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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Jun 23. 2022

서른아홉 번 이상 던진 날계란의 개수

예술의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새롭게 접어든 글쓰기라는 세계에서 문화 예술 교육가, 시민기자, 시인, 저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내가 속한 공간, 사회, 세상을 혁신시키려는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시사점이 많은 책들을 꾸준히 읽고 소개했던 이유는 기사를 읽는 사람들의 시민의식 고취가 목적이었다. 디카시와 시 해설에 대한 글을 꾸준히 올렸던 이유는 지치고 힘든 코로나 시대, 불안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오늘을 사는 의미를 찾길 바라는 응원이었다.


사람들을 만나 “내가 꿈꾸는 더 나은 사회”에 대해 쏟아낸 적이 많다. 어떤 때는 자조 섞인 푸념을 했고, 어떤 때는 실현 가능성 높아 보이는 현실적인 목표들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마음속에 드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는 나 혼자서는 역부족인 일들이었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실현 가능한 예산, 인력, 더 큰 행사를 위한다면 공공기관과의 협조, 홍보 마케팅 등이 반드시 뒤따라야 했다. 일단 돈이 많은 자산가라면 행사 용역 고용을 바로 진행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현대의 메디치 가문이 아니었고 현재 수입 역시 누군가 나를 고용해줘야 할 판이었다.


태어나 서른아홉 해를 살아온 울산,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가진 노잼 도시, 시민의식이 소득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돈만 많다는 산업도시, 관료제 시스템 속에서 로봇이 되어버린 듯한 경직된 공공기관이 즐비한 도시. 나는 이곳 울산에서 무엇을 해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나 한 사람 따위가 변화시킬 수 없는 거대한 바위 같은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들고 있는 계란을 다 던져서라도 깨뜨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은 것이었다.


시답잖은 싱어송라이터 밴드가 되어 학교 선배님 카페에서 기금 모금 공연을 시도하고, 에니어그램 상담사 자격증을 따서 부부상담을 진행하고, 디카시 전시회를 열어 주민들과 소통하고, 책을 출간하고, 기사를 연재하고, 시집 낭독회를 열고, 예술인 소개 전시회에 참여하고, 청소년 디카시 강연을 진행하고.


나는 가끔 내가  그렇게 살아왔을까 조용히 명상에 잠기곤 하는데, 명상의 결론은 매번 똑같다. 그러지 않고는  견디겠어서이다. 결혼 전에는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벌던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었기에 여러 가지 작당(?)들을 시도하는  더더욱 거리낌이 없었다. 약간 모험적인 성격도  몫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도전하면서 "망하면  어때, 해본 걸로도 괜찮아."라는 정신승리를 하곤 했었다. 정말로 young 했던 시절이었고, 실제로 " 길이 아닌가" 하면서 망한 것도 있고,  엄청난 경험치를 획득하게  일도 있었다.


그런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버렸는지 "망해도, 정말 괜찮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런 두려움에 잠식되면 사실 아무것도 못한다. 출산 및 육아와 함께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나의 수입과, 희끗희끗 올라오는 하얀 새치들과, 원하는 만큼 많은 글을 쓰지 못하게 막는 나의 저질 체력이 발목을 잡는다. 나는 앞으로도 점점 더 늙어갈 것이고, 점점 더 두려워질 것이다. 다만 내가 위안을 삼는 한 가지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두려움 없는 용기도 없다. 노파심만 가득한 지금의 내가,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이자 성과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지난주에는 날자 이조영 작가님의 소개로 위젤라 TV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전히 떨리고, 여전히 부끄럽지만 위젤라 인터뷰는 오디오 클립이어서 너무너무 편안했다. 인터뷰를 앞두고 긴장하고 두려웠던 내게  작가님은 "그냥 망해버려라"라는 마인트 세팅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번도 먹어본  없는 마음가짐이었다. 망하면  어때보다도 훨씬  강력한 짱이었다.  작가님에게서 배운 "에라잇! 망해버려라!"라는 짱을 장착하고 인터뷰를 진행해서 그런가, 나는 횡설수설하는 기분이  때도 있었지만, 진땀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진행자분들은  눈빛에서 전해지는 에너지가 강력하다고 칭찬(?)  주시는 것이었다.   


가끔은 날계란이 아니라 삶은 계란도 던지고, 가끔은 뾰족한 정으로 제대로 던지기도 하나보다. 도저히 안 하고는 못 배기겠어서 글을 쓰고, 도저히 가만히는 못 있겠어서 2차 낭독회도 진행해보려고 한다. 울산의 고즈넉한 시골 마을 길촌에 위치한, 얼마 전에 오픈한 독립서점 "길촌 책 빵"에서 첫 작가와의 만남을 나와 진행해 보고 싶노라 마음을 열어주셨다.



일을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내가 쓰는 돈이 더 많으면 아마추어고, 일을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버는 돈이 더 많으면 프로라는 말이 있다. 작가로서 글을 쓰는 일을 돌아보니 2020년부터 오마이뉴스 기사 원고료 이외에는 아무 수입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올해 초 디카시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전시장을 꾸미는데 무려 40만 원이라는 큰돈을 썼다. (작품 제작비가 가장 컸다.) 물론, 유명하신 작가님들은 이미 잘 꾸며진 전시장에서 돈을 받고 전시를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돈을 더 많이 쓰게 된 셈이니 역시 아마추어구나 하면서 실실 웃었다. 그러고도 실실 웃기는 일들도 간혹 있었다.


이번 달 초에는 나의 첫 시집의 첫 인세를 받았고, 예술 창작소에서 들어오는 작가 지원금과, 디카시 강연을 통한 수입이, 지출을 많이 상회해서 역전했다. 강의는 계속될 것이고 낭독회도 계속될 것이며 인세도 꾸준히 들어올 것이다. 나는 또 실실 웃었다. 나는 프로라고 되뇌면서 말이다. 서른마흔다섯 번 정도 세상을 향해 계란을 더 던져보면 진짜 제대로 된 프로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찬 생각을 해본다. 에라이, 날도 더운데, 계란 후라이라도 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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