳤다. 어떤 날에는 말도 안 되는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 <UP>의 귀여운 꼬마가 되어 하늘을 나는 집에 숨어 들어간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 일원이 된다면? 거짓말을 하면 구토하는 간호사 마르타로 산다면? 내가 만약 전신마비가 된 백만장자 필립이었다면 영화에서처럼 청혼할 수 있었을까?' 등등. 타인의 삶을 엿보며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힌트를 얻는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실로 그러하다. 누군가의 삶에서 내 삶의 끊어진 조각, 혹은 잃어버린 패턴 하나를 찾아오는 것. 그것이 스토리의 힘이었다.
펜을 사랑하고 글을 사랑하고 스토리를 사랑하고 인물들을 사랑했던 나는, 사실... 내 인생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잘되길 바라왔고, 지금도 나를 응원하고 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행복하길 원하며, 진정으로 내 하루하루의 일상이 평온하기를 원한다. 살아갈 이유도 가치도 없다 생각했던 지난날의 우울을 돌아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렬하게 삶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보인다. 이제 와서 그런 게 깨달아지는 것이다. 특별한 의미를 찾든 찾지 못하든,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한다. 나는 나를 응원한다. 나는 내가 잘 되길 바란다.”라는 세 줄짜리 주문을 외우면 우리의 오늘은 충분해진다.”
지난 낭독회에서 “처염상정의 글쓰기”라는 제목으로 짧은 강연을 했다. 나의 글쓰기가 거쳐온 여정, 글쓰기의 유익함, 글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에 대한 진솔한 강연이 참석자의 마음에 가 닿았을까. 낭독회가 끝난 후, 자신에게 와닿았던 부분들을 전해주는 참석자분들 덕에 큰 힘이 되었다. 자신감이 자꾸 떨어지는 시점에 기운을 북돋우는 마중물이 되었다. 내가 글로 정확히 그려낼 수 있는 세계를 계속해서 멋지게 완성해보고 싶다. 뭐가 됐든. 꾸준하게. 느리게, 차근차근. 이런 마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